© iStock.com/Yuliia Bukov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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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이 이미지는 벽 표면에 그려진 이스라엘 국기와 팔레스타인 국기를 묘사한 그래픽 이미지입니다.

왼쪽에는 푸른색 다윗의 별이 가운데에 위치한 이스라엘 국기가 회색 벽돌 위에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삼각형 형태의 붉은색과 그 뒤를 이은 검정, 흰색, 초록색 띠로 구성된 팔레스타인 국기가 거친 시멘트 벽 위에 그려져 있습니다.

두 국기는 가운데에서 충돌하듯 맞닿아 있으며, 그 경계는 거칠고 금이 간 듯한 질감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이미지의 구성은 상징적으로 두 국가 간의 갈등과 대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진 끝]

 

2000년대 초에 성인이 된 나는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영토를 방문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특히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을 거의 장식하지 않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을 보면서 내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의 삼각관계에 갇혀있다는 게 방문 당시 한 친절한 안내자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였다.

요즘 뉴스를 보면서 누가 식량이 필요하고 또 누가 식량을 가로막고 있는지,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고민할 때마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이 떠오른다.

중동 갈등은 필연적으로 기독교 박해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고통의 삼각형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건 서안 지구와 여러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를 장악하고 있는 부패한 파타흐 지도부이다. 파타흐는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 민족 해방 운동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도부는 종종 국민의 복지보다 개인적인 이익을 우선시했다.

다른 한 구석에서 그들의 고통을 초래하는 건 검문소와 제한 조치를 갖춘 이스라엘의 통제이다. 최근 팔레스타인 공동체에 대한 극단주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공격에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이 많이 거주하는 마을도 포함되었다. 마이크 허커비 미국 대사는 이를 "테러 행위"이자 "범죄"라고 불렀다.

세 번째 구석이 보여주는 게 아마도 가장 심각한 위협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공개적인 적대감을 보이는 하마스를 비롯해서 종교적 극단주의 단체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단체들의 적대감은 결코 이론적인 것이 아니다. 2007년, 하마스 무장 세력은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성서공회 직원이었던 라미 아야드를 살해했는데, 그가 단지 기독교 신앙을 증언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러한 박해 행위는 많은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이 조상 대대로 살던 고향을 떠나도록 만드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이는 우리의 신앙이 시작된 바로 그곳에서 기독교가 꾸준히 사라지는 데에 일조했다.

이러한 비극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이웃 아랍 국가들조차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경멸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집 없는 민족이 되었고, 기독교 형제자매들에게는 이러한 망명 생활이 특히 더 고통스럽다. 쇠퇴하는 공동체와 텅텅 비어가는 유서 깊은 교회를 지켜보면서 물리적인 공격을 직접 몸으로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깔끔한 서사는 없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는 복잡한 인간의 고통을 우리의 정치적 취향에 맞는 단순한 이야기로 축소하려는 유혹에 맞서야 한다.

2023년 10월 7일에 일어난 일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악랄한 증오 행위였다.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이스라엘의 보복을 정당화할 정도로 끔찍한 테러 행위였고, 공정한 관찰자들이라면 결코 이스라엘의 군사적, 정치적 대응이 부당했다고 결론지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그 대응이 과연 균형 잡히고 전략적이었는지, 장기적인 통치와 안정을 위한 실행 가능한 계획을 염두에 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주류 뉴스의 보도와 최근의 팔레스타인의 국가 인정은 마치 예정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침략자이고 팔레스타인인들은 피해자라는 것이다. 서방 언론들은 굶주리는 가자 지구 주민들에 대한 식량 공수 시도를 폭넓게 보도했다. 가자 인도주의 재단과 그 재단의 지도부인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 기사와 그들의 "공정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스토리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이러한 출판물들은 내가 속한 조직에서 매일 목격하는 유엔의 채용 관행과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에 대한 문서화된 편견에 대해서는 눈에 띄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기독교적 일관성에 대한 요구

중동 문제가 단지 해시태그나 캠퍼스 구호로 해결되지 않는다. 인내심 있는 참여, 섬세한 이해, 그리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주는 값비싼 사랑을 요구한다.

이는 하마스의 테러리즘에 대한 진실된 고발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전략이 과연 정의라는 대의에 부합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자기 방어권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동의 다른 여러 상황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잊지 않으면서 동시에 가자 지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을 옹호하는 동시에 유대인 가족들을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의 얼굴에, 안전과 존엄성을 누릴 자격이 있는 유대인과 아랍인 어린이들의 얼굴에 반영되어 있다. 우리의 소명은 정의와 평화, 그리고 취약한 사람들, 특히 박해받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정치적 해결책이 아니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평화의 왕자, 그분에게만 있다.

출처: Beyond Slogans: A Christian Perspective on Ga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