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의 긴장(tension)은 신학적·목회적 균형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긴장입니다. 그 긴장은 11년 전 교회개척 이후에 끊임없이 다양한 옷을 입고 찾아왔습니다. 인생과 교회의 계절에 맞춰 입을 수밖에 없었던 목사의 긴장들을 런웨이에 하나씩 올리는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와 이제 막 교회를 시작한 목회자들이 마주할 긴장과 고민을 염두에 두고 글을 씁니다. _글쓴이 박용주
지난 글에서 다룬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은 가장 민감한 전도와 깊이 관련됩니다. 공간은 공동체로 연결되는 다리가 되기도 하고, 전도의 접촉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전도를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공간을 전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하고, 어떤 이들은 공동체만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전도에서 공간과 공동체는 긴장 속에서 공존해야 합니다.
교회 개척과 전도의 준비 과정
2014년 10월 첫 주에 나주혁신도시 ○○아파트로 이주가 결정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6월 1일부터 광주 풍암동 집 거실에서 주일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3개월 동안 세 가지를 힘썼습니다. 먼저, 가족이 거실 예배에 익숙해지고, 예배형식과 공간을 계속 조율했습니다. 이 기간에 아내의 요리 실력은 일취월장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온라인 공간(카페)을 만들고, 그 안에 설교 영상과 목회철학을 담은 글들로 꾸몄습니다. 가정이라는 공간은 이주한 그리스도인들이 방문하고 전도하는 데 있어 분명 높은 문턱이 될 것이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토요일마다 정성 들여 내린 커피를 들고 온 가족이 함께 놀이터 전도를 나갔습니다.
10월 첫 주일, 나주혁신도시에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동안 놀이터에서 지속적으로 교제해 온 한 가정이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엘리야가 본 ‘구름 한 조각’과 같았습니다. 주일마다 온라인 공간에 들러 설교와 공동체에 대한 그림을 둘러본 이들이 교회당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태권도 도장을 빌려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공동체 중심의 전도 방식
우리는 교회를 찾는 이들의 방문과 전도를 공동체의 삶과 관계 형성을 중심으로 풀어냈습니다. 작은 무리가 가정집이 주는 따뜻함을 누렸고, 그 따뜻한 공동체성이 사람을 끄는 매력이 되었습니다. 미리 준비한 온라인 공간은 물리적 공간의 문턱을 낮추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건강한 공동체와 예배가 가장 강력한 전도이다”를 뒷받침하는 경험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어떤 건물이 아니라 길 위에서 공동체를 세우신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신앙의 본질인 예배와 말씀, 교제를 지키면서 전도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공간이 부족해도 ‘공동체적 따뜻함’이 있다면 비그리스도인이 교회를 찾을 수 있고, 공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전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은 없었지만, ‘삶의 자리’에서 공동체 형성을 경험했습니다.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유동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을 취한 것입니다.
성장하는 공동체와 공간의 변화
태권도 도장에서 예배를 드림에도 교인들은 꾸준하게 늘었습니다. 나중에 상가 5층의 한 켠을 쓰다가 전층을 사용했고, 지금은 6층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직장 때문에 이주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왜 나주혁신장로교회에 모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분명히 공간보다는 공동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성은 시간의 단련과 검증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작은 규모가 가진 분위기로 인한 따뜻함인지, 공동체적 제자도에 의한 진실함인지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성도들끼리만 친밀하고 외부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개척초기에 개방성이 강한 공동체는 시간을 먹으며 폐쇄적인 공동체로 비대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방문자와 등록하는 이들이 꾸준히 있었기에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적극적으로 초청하는 선교적 공동체로서 인격과 실력을 직시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공동체를 선교적 관점으로 다시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경향은 공간에서도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환영하는 공간은 없고, 신자들이 안정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만 있었습니다.
공간을 무시할 때
나는 공동체가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비그리스도인은 교회보다 먼저 공간을 경험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전도에 있어서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을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모이는 공간은 단순한 모임 장소가 아니라 선교적 공동체가 형성되는 곳이라면, 그들의 공간은 우리만의 공간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열린 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그리스도인이 교회에 첫발을 들이기까지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공간은 이 장벽을 낮추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공간은 누군가에게 공동체로 초대장과 접촉점이 되는 것입니다. 공간은 관계로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이 공간의 설계와 배치에 반영될 때, 구성원의 생각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간은 사랑의 대상을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고, 구도자들을 초청하는 적극적인 시도를 도울 수도 있습니다.
공간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전도에서 공간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공동체가 배제된 공간 중심의 접근은 전도의 본질을 약화시킵니다. 비그리스도인은 공간이 아닌 관계를 통해 신앙을 받아들이니까요. 공간에 방문했을 때에 공동체가 배타적인 분위기를 보이면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공간 자체보다 그 공간에서 형성되는 교회의 문화가 더 중요합니다. 전도는 교회 공간에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복음을 경험하고 신앙 공동체에 속하도록 돕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간을 강조하면서 공동체를 무시하면 전도의 접촉점은 많아질 수 있지만, 실제 신앙의 전수와 지속성이 약해질 위험이 커집니다. 공간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교인들은 공동체 형성과 관계 맺기보다 공간을 소비하는 장소로 여길 위험이 있습니다.
전도에서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을 조율하는 목회
전도에서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은 교회의 규모와 관계없이 고려해야 할 중요한 주제입니다. 공간 중심적 전도에 치우치면 작은 규모의 교회는 열패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공간을 무시하는 전도로 치우치면 공간을 접촉과 관계형성에 활용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 것입니다.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을 이해할 때에 다양한 변주(variation)가 가능합니다. 기본적인 멜로디는 ‘선교적 공동체 형성’입니다. 개척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적은 무리가 협소한 공간에 모일 때에는 ‘함께 예배하고,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강조해야 합니다. 그 시기만 연주할 수 있는 관계형성 중심의 변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척초기에도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공간을 무시하며 공동체를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무시하는 공동체는 폐쇄적인 문화를 가질 가능성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공간이 선교적 공동체가 형성되는 장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에 있어서 목회자는 공간을 통해 전도를 열어 가려는 전략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회중은 기존 공동체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둘이 긴장 관계인 것을 놓치면 영혼구원에 대한 모순적인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구도자들과 접촉점을 넓히기 위해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접촉점을 넓히는 데 있어 본질은 공동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을 조율해야 하는데, 불협화음만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공동체의 선교적 전환이 먼저다
한 개인은 전도에 있어서 공간과 공동체 가운데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공동체와 함께 조율을 하며 걸어 왔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배웠습니다. 가장 큰 배움은 공간의 변화 이전에 공동체가 선교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입니다. 선교적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사람들의 공간에 보내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공간은 언제든 변할 수 있지만, 공동체가 선교적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면 그 공간은 생명을 잃은 빈껍데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적 공동체와 공간의 관계는 본질과 수단의 문제이지, 시간의 순서로 규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선교적 공동체가 완성되어야만 공간 이슈를 다룰 수 있다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은 단순한 실용적인 문제를 넘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긴장을 하나님께 맡기며, 결국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계획과 기대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방법을 기대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늘 교인들보다 앞서서 공간을 고민했습니다. 교회가 맞은 계절과 공동체의 논의 과정에서 공간이 열리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공동체를 통해 전도의 접촉점이 얼마나 다양하고 넓어질 수 있는지를 경험했습니다. 공간 문제로만 해결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교적 공동체로의 전환이 중요함을 배우면서, 동시에 공간이 선교적 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공간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단순히 예배당이라는 고정된 개념에서 벗어나, 시대와 환경에 맞게 선교적 공간을 창의적으로 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가진 선교적 공동체라는 본질을 붙잡고 있다면, 공간은 더욱 유연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개척자들은 하나님이 공동체를 빚어 가시는 분임을 믿으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때만 가능한 변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공간과 공동체의 긴장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숙해 가야 합니다. 공간을 통해 관계를 맺고, 관계를 통해 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통해 공동체가 성장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진정한 선교적 공동체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