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llust.: Jennifer Ehle; Imgs.: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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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포스트먼은 미국 역사의 모든 시대가 도시로 표현된다고 말했다. 보스턴은 혁명 열정의 이상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시카고는 산업 역동성의 화신이었고, 뉴욕은 인종의 용광로 미국의 인격화, 그 자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스베이거스는 과도한 오락의 화신이 되었다.

라스베이거스에 대한 포스트먼의 진단은 옳았다. 이 도시는 사치스럽고 유비쿼터스한 오락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는 도박으로 더 유명하다. 따라서 이 도시는 미국 역사의 현재 단계인 도파민 미디어를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 형태이다. 도파민 미디어가 무엇인가? 쉼 없는 뇌의 도파민 방출을 위해 끊임없이 스크롤 하도록 설계된 온라인 콘텐츠이다.

도파민 미디어가 작동하는 방식

대부분의 미국인은 중독성이 물질 때문이라고, 특히 도파민을 직접 전달하는 경우에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행동 자체가 매우 강한 중독성을 가질 수 있는데, 그건 뇌에서 방출하는 도파민 때문이다.

2013년에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의해서 병적 도박이 중독성 장애로 재분류되었다. 도박이 뇌에 작용하는 방식은 도파민 미디어가 작용하는 방식과 정확하게 똑같다. 안나 렘브케(Anna Lembke)의 설명이다. “연구에 따르면 도박으로 인한 도파민 방출은 (종종 금전적인) 최종 보상 자체만큼이나 보상 제공의 예측 불가능성과 관련이 있다. 도박에 대한 동기는 금전적 이득보다는 보상 발생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에 더 큰 이유가 있다.”

2010년 연구에 따르면, 도박 중독자가 가장 많은 도파민을 방출할 때는 돈을 땄을 때가 아니라 딸지 잃을지 50대 50으로 모를 때라고 한다. 즉 최고 수준의 도파민 하이는 승리했을 때가 아니라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도파민과 관련해서 보상에 대한 기대는 보상 자체보다 더 큰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슬롯머신이 중독성이 있는 건, 계속해서 기대하면서 떠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큰 승리가 항상 바로 코앞에 있다는 생각에, 레버를 한 번만 더 당기면 된다는 생각에, 뇌에서는 기대 도파민이 방출된다.

바로 이 통찰력이 도파민 미디어 작동 방식의 핵심이기에 중요하다. 거의 대부분의 큰 기술회사에서 일하는 행동 심리학자는 디지털 슬롯머신이라고 불리는 간헐적 가변 보상 방식을 사용해서 플랫폼과 앱(소셜 미디어, 뉴스 미디어, 비디오 미디어)을 설계한다. 실제 슬롯머신 연구서 Addiction by Design의 저자인 나타샤 슐(Natasha Schüll)의 설명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및 기타 회사는 사용자를 사이트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들려고 도박 산업과 유사한 방법을 사용한다.”

소셜 미디어에 포스팅 할 때마다 사용자는 디지털 레버를 당기면서 간헐적 가변 보상을 받는다. 때로는 ‘좋아요’를 두 번 받고, 때로는 이백 번을 받는다. 스크롤하다 보면 엉터리 영상도 있지만, 어떤 건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틱톡에서 개척되어 이제는 메타와 유튜브에서 더 발전한 쇼트 영상의 가장 큰 매력은 간결함이다. 그래서 사용자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레버를 당긴다. 뇌는 보상을 기대하며 끊임없이 도파민을 분비한다. 재미없는 영상에 잠깐 좌절하거나 지루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더 보도록 만드는 충동이다.

쉬지 않고 화면을 넘기도 또 넘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도박 중독자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나의 뇌를 재구성한다.

도파민 미디어는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와 어떻게 다른가

도파민 미디어를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와 차별화하는 것이 단지 슬롯머신 디자인뿐만이 아니다. 도파민 미디어의 핵심은 지속적인 접근성과 사용자의 취향에 맞춰 콘텐츠를 제공하는 알고리즘 큐레이션이다.

포스트먼이 살던 시대에만 해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텔레비전은 물리적으로는 고정되어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려면 전기가 들어오는 방에 앉아야 했다. 게다가 특정 채널에서 특정 시간에 방송되는 것만 볼 수 있었다. 프로그램 일정은 사용자가 정하는 게 아니었다. 케이블 네트워크가 HGTV, Food Network, Comedy Central 같은 틈새시장을 겨냥한 공간을 치고 들어왔지만, 텔레비전은 사실상 단 한 번도 개인화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도파민 미디어는 완전히 다르다. 물리적으로 제한이 없다. 이동이 가능하고 어디에서나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시간적으로도 제약이 없다. 일정도 없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내용을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비결은 인공 지능에 있다. 광고에서 비디오, 게시물, 검색 결과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앱과 플랫폼에서 보는 모든 내용은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된다. 추천 알고리즘은 고급 AI로, 당신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당신에게 꼭 맞는 디지털 모델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당신의 관심을 유지하는 동시에 수익 창출을 위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당신의 소셜 미디어 피드는 맞춤형이다. 모든 건 당신이 중독되도록 설계되었다. AI가 갖고 있는 당신에 대한 지식은 놀라울 정도로 방대하고 당장에라도 실행 가능하게 관리되고 있다. 마치 디스토피아의 디지털 파블로프처럼, AI는 당신의 모든 행동을 추적해서 당신이 중독되도록 만든다. 오로지 하나의 목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이 플랫폼에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해서이다.

죽도록 산만하기

“즐겁게 만들다”라는 동사로는 도파민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죽음으로 이어지는 중독에 빠지게 하려고 만들어졌다. 연구에 따르면, 약물이 더 쉽게 구할 수 있고 약물 사용이 정상화될수록 거기에 대한 중독이 더 만연해진다. 따라서 대다수의 미국 성인이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디지털 마약을 주사하고 돌아다니는 건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적절한 수준에서 미디어를 소비하는 책임감 있는 사용자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완전히 끊은 사람은 없다.

도파민 미디어가 초래한 중독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중한 어떤 것의] 포기(trade-off)는 단지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존재한다. 첫 번째 희생자가 시간과 주의력이라면, (훨씬 더 중요한) 두 번째 희생자는 가족과 관계이다.

연구에 따르면, 도파민을 생성하는 행동에 더 중독될수록, 뇌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보상에 만족을 덜 느낀다. 이는 생쥐에게도 해당된다. 자유로운 쥐가 우리에 갇힌 쥐를 만나면, 풀어주려고 한다. 그런데 자유로운 쥐가 스스로에게 헤로인을 투여하게 놔두면, 그 쥐는 더 이상 갇힌 쥐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헤로인이 더 큰 쾌락을 주기 때문이다.

도파민 미디어에 대한 중독은 덜 사랑해야 할 것을 더 사랑하도록 우리를 훈련시킨다. 그것은 우리를 비참한 수준으로까지 불행하게 만든다. 사람과의 관계를 해치고, 또 다른 쾌락으로 유혹하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썼다.

"정의롭고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이 모든 것들을 건전하게 판단하는 자이다. 그는 자신에게 사랑을 명령한다. 그래서 사랑해서 안 되는 것을 사랑하거나,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또한 적절히 사랑해야 할 것을 지나치게 사랑하지 않거나 (또는 더 사랑해야 할 것을 너무 적게 사랑하거나) 차등을 두고 사랑해야 할 두 가지를 똑같이 사랑하거나, 차등을 두지 않아야 할 것을 차등을 두어 사랑하는 일도 생기지 않도록 한다."

도파민 미디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가장 널리 퍼져 있다. 또한 가장 강력하게 공학적으로 만들어진 커뮤니케이션 기술 형태이다. 도파민 미디어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이웃을 더 사랑하는 일도 결코 생기지 않는다. 도파민 미디어는 우리를 쾌락 추구에 눈이 먼 중독자로 만든다. 그리스도인은 이 기술 혁명이 본질적으로 교회에 제도적, 관계적, 그리고 형성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이 글은 이반 메사와 브레트 맥크레켄이 편집한 Scrolling Ourselves to Death: Reclaiming Life in a Digital Age에서 간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