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by Danny See Chuan Seng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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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긴장

목회의 긴장(tension)은 신학적·목회적 균형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긴장입니다. 그 긴장은 11년 전 교회개척 이후에 끊임없이 다양한 옷을 입고 찾아왔습니다. 인생과 교회의 계절에 맞춰 입을 수밖에 없었던 목사의 긴장들을 런웨이에 하나씩 올리는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와 이제 막 교회를 시작한 목회자들이 마주할 긴장과 고민을 염두에 두고 글을 씁니다.  _글쓴이 박용주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는 보편적 교회론과 목회철학 사이에서 긴장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 곧 예배, 말씀, 성례, 기도, 공동체, 선교 등의 요소를 따라야 합니다. 동시에 자신이 가진 신학적 이해, 은사, 목회 환경을 반영한 목회철학을 통해 교회를 이끌어 갑니다.

그런데 이 두 요소가 항상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목회자는 '교회는 본질적으로 말씀과 성례, 공동체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며 보편적 교회론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어떤 목회자는 ‘교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독특한 소명이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며 목회철학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이러한 두 입장 사이에서 목회자는 끊임없이 긴장을 경험합니다.

목회자는 보편적 교회론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가진 목회철학을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해야 하는가? 이는 단순한 이론적 논쟁이 아니라, 실제로 교회를 개척하고 세우는 모든 이들이 직면하는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교회 이름을 짓는 과정부터 시작되는 긴장

보편적 교회론과 목회철학은 교회 이름을 짓는 과정부터 반영됩니다. '나주혁신장로교회'라는 이름에는 지역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보편적 교회의 일부임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에 충실한 교회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고(요 4:23), 그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고(마 28:19-20), 하나님 나라 중심의 기도를 드리며(마 21:13, 마 6:9-14), 서로 사랑함으로써(요 13:34),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공동체(행 1:8)가 되는 것은 시대와 문화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동시에 '나주혁신장로교회'는 목회철학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운영에 있어서 장로교회의 정치원리와 개혁신학을 따르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영어 ‘Reformed’를 '혁신'으로 번역함으로 '개혁된 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secundum verbum Dei)’는 종교개혁가의 정신을 이어받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처럼 목회철학은 단순히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신학적 배경, 경험, 문화적 흐름, 개인적 은사, 사역 환경, 교회 구성원 등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아 형성됩니다. 즉, 목회철학은 목회자의 내면과 외부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형성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보편적 교회론과 목회철학의 관계

보편적 교회론과 목회철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성경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엡 4:11-12). 하나님은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세우십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몸된 교회를 온전하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개인의 목회철학은 교회를 세우는 데 수종 드는 종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가르치는 데 탁월하고, 어떤 목회자는 돌봄과 상담에 강하고, 어떤 목회자는 선교와 전도에 헌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고전 12:4-6). 결국, 목회철학은 보편적 교회를 세우는 데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3:6-7). 각자의 목회철학이 강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 교회론의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바울과 베드로를 통해 보는 둘의 긴장

목회철학과 보편적 교회론의 긴장을 살아낸 대표적인 인물로 사도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복음 전파와 선교에 초점을 맞춘 사역을 합니다. “나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진 곳 말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습니다. 나는 남이 닦아 놓은 터 위에다가 집을 짓지 않으려 하였습니다”(롬 15:20). 하지만 바울은 보편적 교회론 또한 강조했습니다. 바울의 서신서는 교회의 견고한 리더십과 질서 유지를 위한 깊고 풍성한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보편적 교회론을 철저히 지키며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갈 2:7-8). 베드로는 유대인을 중심으로 사역하는 목회철학을 가졌지만, 교회의 본질이 이방인을 포함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사도행전 10장). 보편적 교회론이라는 무대 위에서 각자의 목회철학이 춤을 춘 것입니다.

보편적 교회론의 빛과 그림자

한쪽을 무시하고 한쪽으로 치우칠 때에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우리 교회는 특정한 사역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대신, 성경이 가르치는 원칙에 따라 교회를 운영합니다.” 보편적 교회론을 강조하면, 교회는 성경이 제시하는 본질적인 원칙을 더욱 충실히 따를 수 있습니다. 보편적 교회론을 강조하면, 신앙의 기본에 충실한 사람들이 모일 가능성이 커집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와 말씀 중심의 교회입니다. 누구든지 와서 자유롭게 신앙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듣기에는 좋지만, 구체적인 사역 방향이 모호해질 수 있으며, 성도들의 사명감과 헌신이 약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한 지역교회는 시대와 문화 속에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해야 하지만, 보편적 교회론만 강조하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특정한 부류에게 다가가는 선교적 사명을 간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예배 중심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강조할 경우, 젊은 세대나 비신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는 목회철학이 보완할 수 있습니다.

목회철학의 빛과 그림자

“우리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지역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 목회철학을 강조하면 교회의 방향성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이 교회는 내게 딱 맞는다”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빠르게 결집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강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정한 활동에 집중된 정체성이 강할수록 배타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만족하는 폐쇄적인 공동체가 될 위험도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부분을 강조합니다”라는 것이 성경적 균형을 잃게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선교를 강조하는 교회는 내부 교육과 교제가 부족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반대로, 예배와 찬양을 강조하는 교회는 성경 교육과 제자훈련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목회철학이 교회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보편적 교회론 안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회자 자신이 긴장을 놓칠 때

개척 초기에는 보편적 교회론을 강조했습니다. “목회자의 철학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저 성경적인 교회론에 충실하면 되지!” 성경적 본질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분명 ‘교회를 개척하는 교회’와 같은 비전과 목회철학을 글로 정리해 두었지만, 실제로 목회철학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교회를 세우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보편적 교회론과 목회철학의 관계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고, 목회철학을 강조하는 것이 자칫 이기적으로 자신을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지도력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적인 교회를 갈망하는 기본에 충실한 성향을 가진 이들이 모여들었고, 교회는 예배와 교육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목회철학을 리더십을 통해 적절하게 드러내지 못하면서 구체적인 사명과 역할에 있어서 효과적이지 못한 것을 넘어 혼란과 갈등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좀 더 분명하게 방향을 제시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목사님! 이미 마음으로 결정하고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너무나 상반된 요구와 평가 속에서 혼동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은사와 부르심으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은 무력감과 위기의식을 쌓이게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 공동체적으로 다시 목회철학을 세우려 할 때는 “교회가 성장하니 박 목사가 권위적으로 변했어” 하는 말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당회 기능을 하는 ‘섬김위원회’에서 그동안 눌려왔던 마음들이 모두 표출되었습니다. 회의는 너무나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고, 저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서둘러 한 사람씩 만남을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다음 날 강단에 서서 설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주일 저녁,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가능하면 내 말을 줄이고, 형제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들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깊은 회복의 순간 속에서 형제가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꺼내 놓았습니다. "목사님은 목사님이 생각하는 목회철학을 교인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은 익숙하면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익숙했던 이유는 내가 늘 '내가 세운 철학이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며, 교회 구성원의 필요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고려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형제가 내 내면의 갈등을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입니다.

회중이 긴장을 놓쳤을 때

그 대화 이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목회철학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인데, 왜 그것이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나 자신을 돌아보며 깊이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목회철학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회중도 보편적 교회론과 목회철학의 관계를 모순으로 이해하면 많은 오해와 갈등의 중심에 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목회자가 전도에 집중하기를 원할 때, 교인들은 내적 돌봄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성경 교육을 강조할 때, 교인들은 실천적인 봉사와 선교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가 교회 운영에 있어서 새로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할 때, 교인들은 “우리끼리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도 결국 우리는 같은 교회를 세워가고 있는 동역자입니다. 나중에, 그 형제와 다시 만나 이러한 부분을 나누며 서로를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보편적 교회론이라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목회철학

목회철학은 보편적 교회론이라는 무대 위에서만 춤을 춰야 합니다. 은사와 부르심을 따라 사역해야 하지만, 교회의 본질적 기능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은사와 성향에 갇히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나는 비교적 가르침에 강한 편인 사역자인 것 같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며 끊임없이 돌봄(심방)에 대한 요구를 받았습니다. 이럴 때마다 교회 구성원들의 필요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교회 성장 단계마다 목회철학의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자신의 은사를 통해 공동체를 잘 갖추어 보편적인 교회를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큰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목회자의 은사만 강조되면 교인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반대로, 교인들의 은사만 반영되면 목회자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사명을 즐겁게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목회철학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교회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한 목회자의 은사와 사역을 평가하는 것은 교만일 수 있습니다. 한 명의 목회자가 모든 요소를 동시에 강조하며 사역하기는 어렵습니다. 교회가 맞은 계절에 따라 특정 요소를 더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겸손함은 형제에게 손을 뻗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만듭니다. 또한, 서로를 통해 온전해지는 존재임을 고백하게 합니다. 목회철학은 오직 복음의 은혜 안에서 공동체의 은사를 즐거워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신자들은 스스로를 온전한 자로 여기지 말고, 끊임없이 말씀 앞에서 자신을 조율하는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서로 소통하며 조율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모든 목회자들이 자신의 부르심과 은사를 가지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와 지금 여기에 있는 공동체에 맞추어 조율하는 과정에서 욕망을 부인하되, 자신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회중은 목회자가 자신의 은사와 부르심을 살아가며 근심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사역하는 것을 기뻐하며 동역하면 좋겠습니다(히 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