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나 ‘메디나’는 팔레스타인에서 남쪽으로 사막을 건너야 만날 수 있는 동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곳에서 이슬람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우선은 주후 70년에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완전히 흩어진 유대인 중 일부가 사막을 건넜을 가능성이 있고, 사막을 오가면 아라비아해와 지중해 사이를 연결하며 무역하던 낙타 상인들을 통해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무함마드는 이런 낙타 상인 부족의 일원이었습니다.
명상을 즐겨하던 무함마드가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 천상을 다녀오고 계시를 받아 이슬람을 창시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이슬람 성지가 된 것도 천상을 다녀오기 위해 승천한 장소가 예루살렘의 어느 산이었다고 하네요. 무함마드가 죽을 때 승천한 것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은데, 실제는 펄펄하게 살아서 승천했고 다시 땅에 내려와 이슬람을 창시하고 메디나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무함마드의 무덤도 메디나에 있지요. 이슬람은 알라신을 믿는데, 유일신 곧 하나님입니다. 이슬람에서는 예수의 존재도 인정합니다. 선지자 중의 하나로 믿지요. 다만 우리처럼 하나님의 아들로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한 존재로 믿지는 않습니다. 무함마드는 하나님이 보내신 마지막 선지자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우리는 예수님으로 믿지만, 그들은 무함마드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무함마드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을 정복하는 군주의 모습이 아니었고, 무함마드는 그런 군주의 모습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 건져낸 군주적 지도자였지요. 더불어 선지자이기도 했고요. 무함마드는 이런 점을 들어 예수보다 자신이 더 모세와 비슷한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미혼이고 모세와 무함마드는 기혼자이기도 했지요. 무함마드는 다른 군주들과 달리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부와 권력을 누리던 유럽의 군주나 교황과는 사뭇 다른 지도자였지요. 힘으로 부족들을 제압하기는 했지만, 억압하기보다 잘 돌봐주는 선지자였으니 그의 인기는 이슬람 제국의 기초를 쌓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미혼이시라 후손이 없어서 제자들을 통해 기독교가 확산하였지만, 무함마드는 결혼했기 때문에 후계자 자리를 놓고 파가 갈리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을 중심으로 이슬람을 확장한 수니파와 무함마드의 혈통을 통해 이슬람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 시아파가 대립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국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IS 이슬람 무장 테러단체는 수니파의 한 분파입니다. 이런 대립이 생긴 표면적인 이유는 무함마드에게 아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위를 통해 시아파가 생긴 것이지요. 수니파는 제자 중에서 전쟁에 능한 군주적 능력을 지닌 자를 칼리파(제정일치군주)로 세워 이슬람 세계제국을 실현하기를 원했습니다. 시아파보다 열 배나 수니파가 많았기에 이들은 무슨 신의 사명처럼 정복 전쟁을 치러 거대한 이슬람 제국을 만든 것입니다. 이슬람 초기인 7-8세기 정통 칼리프 시대는 이런 정복 전쟁으로 큰 성과를 이룬 시기였습니다. 유럽의 스페인까지 점령되었을 정도였지요. 그뿐만 아니라 751년에는 중국의 당나라와 맞붙어 이기기까지 해서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가 이슬람의 수중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정통 칼리파 시대에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에는 칼리파의 힘만으로는 부족해서 왕조가 생겨났습니다. 우마이야왕조가 그 시초였지요. 750년에 우마이야 왕조가 막을 내리고 이슬람 제국은 내분이 일어나 분열 왕국이 되었고, 이들은 서로 싸우는 적대 관계가 되어버립니다. 기독교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어 싸운 것과 비슷했습니다. 분열된 지역에 따라 수니파가 강세인 지역도 있고, 시아파가 강세인 지역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형제 관계가 아니라 그냥 원수 관계였습니다. 서로가 배교자라고 하며 이들은 용서도 없이 그냥 잡히면 죽여 버렸을 정도라고 하네요.
그러던 그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 오스만튀르크 제국이었습니다. 그냥 힘으로 밀어 붙여 하나의 제국으로 만들었지요. 이 시기가 14세기 후반쯤입니다. 오스만튀르크는 매우 강력해서 이탈리아 본토까지 위협했고, 동로마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이 함락시켜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을 가장 오래 다스렸던 제국이 오스만튀르크로 400년간을 다스렸을 정도이니 유럽이 벌벌 떨만한 제국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가장 강력한 칼리파가 된 셈이었으나, 지금은 다 찢어지고 튀르키예로 남은 상태입니다.
유럽이 산업혁명과 식민지 개척으로 강대국이 되면서 이슬람 제국은 완전히 쪼그라들게 됩니다. 유럽인들이 인도랑 무역하기 위해서는 대서양으로 나가서 아프리카대륙을 끼고 인도양으로 삥삥 돌아서 다녀야 할 때, 홍해와 페르시아만으로 나가는 길목은 매우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홍해는 수에즈운하를 만들어서 가는 길이 빠르고, 페르시아만은 유럽 본토에서 철도로 이라크의 바스라까지 연결한 후 페르시아 항만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교통로였기에 이슬람 제국은 서유럽 강대국의 놀이터가 되어버립니다. 수에즈운하 사용권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것도 예사로 일어났고, 독일에서 바스라까지 연결하는 철도 역시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과의 전쟁은 수차례 벌어졌습니다. 당연히 그 전장은 이슬람 제국이었고요.
세계대전 이후 이슬람권은 석유 매장지가 되어서 그 중요성이 세계 경제를 흔들 정도였으니 석유를 중심으로 한 이권 전쟁도 만만찮고,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왕권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나라는 몇 안 되고, 각종 혁명으로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국으로 변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칼리파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가 겹쳐서 옛 이슬람 제국을 그리워하는 꼴통 수니파 집단들이 부활을 꿈꾸며 칼리파를 세워 무차별 살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재 IS 이슬람 무장 테러 집단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이슬람 칼리파 국가로 천명하고 있지만 국제 정세는 그냥 종교테러집단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현대전은 거의 이런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결과, 석유 이권을 놓고 벌이는 이권 다툼과, 아랍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근대화에 따른 분쟁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슬람 세계가 화약고가 된 셈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