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by Jaesub Kim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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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훈의 ‘책과 함께’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원제: Stoner (1965년)


스토너를 만났다. 

그는 미주리 덴버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친 교수이고 평범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딸은 일찍 결혼하여 집을 떠나 시댁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종신 교수이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승진을 별로 해본 적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내를 대할 때도, 그리고 멀리 있는 딸을 생각할 때에도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강의실의 그는 남다른 열정을 지닌 교수였다. 강의에 사로잡혀 자신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따뜻한 아버지처럼 제자들을 살뜰히 보살피기도 했다.

스토너가 대학교에서 지내는 동안 세상은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렀다. 1차, 2차 세계대전이 학교에도 영향을 끼쳤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두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미주리를 벗어나 본 적 자체가 없었다. 그다지 여행도 즐기지 않은 사람이었다.

스토너 교수는 딱 한 번 자신의 제자이기도 하면서 동료 교수였던 여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었다. 순수한 열정을 가진 스토너 교수였던 만큼 그 둘의 사랑도 순수하고 열정이 넘쳤다. 하지만 아무리 순수한 사랑도 아내가 있는 교수에게는 불륜에 불과한 것이었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자 교수도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스토너 교수는 1965년에 발표된 미국 소설 속 주인공이다. 처음 이 소설이 발표됐을 때는 이 책에 관심을 보인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50년의 세월이 지난 2006년쯤에 이 소설이 유럽에서 사람들의 관심에 오르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이 관심은 어느덧 유럽 전체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2020년 1쇄를 시작으로 2025년 20쇄가 넘게 발행되고 있다.

이 소설은 이렇다 할 반전이 없는 소설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과대학에 진학한 시골 청년이 영문학에 눈이 떴고 교수로 살아왔다는, 그런 삶의 이야기이다. 그가 이룬 대단한 업적도 없고, 그가 실패한 다이내믹한 스토리도 없다.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여럿 있었어도 그가 그들에게 반격을 가했다거나 반전을 일으키는 사건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스토너는 잠잠했고 견고했으며 자신의 일에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었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암에 걸려 끝내 죽음에 이르고 말지만, 이런 그의 삶이 다이내믹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평범한 이야기로 비춰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도 특별할 것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이야기가 하나의 찬란한 보석까지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이 소설을 읽으며 스토너의 삶에 푹 빠져들었다. 그는 과묵한 사람이며, 참을 줄 아는 사람이다. 특별히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가끔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을 들여다 볼 때 보이는 그런 평범한 모습을 한 사람이 그였다.

사람들은 스토너의 삶이 답답한 인생이었다고 말할지 몰라도, <스토너>를 쓴 존 윌리엄스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그는 분명히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작가의 표현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교육자의 삶을 특별한 반전 없이, 꾸준히, 마라토너처럼 달릴 수 있었던 스토너의 삶은 그것 자체로 훌륭한 삶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의 삶을 그린 소설 <스토너>는, 뉴욕 타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위대한 소설이 아니라 완벽한 소설이다.”

<스토너>를 읽고 나서 내 삶을 반추해 본다. 가난한 부모님, 앞을 보지 못하시는 시각장애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이렇다 할 반전 없이 세상을 살아온 나 역시 나중에 소설에 등장한다면, 그 소설 <전재훈>은 <스토너> 비슷한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 든다. 목회를 사랑했고, 성공하지는 못했을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목회자의 길을 꾸준히 걸었던 사람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이를 두고 누구는 단조로운 인생이었다고 말하겠지만, 어쩌면 또 누구는 그것대로 훌륭한 삶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스토너는 나를, 내 삶을 위로해 주었다.

스토너의 삶을 이끈 것이 영문학에 대한 열정이었다면, 내 삶을 여기까지 이끈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다. 영문학에서 스토너 교수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이끄신 하나님은 분명 성대한 잔치를 베푸시고 수고했다고, 애썼다고, 너로 인해 내가 기뻤다고 말씀해 주실 것만 같다. 비록 내가 실수가 많고 허물 많은 사람이긴 했어도, 나에게는 언제나 내가 ‘주 안에서 발견될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도 스토너의 삶을 단조롭고 따분한 삶이었고 내 삶도 스토너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내 믿음이 그리 강하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스토너의 삶으로 내 삶을 위로하시며 내게도 하나님의 깊은 애정이 있음을 알게 해주시는 것만 같다.

소셜 미디어에 반짝거리는 인생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한탄하고 있다면, 스토너에게 잠시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어떨까. 스토너의 삶을 엿보며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볼 줄 아는 눈이 생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