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tock.com/Fotografie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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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목사들 사이에 설교 준비를 위해서 Gemini나 ChatGPT 같은 AI 플랫폼을 사용할지 말지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어디를 가도 AI의 능력에 감탄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만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AI 플랫폼은 특정 주제(prompts)에 맞춰서 매우 정교하고 인상적인 설교 개요, 설명, 해설, 적용까지 제공한다. AI 플랫폼의 역량은 정말 놀랍다.

그럼 목사가 설교 준비에 AI를 사용해야 할까? 내가 가장 흔하게 접하는 반응은 신중하지만 동시에 개방적인 태도이다. AI를 사용하여 설교 주제를 만드는 것, AI로 하여금 설교의 전반적인 흐름과 예화까지 만들도록 하는 건 괜찮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단, 설교 준비 대부분의 시간을 말씀 해석에 할애하고 또한 설교 원고 작성에 AI를 의지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다. 

기술에 기반한 경고는 효과가 없다

AI와 관련해서 목사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나는 그들이 단지 기술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목회자라면 설교 준비에 피와 땀을 쏟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안다. 따라서 말씀을 제대로 다루는 능력 자체를 포기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 책임을 로봇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교인들을 잘 아는 것, 그들의 특별한 필요와 유혹, 그리고 소망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목회자에게 필수이다. 좋은 설교가 요구하는 개인별 맞춤 접근 방식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AI와 관련해서는 흔히들 말한다. 설교자라면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기술이 있기에, AI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경고는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이 정도의 이유만으로는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AI를 거부하도록 설득하는 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마치 대학생들에게 논문 개요 작성에 ChatGPT 사용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분석과 개요 작성에 필요한 특정 기술 개발의 함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라도 입에 침을 튀기면서 강조할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은 이것이다. 당신이 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결과를 위해서 이미 AI의 몇몇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면, 아니, 몇 가지 기술을 더 활용하는 게 뭐가 문제가 되냐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상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다. 

실종된 고리: 예배

다음은 설교 원고 작성과 관련해서 AI 활용에 대한 질문을 받은 존 파이퍼의 조언이다. 그는 이 대화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AI”는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AI는 인간의 학습과 문제 해결 방식을 모방해서 놀라운 정확도로 단어 패턴을 파악하고 예측한다. 하지만 인공 감정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로봇은 감정을 느낄 수 없고, 예배할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즐길 수 있다. 로봇이 경배나 감사의 단어 패턴을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예배하고 감사하는 건 오직 인간만이 가능하다.

존 파이퍼는 말한다. “예배라는 게 단지 컴퓨터가 올바르게 수행하는 사고가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감정이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설교자는 단순히 교인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명은 단지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설을 제공하거나 사전, 백과사전, 또는 책에 나오는 성경 단어와 구절에 대한 내용을 반복하거나 요약하는 것 이상이다. 로버트 스미스의 말처럼, 우리는 주해 안내자(exegetical escorts)가 되어야 한다.

“주해 안내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을 하나님의 영의 능력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한다. 그래서 그 결과, 그들이 변화를 경험하도록 한다.”

단순한 말만으로 이 소명은 이룰 수 없다. 예배는 설교의 전제 조건이자 정점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찬양을 잘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모든 목사가 예배 사역자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예배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교인들의 마음을 이끌어 왕이신 예수님을 찬양하게 한다. 신학은 예배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감당한다. 선교의 목표는 예배이며, 설교의 핵심은 예배이다. 설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의 선하심과 은혜에 경외심을 갖는 것이다.

왜 AI 기반의 설교는 부족한가

로봇은 예배할 수 없다. 따라서 설교 준비를 로봇에게 의존하는 것은 좋은 설교의 필수 요소인 마음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존 파이퍼는 설교 초안을 로봇에게 맡기는 것을 악한 일이라고 말한다. 설령 나중에 다시 검토하고 여기저기 수정하더라도 말이다. 그는 왜 그토록 강한 표현을 사용했을까? “하나님은 설교자의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았거나 설교자와 관계없는 감정 또는 설교자에게 진리가 아닌 생각을 통해서 교인들의 마음에 어떤 역사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설교는 단지 성경 구절에 대한 사실들을 되뇌고 전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설교는 말씀이 불러일으키려는 감정을 교인들이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하고, 예시하고, 그들의 교화를 위해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다음 세대가 교리적으로 건전하고, 예술적으로 묘사되고, 완벽하게 다듬어졌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은 설교를 물려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건 어떤 설교인가? 온갖 감동적인 단어로 채워졌지만, 말씀에 의해 불타오른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설교. 회개의 대본을 충실하게 따르지만 설교자의 영혼을 꿰뚫어 생긴 상처를 찾아볼 수 없는 설교.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찬양의 말로 쌓여 있지만, 정작 교인들에게 보여줄 정도로까지 그의 영광의 무게에 떨어본 적이 없는 설교자의 설교.

마음이 없는 설교는 곧 능력이 실종된 설교이다.

출처: The Missing Heart in AI-Generated Ser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