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인 동시에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Total Depravity)입니다. 목회자는 목양의 대상을 하나님의 형상 쪽에 더 무게를 두고 대하거나(형상강조형), 타락한 죄인으로서의 면모에 더 깊이 반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타락강조형). 둘 사이에 있는 긴장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목회자의 말과 행동, 판단과 인내, 가르침과 돌봄 속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실제입니다. 형상강조형 목회자는 관계, 가능성, 변화에 집중하며, 타락강조형 목회자는 죄의 본성과 규율, 경계에 집중하는 경향을 띕니다. 목회의 계절과 대상에 따라 어느 한쪽을 강조할 수는 있겠으나, 전체 인간관의 긴장을 놓칠 때 사역의 스타일과 정서, 공동체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복음은 인간의 깊은 죄성과 동시에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동시에 조명하며, 둘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게 합니다. 

형상 강조형으로서의 목회 초기

교회 개척을 앞두고 장밋빛 비전에 부푼 제게 경험이 많은 선배 목사님들은 회중이 타락한 죄인인 것을 간과하지 말 것을 조언했습니다. 나는 사람을 깊이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신뢰할 대상이 아닙니다”라고 조언했습니다. 상처 입은 자와 소외된 자의 친구가 되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목회자 자신과 배우자가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관계 지향적이었던 나는 선배들의 관계가 제한적으로 보였습니다. 포용적이지 못하고 배타적으로 보였으며, 다정한 목회 스타일이기보다 사람을 쉽게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요. 그런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라는 말에 “사람은 누구나 변화될 수 있어요. 그것을 포기하면 왜 목회를 하나요?”라고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시점에 저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치우쳐 있었던 듯합니다. 선배들은 치우친 나를 바로잡기 위해 타락한 죄인을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로부터 11년이 지났습니다. 11년이라는 시간에 쌓인 경험이라는 무게는 나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었을까요? 형상강조형인 나는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진리(?)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치우침이 만드는 상처

문제가 있는 사람도 결국 ‘상처받은 사람’으로만 해석하기에, 그들을 바로잡는 것은 사랑이 없는 행동처럼 느껴졌습니다. 나 자신도 죄인이라는 인식 속에서, 성도들을 인도하고 지도하는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설교와 상담에서 죄와 회개를 분명하게 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바로잡음 없이 계속 믿어줘야 한다는 치우친 교리를 붙잡고 있을 때에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무례한 행동과 이용당하는 상황에 스스로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공동체 안에 혼란과 갈등이 쌓이지만 제대로 다루지 못하다 보니 나 자신이 지속적인 상처와 스트레스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형상강조형은 목회자 자신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갈등과 상처로 이끄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상처가 만든 반대편으로의 치우침

상처는 마음의 무게추가 되어 반대로 기울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개척초기에 들었던 선배들의 충고가 떠올랐고, 그 배경이 이해되었습니다.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로 다른 편을 강조하는 것은 또 다른 상처를 만들 뿐입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사라지는 일은 협력의 여지를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체를 관리하거나 통제하려고 할 때에 ‘관계 기반 목회’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타락했기에 규율, 감시, 규제가 없으면 반드시 죄를 짓는다”라는 식으로 가게 되는 것이죠. 점점 공동체 안에서 적극적으로 성장을 기대하기보다 ‘문제가 생기지 않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수세적 목회를 하게 됩니다. 이 과정 속에 목회자는 복음의 회복 능력보다, 죄책감과 수치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죄의식이 깊어지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결과 변화를 기대하지 못함으로 훈련과 성화에 대해 체념하는 상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복음 안에서 긴장을 붙잡다

목회자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생존의 몸부림으로 다른 쪽으로 치우칩니다. 상처의 무게로 치우치는 것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목회를 하면서 돌변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비교의식 속에서 자만과 자책이 만드는 변화도 많으나, 상처가 만든 변화일 가능성도 큰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말하는 목회 조언의 대부분은 좌로나 우로 치우친 내용일 때가 많았습니다.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가해자가 되는 것은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잠깐은 자기가 사는 길처럼 보일 줄 모르지만, 누군가를 살리는 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갈림길 속에서 갈팡질팡할 때에 나를 구원한 것이 ‘복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감히 믿었던 것보다 더 죄가 많고 결함이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감히 희망했던 것보다 더 사랑받고 받아들여졌습니다.” 특별히 강의와 글을 통해 만난 팀 켈러 목사님을 통해 인간에 대한 교리가 목회자 개인과 공동체의 현실이라는 옷을 입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타락한 죄인’ 교리가 현실이라는 옷을 입을 때에 더욱 매력적인 교리가 되는 것을 재발견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드러내는 복음

개인의 삶과 목회에서 복음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 배울 수 있습니다. 율법 아래에서만 죄인을 바라보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간음 중에 붙잡힌 여인 곧 율법 아래에서 정죄당할 수밖에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요한복음 8:11) 예수님은 율법을 이루는 대속의 은혜 아래에서 회복될 하나님의 형상으로 죄인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녀를 지배했던 죄의 세력에 맞서면서 은혜의 통치 속에서 살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정죄하는 세상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복음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복음적 리더십

사도행전 6장에 일곱 일꾼을 세우는 장면을 보십시오.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비교하면 훨씬 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구제의 문제를 두고 헬라 배경 교인들과 히브리 배경 교인들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시작된 것입니다. 초기 교회의 지도력(사도들)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수 있는 불씨가 발화된 것입니다. 사도들은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자신들의 한계를 알아주지 못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한편 자책하며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한계를 인정하고 사람을 세우는 해결책을 제안합니다. 은혜와 감사를 앞세워 회중에게 책임을 떠넘김으로 권위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직분자를 세움으로, 하나님의 형상인 교회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복음 안에서 함께 자라나는 공동체

목회 현장은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각자의 치우친 반응이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그 치우침이 또 다른 치우침으로 맞서게 될 때, 갈등과 반목이 생겨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를 완전히 예방할 수 있는 공동체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이야말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라”(엡 4:15)는 말씀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을 함께 드러냄으로써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며, 공동체 역시 복음을 삶의 현실에 입힘으로써 더욱 복음을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함께 복음 안에서 자라가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성장입니다. 초대교회 역시 영육의 필요를 채우는 사랑(행 2:47, 4:32-37)과 죄를 분별하고 질서를 세우는 진리(행 5:11, 6:7)로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복음은 단지 과거를 해석하는 렌즈를 넘어, 현재를 이끄는 방향이며, 미래를 여는 소망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는 설교, 상담, 훈련, 징계, 교회 정치 등의 목회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전적 타락’의 긴장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