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칼뱅주의냐 아르미니우스주의냐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신약시대부터 다양하고 뜨거운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도들의 삶을 망칠 만한 거대한 유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초대교회를 뒤흔들었던 영지주의 중 하나인 발렌티누스파는 이미 특별한 지식을 통해서 구원 받은 사람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아도 문제가 없다는 윤리적으로 무책임한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13]
유다서는 이러한 이단적 사상에 대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유 1:4)라며 강력하게 저항한다. 은혜를 더하려고 죄에 거하겠냐(롬 6:1)는 바울의 질문도 바로 이런 비도덕적 영지주의를 겨냥한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서가 가르치는 대로, 율법을 따르거나 혹은 자신의 의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그 다음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성도들로 하여금 영지주의의 솔깃한 유혹을 벗어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성도의 삶에 선한 목표를 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을 멋지게 상대할 수 있는 신학적 개념이 테오시스(θέωσις)이다.[14] 이 단어 역시 속 시원하게 정의하긴 어렵지만,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그 의미를 엿볼 수 있는 구절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편 82:6을 인용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이라는, 복음주의 계열의 성도들에게는 굉장히 어색하게 들리는 말씀을 하신다.[15]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을 본받는 자”라는, 보다 듣고 소화하기 좋은 표현을 사용한다.[16] 베드로는 하나님의 계획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라며[17] 굉장히 목회친화적인 언어로 주장한다. 목사로서 베드로를 격하게 칭찬하고 싶다.
테오시스에 대하여 교회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표현은 아마도 이레네우스와[18] 아타나시우스의[19] 글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가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을 하나님으로 만드시려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그리스도 본받음(Imitation of Christ)은 테오시스의 가장 가시적인 형태였고, 순교는 그 완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20] 벤 드루어리(Ben Drewery)는 조심스럽게 이러한 테오시스의 내용 혹은 속성을 “윤리적 완성, 정욕의 제어, 타락과 죽음으로부터의 자유함”이라는 현대적 언어로 정리한다.[21]
[13] But they lead a licentious life, and, to conceal their impious doctrines, they abuse the name [of Christ], as a means of hiding their wickedness; so that “their condemnation is just,” when they receive from God a recompense suited to their works. Irenaeus, Against Heresies, 1.25.3.
For this reason it is that they neither regard works as necessary for themselves, nor do they observe any of the calls of duty… Tertullian, Adversus Valentinianos, 30.
[14] 테오시스(θέωσις)와 아포테오시스(ἀποθέωσις)는 구별되어야 한다. 테오시스는 주로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했던 “신성화”를 뜻한다면, 아포테오시스는 로마인들이 주로 사용했던 “신격화”를 의미한다.
1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한복음 10:35). 이 구절은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 의해 인용된다. “Being baptized, we are illuminated; illuminated, we become sons; being made sons, we are made perfect; being made perfect, we are made immortal. “I,” says He, “have said that ye are gods, and all sons of the Highest.” Clement of Alexandria, Pedagogues, 1.6.
16)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에베소서 5:1)
17)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후서 1:4)
18) …the Word of God, our Lord Jesus Christ, who did, through His transcendent love, become what we are, that He might bring us to be even what He is Himself. Irenaeus, Against Heresies, Preface.
19) For He was made man that we might be made God. Athanasius, On the Incarnation, 55.
20) Vladimir Kharlamov, “Emergence of the Deification Theme in the Apostolic Fathers” in Theosis: Deification in Christian Theology(Eugene, OR: Pickwick Publications, 2006), 52.
21) Ben Drewery, “Deification,” in Christian Spirituality: Essays in Honor of Gordon Rupp, ed. Peter Brooks (London: SCM, 1975), 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