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성공회는 로마가톨릭과의 갈등 속에서 시작된 정치적 산물이었고 결과적으로 로마가톨릭의 구조 안에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이 접목된 영국만의 독특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들은 대륙의 개혁자 칼뱅과 마찬가지로 성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1549년에 초판이 발행된 ‘성공회 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에 보면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어서 성화는 도덕적인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에 맡겨진 삶이다.[45] 1563년에 영국 성공회의 신학을 요약한 ‘39개조 신조(Thirty-nine 39 Articles of Religion)’에는 성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제12조에는 이런 글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행이 영생을 얻기 위한 공로를 세우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앙의 증거로서 행해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46] 굉장히 칼뱅스러운 이야기다.
루터와 칼뱅의 성화론과 성공회의 성화론이 다른 점이 있다면, 성공회의 성화에는 개인의 영성과 헌신보다는 교회 공동체와 성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공회는 칼뱅과 같이 정교한 신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학만큼이나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회 공동체와 성직자들이 베푸는 성례는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상징(visible sign of invisible grace)’이며, 이 은혜를 적절히 사용할 때 성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세례를 통하여 성령을 받으며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와[47]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어 성화를 이루게 해 달라는 기도는[48] 로마가톨릭과 개혁주의의 절묘한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로잔운동을 이끌었던 존 스토트는 영국 성공회 소속이다. 고전이 된 『기독교의 기본진리』에서 그는 구원받은 성도가 가지게 되는 특권과 책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특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책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장하는 것이다.[49] 바로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성화이다. 성도는 지식과 거룩함에서 성장해야 하는데, 성령님께서 이 과정을 도우신다. 여기까지는 딱 칼뱅이다.
그러나 존 스토트는 신학자인 동시에 지역교회를 섬겼던 목사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성화란 신학적 영역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며 실천적인 제안을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과 책임 다음에 등장하는 의무이다. 그 의무의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인데, 성경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여야 한다. 의무의 둘째는 교회에 대한 것인데, 성도는 반드시 어떤 지역 교회에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 세례는 그리스도인의 교제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세상에 대한 의무를 가지는데, 지속적으로 선행을 해야 한다.[50]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성도는 성화의 과정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45] “We beseech thee to direct, sanctify, and govern, both our hearts and bodies, in the ways of thy laws, and in the works of thy commandments.” In “Morning Prayer, Collect for Grace,” The Book of Common Prayer.
[46] “Albeit that Good Works, which are the fruits of Faith, and follow after Justification, cannot put away our sins, and endure the severity of God’s judgment; yet are they pleasing and acceptable to God in Christ, and do spring out necessarily of a true and lively Faith: insomuch that by them a lively Faith may be as evidently known as a tree discerned by the fruit.” Article II: Of Good Works in 39 Articles of Religion.
[47] “Give thy Holy Spirit to this child, that he may be born again, and be made an heir of everlasting salvation.” In “Baptismal Liturgy,” The Book of Common Prayer.
[48] “Grant us therefore, gracious Lord, so to eat the flesh of thy dear Son Jesus Christ, and to drink his blood, that our sinful bodies may be made clean by his body, and our souls washed through his most precious blood.” In “Holy Communion Liturgy,” The Book of Common Prayer.
[49] 존 스토트, 『기독교의 기본 진리』(서울: 생명의말씀사, 2009), 218.
[50] Ibid., 22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