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교 분석 리포트: 2023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는 마치 한 장의 거울처럼 조용히 우리 앞에 놓였다. 그 거울은 무심할 정도로 냉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또렷하게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윤리적 민낯을 비춰 주고 있다. 동성애 이슈를 제외하고, 뇌물 수수, 혼전 및 혼외 성관계, 이혼 등과 같은 대다수의 윤리적 쟁점에서 그리스도인과 타종교인, 그리고 무종교인의 인식 차이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 사실은 단지 통계 수치에 머무르지 않고, 신앙이 삶의 방식으로, 윤리로, 더 나아가 하나의 세계관으로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현실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이러한 결과 앞에서 많은 이들이 실망을 넘어 조롱과 냉소, 또는 체념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기독교 윤리는 이제 별다를 게 없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이러한 평가가 다소 냉정하게 들릴 수 있으나, 통계와 일상에서 마주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그 반론을 허락하지 않는다. 믿음과 행위 사이의 괴리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기독교가 안고 온 내면의 긴장이자 외부로부터 던져진 질문이었다. 다만, 디지털 기술과 여론조사라는 실시간 감시 체계 아래에서, 그 간극은 어느 때보다도 생생히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과연 기독교 윤리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윤리적으로 탁월한가”를 통해 평가되어야 하는가? 만일 그것이 전부라면, 기독교 윤리는 다른 도덕 체계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기준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본래 기독교 윤리는 인간의 윤리적 완성 가능성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와 나약함, 그리고 도무지 도달할 수 없는 거룩함 앞에서 느끼는 깊은 절망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독교 윤리의 역설적 탁월성이 드러난다. 성경은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아무리 애쓰고 정결하게 살려 해도, 그 기준에 닿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윤리는 인간의 도덕적 자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랑을 내려놓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탁하는 겸손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윤리의 본질이며, 신앙과 윤리가 만나는 가장 심오한 접점이다.
칼뱅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의 거룩은 찬란한 태양과 같고, 인간의 윤리는 그 앞에서 겨우 서광(曙光)처럼 희미할 따름이다. 태양이 더욱 밝을수록, 인간의 그림자는 더 짙게 드러난다. 기독교 윤리는 이 밝음과 어두움 사이의 대비 속에서, 인간의 윤리적 미달을 은폐하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전능함을 증명해 낸다. 기독교 윤리는 우리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견인하시는 힘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의가 아니라, 부끄러움을 품고도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은혜의 길이다. 인간의 탁월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탁월성에서 출발하는 윤리, 바로 여기에 기독교 윤리의 진면목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