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이 일러스트는 밤하늘이 펼쳐진 책을 바라보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가운데에는 펼쳐진 커다란 책이 있으며, 책의 페이지에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과 구름, 산과 나무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습니다.
책 오른쪽 위에는 노란 별 하나가 크게 빛나고 있습니다.
책 앞에는 아이 다섯 명이 등을 보인 채 바닥에 앉아 책을 바라보고 있고,
왼쪽에는 강아지와 아이 한 명, 그리고 분홍색 목도리를 두른 어른이 함께 서 있습니다.
오른쪽 끝에는 체크무늬 옷을 입은 아이가 책 페이지를 만지듯 서 있습니다.
이 그림은 책을 통해 상상 속 세계를 보는 듯한 따뜻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진 끝]
2023년 3월 20일, 면접 심사 현장은 접수 시간보다 1시간 이상 일찍 온 200여명의 지원자들로 아침 일찍부터 붐볐다. 경쟁률은 10.9:1. 놀랍게도 이 현장은 청장년을 위한 구직 박람회가 아니라, 부산·경남 지역의 ‘이야기할머니’ 면접 심사장이었다.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은 만 56세부터 74세까지의 대한민국 국적의 시니어 여성을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사업이다. 2023년 당시 부산 해운대구 경쟁률은 53.1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이야기할머니”라는 사업이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토록 많은 노인들이 몰리는 것일까?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은 2009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이 공동 주관하여 시작했고, 어느덧 17년째를 맞았다. 2024년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신규 선발 공고문에 따르면, 이 사업은 “일정한 교육 과정을 이수한 여성 어르신들이 어린이집 및 유치원 등을 직접 방문하여 재미있고 교훈이 되는 우리 옛이야기와 선현미담을 들려줌으로써, 자라나는 아이들의 인성함양과 세대 간 소통을 도모하는 자원봉사 활동”이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이야기할머니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과한 뒤, 신규교육과 7개월 월례교육, 구연 실습, 현장실습까지 거쳐야 수료증을 받고 정식 활동이 가능하다. 모든 교육 과정에서 출석이 필수이고, 성직이 부진한 경우에는 중도 탈락될 수도 있다.
현직 이야기할머니로 활동하는 70세의 권사님을 한 분 만났다. 올해로 활동 5년 차를 맞았고, 마침 추가로 3년 승인을 받으신 상황이었다. 권사님은 30여 년간 선교원을 운영했고, 유년부 사역에도 25년 정도 봉사했다. 하지만 교회 캠프에 따라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데 육체의 한계를 느끼고는 아쉽지만 교사를 내려놓게 되었다. 오랜 기간 권사님이 해 왔던 경험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이었으나 교회에서 할 수 있는 봉사는 ‘경조부’와 ‘중보기도팀’ 정도에 한정되어 있었기에 새로운 역할을 찾고자 고민하던 중 이야기할머니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코로나 이전, 시니어 순장반에서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하고 싶은 활동’ 1위가 이야기할머니였다고 한다. 이러한 의견을 수렴해 교회에서 이야기할머니 활동을 준비했지만, 코로나로 무산되고 말았다고 권사님은 당시의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이야기할머니의 월평균 활동비는 약 50만 원이다. 권사님에게 이 금액이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하며 달려와 안기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야기에 집중할 때마다, ‘BTS가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권사님은 노년기에 접어들며 자신감이 자주 떨어졌지만, 이 활동을 통해 존재감을 되찾고 있다고 했다. “10점 만점에 8~9점 줄 수 있어요.” 권사님의 말에는 확신과 감사가 묻어 있었다. 이 활동은 어린이집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가정으로도 이어진다. 손주들이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싶어 자주 놀러온다.
이야기할머니 활동은 교회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몇 가지 부분에서 성경적인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성경은 ‘거대한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임했고, 기록되었다(시 44:1). 부모와 조부모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자손에게 들려주었고. 그렇게 세대를 넘어 전승된 하나님의 이야기가 성경 속에 가득하다(시 78:1-8). 성경은 창조기사에서부터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언약과 구속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게할더스 보스는 “성경은 교리적인 안내서가 아니라, 극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는 역사책”이라고 했다.
이야기할머니 활동은 앞서 본 것처럼 사명감과 헌신,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이 잃은 세대 간 소통을 회복한다는 점에서 성경적 사역이다. 이 활동은 세대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담을 허무는 통로가 되며,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한 선결 조건인 ‘세대 간 연결’을 실현하는 역할을 한다.
말리 출신의 저명한 작가이자 민족학자이며 유네스코 집행이사였던 아마두 함파테 바(Amadou Hampâté Bâ, 1900/1901–1991)는 이런 말을 남겼다.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그는 아프리카 구전 전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노인을 ‘살아있는 지식의 보고’로 비유했다. 어디 아프리카에서만 그럴까.
구약성경에서 노인을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인 ‘자켄(זָקֵן)’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인생의 연륜, 지혜, 경험이 응축된 존재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세바 토바(שֵׂיבָה טוֹבָה)’라는 히브리어 표현도 사용된다. 이는 문자 그대로는 ‘좋은 노년’이라는 뜻이며, 경건하고 지혜롭게 살아온 자에게 주어지는 복된 인생의 결실을 의미한다. 노년기는 창조 질서 안에 속한 특별한 인생의 시기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존경, 영광의 시간이다(잠 16:31; 레 19:32).
신약에서도 노년은 단지 연령을 나타내는 표식이 아니다. 성경은 노인의 육체적 약함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며, 경험과 지혜를 가진 이로서 공동체를 이끌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민수기에 등장하는 갈렙은 노년에도 청년과 같은 열정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차지하고자 도전한다. 그는 85세의 나이에도 “나는 지금도 강건하다”고 고백했다(수 14:10-11). 그의 정체성과 사명의식은 나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었다. 오늘의 많은 교회가 노인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지만, 갈렙의 모습은 오히려 역동적인 ‘주체’로서 노인을 세우는 성경적 목회의 상을 제시한다.
이야기할머니 사역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보여주기’식 사역이 아니라, 로이스가 유니게에게, 유니게가 디모데에게 신앙을 전수했듯(딤후 1:5), 노인을 신앙의 전달자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지금의 구조나 상황이 당장 바뀌지 않더라도, 성경적 사역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이어갈 동역자들이 절실하다.
교회 안에서도 ‘성경 이야기 할머니’들이 활발히 사역할 수 있는 그날을 꿈꾼다. 교회학교 아이들이 달려와 “할머니! 성경 이야기 해 주세요~” 하며 안길 수 있는, 세대 간의 아름다운 소통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그날을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