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by Denis Fedotov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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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팀 켈러(1950.9.23-2023.5.19)

왜 팀 켈러는 단순히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그 전에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있는 문화 내러티브의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설교하는가? 이는 문화에 물든 사람들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은 포스트모던 시대는 특히 복음과 반대가 되는 문화적 세계관을 청중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경과 반대가 되는 기존의 생각의 모순을 드러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2021년 5월에 발표된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기독교인 수는 7년 동안 10퍼센트 줄어들었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의 54퍼센트는 교회 가지 않는 이유를 ‘관심이 없어서’ 라고 응답했다. 이제는 아예 교회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기독교가 활발하던 서구 사회에서도 겪은 일이다. 

레슬리 뉴비긴은 영국 교회가 부흥할 시대에 인도로 파송된 선교사이다. 그가 인도에서 사역을 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영국은 예전의 기독교 문화가 사라진, 이교도 사회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인도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의 상황이 영국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는 옛 방식만을 고집했고 문화의 토대가 달라진 영국에서 점점 교회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영국 교회의 쇠퇴는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달라진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서양 문화가 급속히 비기독교적 사회로 바뀌어 선교지의 모습이 되어 가고 있는데 교회들은 적응을 거의 못하고 있었다.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문화 변화를 개탄했다. 서양 교회들은 이전처럼 계속 사역을 하고 있었으나 오직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사람들만이 편안함을 느끼는 환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신자들의 개인적 삶을 위한 내적 활동들 (성경공부와 기도)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람들을 훈련하고 있었다. 정치, 예술, 사업 등 공공영역의 세속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도록 훈련하지 못했다. 모든 설교와 모임은 그들이 여전히 기독교화된 서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었다.[1]

레슬리 뉴비긴은 이렇게 다원주의화 된 문화 속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단순히 복음을 선포하는 것보다 먼저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있는 ‘계몽주의 이성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계몽주의적 시도란 인간 이성만으로 옳고 그름, 정의, 행복의 기준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관이다. 청중이 자신의 이성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성경을 판단하고 있다면 복음을 들어도 여전히 선택적 순종만을 하게 될 것이다.

문화 내러티브란 성경과 충돌하는 세계관적 명제로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자명한 진리처럼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과 배치되는 진리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성경과는 다르지만 진리처럼 믿고 있는 모든 신념은 자세히 살펴보면 모순이 존재하게 된다. 그 모순을 드러내면 청중은 복음을 더욱 수용하기 쉬워진다. 달리 말하면 복음으로 다가오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치워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코넬리우스 반틸이 말하는 ‘전제주의 변증’의 과정과 일맥상통하다. 반틸은 하나님이 자연과 성경이라는 두 가지 계시를 인간에게 주셨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자연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올바로 분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경을 바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세상, 인간을 이해하려 할 때 필연적으로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의 생각을 흔든 후에 복음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스스로 충족하시며, 독립적인 분이시다.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존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인간은 피조물이며 하나님을 통해서만 자신을 알 수 있는 의존적 존재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했는데, 이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모시지 않는 모든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기원에 대해 알지 못하는 무지 가운데 산다는 말이다.

이처럼 존재론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는 인간은, 인식의 차원에서도 스스로 진리를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 1:7)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인간은 스스로 태어날 때 진리를 알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선과 악을 분별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의 인식을 ‘수납적 재구성(receptive reconstruction)’이라고 부른다. 즉, 진리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며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재구성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을 따라 판단하고 독립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진취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사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꼴이다.

팀 켈러는 성경을 떠난 사고는 필연적으로 내적 모순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성경의 진리가 아닌, 사람들이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내러티브에는 언제나 자기모순이 존재한다. 비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지 않는 잘못된 문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신자들조차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 내러티브의 모순을 드러내는 설교는 신자와 비신자 모두를 겨냥할 수 있다. 팀 켈러는 이러한 모순을 지적할 때, 성경 말씀을 직접적으로 대립시키는 대신, 일반 서적이나 권위 있는 비기독교 지성인의 담론을 인용함으로써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오류를 드러낸다.

오늘날의 학문은 파편화되어 있으며, 학자들은 서로 다른 전제와 관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하는 주제라 할지라도, 그 반대편을 지지하는 목소리 또한 분명 존재한다. 팀 켈러는 이러한 ‘비정통적’ 목소리를 지혜롭게 인용하여, 문화적 내러티브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사유 구조를 무너뜨리는 설교적 전략을 취한다. 이 과정을 팀 켈러는 설교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이런 (변증적 시도는) 단순히 지적 활동이나 약삭빠른 수사학적 전략이 아니다. 다름 아닌 사랑과 돌봄의 행위다. 우리는 사회 문화적인 존재로서, 우리의 내면 동기들은 우리가 속한 인간 공동체에 의해 깊숙하게 형성된다. 성경 본문을 풀이하는 과정에서 기독교 설교자는 성경 메시지와 그 문화의 근본 신념들(그 안에 속한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신념들)을 비교하고 대조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오, 그래서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느낀 거였구나’ 깨닫게 된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 이르는 여정에서 이 순간이 가장 해방적이고 촉매적인 단계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2]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설교하기 전 단계에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게 하는 복음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변증의 역할이다. 문화에 접근하는 설교는 마음을 향한 설교의 준비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문화 내러티브를 분석하고 도전하는 설교의 출발점은 언제나 성경이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팀 켈러는 성경본문을 설교하는 강해와 삶의 적용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성경 강해가 인간의 필요에 강한 초점을 둘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류다. 성경본문은 거의 모두 그러한 실존적인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룬다. 우리의 질문에서 시작하고 다음 단계로 그 답을 찾아 성경을 살피는 방식에는 우리가 올바른 질문을 묻고 있다는 혹은 우리의 필요를 적절히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우리 문제에 대한 성경의 처방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성경의 진단까지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질병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성경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피상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3]

팀 켈러의 문화 내러티브 설교는 성경 본문에서 출발한다. 이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가 이사야 5장을 본문으로 ‘진노 아래 놓인 민족’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며, 물질주의·쾌락주의·개인주의 같은 현대의 문제들을 성경적으로 분석했던 설교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성경을 통해 문화 내러티브, 즉 인간의 내면에 내재한 모순과 한계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팀 켈러는 주로 일반 서적의 인용을 활용한다. 권위 있는 사람들의 가르침을 통해 문화 내러티브를 평가하고 도전하는 방식으로 좀 더 설득력 있게 논지에 힘을 싣는 것이다.

그는 앤드류 델방코, 찰스 테일러, 어니스트 베커 등의 사상가들뿐 아니라 영화, 잡지, 드라마, 소설 등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인용해 문화 내러티브의 긍정적 요소를 조명하거나 그 안의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회개의 자리로 이끌고자 한다. 이전 시대에는 죄를 깨닫게 하는 방식이 폴 워셔 목사처럼 죄를 강하게 지적하는 메시지였다면, 오늘날 죄에 대한 깨달음은 문화 내러티브를 통한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스며든 세계관과 생각을 깨닫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있음을 알고 사랑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이 속한 문화의 이야기를 복음으로 재조정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 글은 팀 켈러 2주기 기념 포럼 <팀 켈러가 사랑한 한국 교회, 한국 교회가 사랑한 팀 켈러>에서 발표할 예정인 고상섭 목사의 “팀 켈러가 현대 교회에 제공한 영적 부스터: 그리스도 중심 설교에 대하여”의 일부입니다.

[1] 팀 켈러, 센터처치, pp.524-525.

[2] 같은 책, p.35.

[3] 같은 책, 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