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이 사진은 야외 공원에서 남산서울타워를 배경으로 촬영된 풍경 사진입니다.
사진 중앙 위쪽에는 산 위에 세워진 남산서울타워가 보이며, 주변에 나무들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는 산등성이가 펼쳐져 있습니다.
아래쪽에는 구불구불한 벽돌 길이 공원 내부를 따라 이어져 있으며, 길 좌우에는 소나무, 관목, 꽃들이 정돈되어 있습니다.
왼쪽에는 키 큰 나무들이, 오른쪽에는 연못처럼 보이는 물가와 꽃밭이 위치해 있습니다.
하늘은 맑고 푸르며, 구름이 몇 조각 떠 있습니다.
[사진 끝]
7월의 이야기_도시
복음과도시가 매달 한 편의 '이야기'를 모아 들려줍니다.
교회를 개척하며 막막함과 외로움을 느낄 때 노회 목사님들과의 깊은 교제는 나를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다. 개척은 언제나 낯설고 외로운 길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워야 했고, 혼자의 힘으로 감당해야 할 과제들이 쏟아졌다. 그때 ‘걷기 명상’이라는 팀이 나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다. 노회 목사님들과 함께 도시 곳곳을 걸으며 나눈 대화와 경험은 단순한 산책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나는 팀의 막내로서 목사님들 사이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 도시의 풍경을 함께 걷다 보면, 마치 오래된 친구와 나누는 대화처럼 자연스럽게 삶과 신앙, 목회의 고민들이 흘러나왔다. 개척 초기에 가졌던 두려움과 부족함, 앞으로의 비전까지 모두 이 자리에서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눴던 묵직한 이야기들이 내 마음을 붙들었고, 사역의 무게를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남산
그렇게 함께 남산을 걸었다. 나에게 남산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을 품은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남산2호터널 아래 자리했던 한국맹인교회는 내 어린 시절 신앙의 뿌리가 되었다. 교회의 커다란 성전, 예배 시간의 따스한 기억, 친구들과 뛰놀던 교회의 골목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곳에 서니 모든 것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그 시절 자체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산 아래에는 ‘일셋집’이라 불리는 판잣집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매일매일 집세를 내야 했고, 언제든 삶의 터전이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환경이었다. 그곳에 나와 가족이 살았다. 부모님은 시각장애인이셨고, 생계를 위해 호텔에서 안마를 하시거나 거리에서 구걸을 하셨다. 때로는 전철에서 손을 내밀며 하루하루를 이어가셨다.
목사님들께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자, “전 목사는 건들면 힘들었던 시절이 줄줄 나와. 우리보다 어린데 어떻게 우리보다 훨씬 힘들게 살았어” 하시며, 내 삶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견뎌 오신 부모님과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셨다. 그 공감 속에서 나는 과거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었고, 현재 내가 서 있는 자리의 의미를 다시금 새길 수 있었다.
상계동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준비로 한창이던 시절, 정부는 ‘도시 미관 정비’라는 명목으로 거리에서 구걸하던 사람들을 도시 외곽으로 이주시켰다. 그 변화의 중심에 우리 가족도 있었다. 남산에서 삶의 터전을 이어가던 우리는 하루아침에 상계동 맹인촌으로 옮겨가야 했다.
상계동에 마련된 맹인촌은 열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다. 방 두 칸과 부엌, 욕실 하나가 전부였지만, 그곳에서 작은 집 식구들과 함께 일곱이 살아야 했다. 학교를 가려면 온통 배 밭이었다. 그 길을 걸어 삼사십 분을 가야만 하는 시골, 깡촌이었다.
맹인촌 아이들이 한꺼번에 학교에 들어오면서 우리에게는 “지저분한 장님 새끼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부모님이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구걸하러 가시면 경찰이 잡아다가 유치장에 가두었다. 우리는 부모님 없이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해야 했고, 때로는 길거리로 나가 껌팔이를 하며 먹을 것을 해결해야 했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어머니는 꿈에서 “반월로 가라”는 강한 메시지를 받았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반월’이라는 낯선 땅으로 향했다.
반월
반월, 지금의 안산은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 준 곳이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침술원을 시작하셨고,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이 어머니를 찾아왔다. 매일 찾아오는 환자들 속에서 어머니의 손길이 전한 따스함은 우리 가정의 삶을 조금씩 바꿔놓았다. 나는 처음으로 ‘내 방’이라는 공간을 가지게 되었고, 어머니를 도우며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 갔다. 학교를 다녀온 후에는 누워 있는 환자들의 침을 빼고, 알코올로 소독해 드리는 일을 했다. 작은 도움이었지만, 가족이 함께 만들어 가는 안정된 삶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안산에서의 시간은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 신학대학원을 다니며 목회의 꿈을 다졌고, 결혼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여정도 이곳에서 시작했다. 안산제일교회 맞은편 작은 연립주택을 신혼집으로 삼았다. 낡은 집이었지만, 파란색으로 칠한 창틀 덕에 교회 앞에서도 한눈에 보일 만큼 특별한 집이 되었다. 그 집은 청년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배고프고 쉬고 싶은 이들의 쉼터가 되었다.
화성
삶의 터전이 안산에서 화성으로 옮겨진 것은 또 다른 큰 도전이었다. 화성은 ‘살인의 추억’으로 알려질 만큼 치안이 불안정한 동네였다. 이곳에 교회를 개척하며 아내와 아이들을 지켜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은 처갓집으로 들어가야 했고, 나는 교회에서 홀로 1년을 살았다. 텅 빈 교회에서 혼자 보낸 밤들은 때로는 외로움으로, 때로는 다짐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장인어른이 교회 근처 아파트로 이사 오시면서 방 한 칸을 내어주셔서 다시 한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처가살이는 어느새 20년 가까이 이어졌고,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나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장인어른 앞에서 게으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곧바로 출근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교회 공간이 작아 따로 사무실을 만들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작은 한 평이라도 내 책상이 있고 내 공간이 있는 것이 그저 감사했다.
시간이 흐르며 교회와 함께 나의 공간도 조금씩 변화했다.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여러 번 교회를 옮기면서 이제는 사무실만 임대하고 교회는 주일만 렌트해서 예배를 드린다. 그 덕에 지금의 사무실은 TV와 냉장고, 책상과 침대가 놓인, 그 어느 때보다 넓고 평화로운 공간이다. 외진 곳에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적고, 새소리와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리는 이곳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안식처다. 처음으로 마음껏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오롯이 나를 위한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동을 여행하는 중에 만난 건축가 유현준의 책이 내 삶을 공간으로 반추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공간 인간을 시작으로, 그의 책 다섯 권을 읽으며 건축이라는 렌즈로 삶과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다. 유현준은 건축이 사람의 삶을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동굴에서 모닥불을 중심으로 모여 살던 인류의 삶부터, 제사 중심의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그리고 오늘날 도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흐름을 건축이라는 관점으로 풀어낸다. 그의 공간 이해는 나에게 신선함 그 자체였다.
그의 책을 통해 나는 내가 살아온 공간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남산의 판잣집, 상계동의 작은 집, 안산의 파란 창틀이 있는 신혼집, 향남의 외로운 교회와 지금의 사무실… 이 모든 공간은 외형보다 그 안에 담긴 ‘삶’이 더 중요했다. 유현준은 ‘화목하게 만드는 집’을 좋은 집이라 말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화목의 직책이 떠올랐다. 주님은 화목하게 하는 제사장이 되셨고, 우리 또한 화목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점점 ‘고립된 성’이 되어가고 있다. 주변과 단절되고, 세상과의 소통이 부족한 교회의 모습 속에서, 나는 우리가 본래 서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교회가 도시와 소통하며, 세상과 연결되는 공간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하고, 대화를 나누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유현준의 책은 나로 하여금 그런 질문들을 품게 해 주었다.
유현준의 책을 통해 건축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얻었듯, 앞으로는 도시를 산책하며 건물들의 모습을 더 깊이 들여다 볼 것이다. 과거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던 건물들이, 이제는 삶과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제 나는 건물을 바라보며 ‘왜 이 건물이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를, ‘어떤 삶을 담아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삶을 담아냈던 모든 공간들을 다시 떠올리며, 그 안에 깃들었던 소중한 이야기들을 감사히 되새긴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날까 한다. 그곳에서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유민미술관을 찾아가 유현준 작가가 전해 준 시선으로 천천히 공간을 음미해 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