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화면 중앙에는 태아 형태의 큰 인형 또는 3D 그래픽과 같은 존재가 왼쪽에 있고,
오른쪽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이 태아와 비슷한 자세로 웅크리고 누워 있습니다.
두 인물은 서로를 향해 마주 보며, 검은 배경 위에 하얀 점들이 흩어져 있어 우주나 심연 같은 공간을 연상시킵니다.
전체적으로 흑백 톤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징적인 분위기를 지닙니다.
[사진 끝]
지난 주, 영국 의회에서 말 그대로 온 국민의 삶을 바꾸는 두 건의 표결을 진행했다. 하나는 생명의 시작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의 끝에 관한 것이었다. 6월 17일, 의원들은 "낙태 비범죄화"에 대해서 찬성 379표, 반대 137표로 투표했다. 6월 20일에는 조력 자살법을 찬성 314표, 반대 291표로 통과시켰다.
이 두 표결의 결과로 (그리고 두 법안이 다 상원에서 통과된다면), 우리는 여러 세대를 통틀어서 영국에서 발생한 가장 큰 사회적 변화 두 가지를 경험할 것이다. 이 두 번의 투표로 영국 의회 의원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본질적인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앞으로 수많은 생명이 피할 수도 있었던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생명 시작의 상실
유럽에서 가장 관대한 낙태 제도를 가졌다는 영국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출산 직후의 낙태까지 허용하는 이 새로운 법은 극단적이다. 1967년 낙태법 제정 이후 낙태 건수는 계속 증가했다. 최근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25만 2000건이 넘는 낙태가 발생했고, 이는 2021년 대비 17퍼센트 증가한 숫자이다.
이 새로운 법은 여성뿐 아니라 태아에게도 해를 끼친다. 수많은 여성이 깊은 후회와 그보다 더 심각한 고통을 겪을 것이다. 낙태 비범죄화는 빈곤, 아버지의 부재, 또래 압력, 그리고 임신과 함께 나타나는 불안감 등 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하는 다양한 이유들을 조금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처참하고 절망적이며 어두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영국이라는 나라를 목격하고 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답고 더 나은 이야기로부터 더욱 멀어져만 가고 있다. 창조주의 지혜에 따르면,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며, 모든 인간은 “두려울 정도로 놀랍게 지어졌다”(시 139:13-14). 모든 생명은 모태에서부터 주님으로 인해서 만들어졌고, 그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영광과 존귀를 부여받았다(시 8:5).
선지자 하박국은 주님께 어떻게 이 끔찍한 악을 참을 수 있는지 묻는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느끼는 바로 그 마음이다(합 1:2-4).
생명 종식의 상실
낙태 찬성 투표만으로도 충분히 안타까운데, 같은 주간에 의원들은 잉글랜드와 웨일즈에 적용되는 조력 자살법까지 통과시켰다.
작년 11월 이 법안에 찬성표를 던진 이후 많은 의원들이 마음을 바꿨다. 투표를 앞두고 영국 전역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기도하게 하시고 또한 편지를 쓰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원 의원 중 상당수가 이러한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상원의 저지가 있지 않는 한, 2029년부터 조력 자살은 국민건강보험(NHS)의 지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원들은 광범위한 기준을 충족하는 환자에게 조력 자살을 허용하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게다가 전문가와 유권자의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은 부담감, 장애, 또는 우울증을 주된 동기로 하는 경우에는 조력 자살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시하는 수정안조차 거부함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의원들은 자살을 돕는 의사의 법적 권리를 인정했다. NHS 법률은 개정될 게 자명하며, 법 개정이 환자에게 치명적인 약을 투여하지 않겠다는 의사의 약속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어떻게 훼손할지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이다. 새로운 법에 따라 의사는 환자의 요청이 없어도 기준을 충족하는 환자에게 얼마든지 조력 자살을 제안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이미 일부 주에서는 이미 조력 자살이 합법화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여파를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영국이 같은 길을 택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죽을 권리"가 어떤 이들에게 꼭 죽어야만 하는 의무가 될 것이다. 이 변화로 인해 얼마나 많은 절망적인 영혼들이 이미 잃어버린 영원 속으로 더 빨리 내몰리게 될까?
이 두 가지 투표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영국의 문화적 지형이 기독교 뿌리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최근 들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조용한 부흥"이라고 불리는 현상의 조짐이 나타났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기독교 유산의 마지막 잔재마저도 해체하고 있다.
이러한 법은 개인의 자율성을 우상으로 만든 데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롭게 살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서, 즉 복음의 자유 안에서 살도록 창조되었다. 사탄은 쉬지 않고 거짓의 속삭임을 되풀이하며, 사회는 기독교의 길이 제한적이고 해롭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오직 하나님의 계획을 따를 때만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자유의 제한이 아니다. 그것이 풍성한 삶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요 10:10).
기도하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는 변함없이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마 5:13-16). 우리는 여전히 소리 없는 자들을 위한 목소리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잠언 31:8-9). CARE와 같은 단체들의 사역은 우리가 성경적 진리를 증거하고 정의를 외칠 때 더욱 강화될 것이다. 영국 복음주의 교회가 영국 사회의 엄중한 현실 앞에서 더 생생하게 깨어 있도록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한다.
또한 우리가 용기와 소망을 가지고 이 사회에 하나님의 더 나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입양, 위탁 양육, 위기 임신 센터와 핫라인 지원, 호스피스 지원, 병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10여 년 전,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이렇게 말했다. "100년 후,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아이들과 노인을 죽이지 않는 이상한 집단으로 알려진다면,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이다." 하나님이 제발 다른 나라들만은 영국과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저급한 문화 속에서도 진실과 은혜를 전하는 우리 모두에게 지혜가 부어지도록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