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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수양된 그리스도인
분류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전체관리자 작성일 2024-06-29
첨부파일
수양된 그리스도인
by 최창국 2024-06-29

얼마 전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이고, 교회의 장로이자 수원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와 긴 대화를 나눴다. 친구와 대화하면서 나 자신의 부족함을 가슴 깊이 되돌아보며 성찰하며 반성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나와 같은 가짜 신학자와 목사와는 다른 수신(修身)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규칙적인 성경 읽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수양(修養)하는 삶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친구는 매일 저녁 걷기 30분, 달리기 30분, 그리고 맨발로 황톳길을 30분씩 걷는다고 했다. 우리 나이에는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성실하게 자신을 수양하고 있었다. 그는 동양화와 서예로 정년퇴직 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에게 자신의 휘호로 된 그림을 주겠다고 하였다. 나에게 이런 친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그는 교회를 사랑하며 섬기는 성도일 뿐 아니라 담임 목회자 편에서 교회를 충실하게 섬기는 장로이기도 하다. 그의 신앙은 교회와 목회자를 잘 섬기는 아내의 신실하고 전통적인 신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고통하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삶에 대한 너무 협소한 이해로 인해 고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통해 자신을 수신 또는 수양하지 않는 삶 때문에 고통하고 있었다. 

 

교회 설교자들이 성경을 통해 수양된 정신과 가치가 드러난 설교가 아니라 몇 권의 주석서를 읽고, 그것에 의존해 설교하는 분위기 때문에 고통하고 있었다. 그는 단지 고통하며 비판만 하는 장로가 아니다. 그는 실제로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신구약 성경을 서른 번 이상 읽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성경 전체를 읽는 데 두 달 정도 소요되고, 성경을 정규적으로 읽는 것이 때로는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경의 진리가 자신을 수양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는 설교를 통해 수양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성경 읽기와 기도로 수양된 그리스도인이 분명했다. 이는 특히 교회의 신학자와 목회자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무엇보다 아내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며 예를 다하는 장로이자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부부유별(夫婦有別)을 매우 강조했다. 부부유별이란 남편과 아내는 특별한 관계이고, 부부는 가깝지만 조심스러운 관계라는 의미이다. 특별히 서로 존중하고 아껴야 하는 관계라는 의미다. 그는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 예를 다하고 더 조심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훈련이 된 사람이 현재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 그리고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도 예를 다하고 항상 고마워할 줄 안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가슴으로 울며 회개했다. 나는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실수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며 안일하게 인생을 살아왔다. 이는 성경과 신앙과 기도를 통해 나를 수양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성경과 신앙과 기도로 수양되지 않은 나의 가르침과 설교가 힘이 없었음은 자명하다. 나 자신을 가슴 깊이 성찰하며 회개하게 된다. 귀한 친구를 통해 나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많은 신앙 경험과 인생 경험을 하신 김상복 목사님이 모 기독교 방송에서 했던 말이 나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모든 것에 성공해도 가정에 실패하면 모든 것을 실패한 것이다.” 부부유별이 신학자, 목회자, 설교자에게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아닌가 싶다. 특히 한국교회 신학자, 목회자, 설교자들이 부부유별을 가슴에 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목회자, 설교자, 신학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나 자신을 수양할 것인가? 나의 친구는 성경을 현재 서른 번 읽었지만, 일백 번을 읽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라는 명제 아래 성경을 단지 역사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성경을 마음으로 읽지 않고 자신을 수양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설교자, 목회자, 신학자는 없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성경이 나를 해석하게 하고, 회개하게 하고, 울게 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 지도자는 영적 가면에 노출되기 쉽다. 나의 친구를 통해 깨달은 것은 성경을 통해 수양된 삶이 없이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신학을 가르치는 것은 영적 가면을 쓰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수양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디모데에게 수양된 삶, 즉 수신제가(修身齊家)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를 생명력 있게 돌볼 수 없다고 명확히 말한다(딤전 3:1-5).

 

소설가가 한 권의 소설책을 쓰기 위해서는 300권 이상의 소설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는 소설가가 소설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지 않고는 진정한 소설을 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지 않고는 좋은 설교자와 목회자가 될 수 없다. 기독교 역사에서 완벽한 설교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150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설교자가 있다. 바로 찰스 스펄전이다. 그는 설교자이기 이전에 성경을 통해 수양된 그리스도인이었었다. 그는 성경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성경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설교자였다. 그는 “나는 철학자들의 오만 마디 말보다 차라리 이 책으로부터 다섯 마디의 말을 하고자 한다. 우리가 부흥을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Charles Haddon Spurgeon, New Park Street Pulpit, 114). 그는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습관화했다. 그는 성경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는 삶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성경을 사랑하고 존중했던 것만큼이나 삶의 지혜를 주는 책도 소중하게 여기며 읽었다. 그의 가정은 매우 가난하여 태어난 지 14개월부터 6세까지 독립교회 목사이며 청교도적 정신이 살아 있는 조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기 시작해, 그의 삶의 여정에서 이 책을 일백 번 이상 읽었다. 성경을 통해 수양된 사람은 삶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은 자명한 원리다. 성경은 건강한 삶을 자극하며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친구는 성경을 서른 번 이상 읽었을 뿐 아니라 사서삼경을 일백 번 이상 읽었다고 했다. 나아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세네카의 인생수업행복론화에 대하여 등을 스무 번 이상 읽었다고 했다. 현대 서적보다는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고전들을 많이 읽는다고 했다. 그는 성경과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는 고전들을 통해 수신의 길을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가고 있었다. 

 

‘너의 친구는 복된 사람’이라는 음성이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메아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