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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천국의 철학과 지옥의 철학
분류 그리스도인의 삶
작성자 전체관리자 작성일 2024-06-29
첨부파일
천국의 철학과 지옥의 철학

악마에게서 (거꾸로) 배우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철학’ (4/4)

by 강영안 2024-06-27

◀ 첫 번째 주제: 인식

 

◀ 두 번째 주제: 존재 

◀ 세 번째 주제: 사랑

 

 

결론

 

 

이제 끝을 맺겠습니다. 지금까지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 편지 곧 악마가 악마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앎의 문제’였습니다. 제대로 알아야 하고, 제대로 알려면 물어야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악마의 임무는 이것입니다. 먹잇감이 신앙에서 떠나게 하라! 저 원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걸 차단하고 저 땅 아래 있는 아버지께로 데려가려면 생각하지 못하게 하라! 그냥 공상에 빠져 있게 하라! 인격의 핵심인 의지에까지 나가지 못하게 막아라! 느낌이 앎으로, 앎이 결국 의지로, 그래서 의지를 통해서 행동으로 실천하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아라! 설사 뭘 알았다고 하더라도 실행하지 않도록, 그냥 아는 그걸로 상상하는 걸로 만족하도록 만들어라! 결코 실행하지 못하게 막아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인식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인식론입니까? 제대로 우리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물어야 한다. 이것입니다.


제가 이 방식으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는 이유가 있습니다. 루이스는 이 책을 쓴 이유를 ‘1961년판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악마의 삶을 고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280-281) 악마가 악마에게 편지를 써 보내는 형식을 취하였지만, 루이스의 마음속 깊숙이 깔려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악마의 눈으로 본 저 천국의 철학, 그리스도를 따르는 철학을 통해서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한번 보여 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첫 번째가 우리는 역시 물어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알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믿습니까” 하면 쉽게 “아멘” 하지 마십시오. 쉽게 “아멘” 하는 게 아닙니다. 생각해 보고, 저게 참다운 길인가, 저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길을 보여 주는 것인가 아닌가, 그 길이라면 그게 참다운 길임을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을 인식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 존재론, 인간의 삶, 인간의 윤리에 관한 이해입니다. 그 이해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우리를 부르셨다. 그렇기에 우리의 자유를 육신의 소욕,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종노릇 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 그게 인간의 마땅한 삶의 방식이다.


왜냐하면 종이긴 하되 이 종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종, 마치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종의 모습을 취하고 그래서 종의 삶을 사신 것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것은 그 하나님의 아들로 서로 종노릇 하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곧 거기에 자유의 본질이 있다. 

 

특별히 여러 편지를 보면 쾌락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스크루테이프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쾌락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쾌락은 저 원수의 그리스도의 발명품이다.”

 

쾌락, 웃음, 즐거움, 이는 모두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이지 우리로부터는 나올 수가 없다. 여기저기서 계속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뼛속 깊이, 그 심중 깊이 쾌락주의자야. 우리의 삶에서 기쁨을 누리고 즐거워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것, 이건 오직 그분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의 마지막에, 도서관이 불타기 전에 윌리엄 수사와 호르게가 논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호르게가 숨기려고 했던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가운데 <희극> 편입니다. 비극은 지금 남아서 우리가 읽을 수 있지만, 희극, 코메디아는 소실됐습니다. 이 소설은 12세기 이탈리아 북부 어느 수도원에서 이 <희극>이 불타 없어진 걸로 설정해 놓고 진행됩니다. 호르게가 거기에 독을 묻혀 거기에 접하는 사람은 모두 죽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마지막 날, 탐정 역을 하는 월리엄 수사가 그 도서관에서 호르게와 맞붙습니다. 여기서 웃음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윌리엄 수서가 이렇게 말합니다.

 

“웃을 수 없는 진리, 그건 악마적이다.”


악마는 웃을 수가 없습니다. 웃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그분은 누구냐 하면, 스스로 넘쳐흐르는 분, 스스로 충만하신 분입니다. 충만하신 그분과 우리가 하나 되어 그분의 충만함을 나눠 가지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자유, 쾌락, 기쁨, 즐거움입니다. 

 

두 번째 편지의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 나옵니다.

 

“원수가 이런 위험 부담을 감소하는 이유는, 이 구역질하고 하찮은 인간 버러지들 이른바 ‘자유로운’ 연인이자 종-원수가 쓰는 말로 하자면 아들-으로 삼겠다는 망측한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인데, 이 두 발 달린 짐승들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집요한지 변태적인 관계도 서슴지 않으면서 영적 세계 전체를 모독하고 있는 형편이다. 원수는 인간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인간 앞에 목표를 세워 놓고서도 단순한 감정이나 습관을 이용해서 끌고 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지. ‘제 힘으로’ 해내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거야.” (29)

 

제 힘으로, 제 발로 서도록, 자유를 주고 기다리는 게 원수가 하는 짓이라고, 그렇게 악마는 그리스도를 비난하면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부르셨는지, 결국 그 목적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자유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려는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존재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경쟁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악마의 철학, 지옥의 철학이고, 천국의 철학은 이렇습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사랑 가운데 있는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이것이 존재를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우리의 존재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 지극한 사랑입니다. 모든 존재, 우리뿐만 아니라 저 바깥에 있는 나무나 풀이나 저 광물들이나 동물들, 모든 살아있는 것을 있게 만든 것은 사랑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우리 존재의 기초입니다.


이로써 철학의 모든 걸 이야기했습니다. 고대 철학 전통을 따르면, 철학은 세 가지, 존재, 인식, 행위 또는 존재, 인식, 사랑으로 분류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나 <신국론>을, 특별히 <신국론> 제8권과 제11권을 보면 존재, 인식, 사랑 이 세 가지 개념을 씁니다. 모든 그리스도 철학이 지향하는 것, 그 답은 곧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서, 기독교 신앙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존재가 무엇인가? 어떻게 알 수 있고 인식의 지식이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그 답을, 모두는 아니지만, 이 스크루테이프가 쓴 편지를 통해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