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이 사진은 무대에서 강연 중인 팀켈러의 인물 사진입니다.
갈색 재킷과 검정색 터틀넥을 입고 있으며, 무대 위 단상 뒤에 서서 왼팔을 들어 손바닥을 펴 보이고 있습니다.
시선은 왼쪽을 향하고 있으며, 입을 다문 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배경은 어두운 조명으로 처리되어 있고, 무대용 마이크가 단상 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조명은 남성의 왼쪽에서 비추고 있어 얼굴과 손이 밝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공식 행사나 강연, 설교와 같은 포멀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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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목사는 생전에 목사보다는 학자이자 소설가인 C. S. 루이스와 가장 자주 비교되었다.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성경 말씀을 제외하고 그의 강연과 글에 루이스의 글보다 자주 등장한 게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공감하는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나니아 연대기나 우주 삼부작 같은 사랑받는 소설에 변증적 천재성을 쏟았던 루이스와 달리, 켈러는 논픽션에 집중했고 설교와 책을 통해 자신만의 통찰력을 공유했다.
켈러 스타일에 더 가까운 작가를 찾는다면, 초창기 두 명의 목사, 아우구스티누스와 조나단 에드워즈를 들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켈러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켈러가 내가 만든 신에서 깊이 있게 다룬 아우구스티누스의 "무질서한 사랑"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자. 이 개념은 간단하지만 심오하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사람 또는 어떤 사물을 더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의 균형은 무너진다. 오직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둘 때에만 우리는 타인과 주변 세상을 다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다. 켈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나를 정의하도록 허용할 때, 결국 우리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나 사물을 해치게 된다고 자주 지적했다. 그의 격언은 이렇다. “당신이 가장 자주 생각하는 게 뭔지 알려주세요. 그럼 내가 당신이 이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뭔지 보여주겠습니다.” 이것은 나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하는 부드럽지만 강력한 방법이다.
켈러는 또한 심오한 신학, 진심 어린 영적 부흥, 그리고 사려 깊은 문화 참여를 조화롭게 결합했던 에드워즈에게서도 영감을 얻었다. 켈러에게 가장 가치 있고 성경적인 사역은 이런 우선순위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이다. 고백 신학이 없다면 우리의 변증론은 안정적인 토대를 가질 수 없다. 영적 부흥이 없다면 고백 신학은 단지 죽어있는 정통 교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문화 변증이 없다면, 특히 오늘날처럼 자아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시대에서 영적 부흥은 이 시대의 지배적인 서사에 단숨에 흡수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에드워즈, 그리고 켈러가 모두 공유했던 것은 전인격(whole person)에게 말을 거는 사역에 대한 열정이었다. 현대의 문화적 목소리를 언급하는 것을 두려워한 적 없는 켈러였지만, 그는 교회가 이웃에게 축복을 주는 선행을 통해서 신앙을 실천하는 동시에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다.
켈러의 모범이 지닌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손이 이웃을 섬기느라 정신없을 때, 사랑의 행동이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고 생각을 열어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 바로 켈러이다. 오늘날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우리의 생각뿐 아니라 사랑하고 섬기는 방식까지 변화시키는 신앙의 실천이다. 오늘날 변증가로서 목회자의 사역을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날 문화 환경에서 도움을 주는 켈러의 여섯 가지 권고를 제시하겠다.
1. 이웃사랑 사역을 소홀히 하지 말라
켈러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역사상 아마도 가장 긴 목회학 박사 학위 논문을 썼을 것이다. 그는 19세기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장로교 집사직과 토마스 찰머스를 연구했고, 암스테르담과 제네바의 유사한 개혁주의 저작물들도 연구했다.
이 역사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리디머 장로교회는 1992년 뉴욕의 물리적 필요를 충족하는 단체들을 위한 기금과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뉴욕을 위한 소망(Hope for New York)’을 시작했다. 켈러는 이웃사랑을 설천하지 않는 교회는 도시의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상은 강해설교만큼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에 관심을 기울이는 교회를 별로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리디머 교회는 이 목표는 신학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기독교가 될 수 없다는 게 켈러의 주장이었다. 그는 센터처치에서 복음에 신실하기 위해서 교회는 무엇보다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교하는 교회는 전통적인 근본주의 교회보다 연민과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데 더욱 깊이, 실질적으로 헌신하며, 전통적인 자유주의 교회보다도 전도와 회심에 더욱 깊이, 실질적으로 헌신한다. 이런 교회는 단지 진보적 또는 보수적인 교회로만 분류해 온 (또는 폄하해 온) 미국인의 눈에 매우 반직관적으로 비췰 것이다. 오직 이런 교회만이 기독교를 벗어난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켈러의 친구이자 뉴욕대학교 스턴 경영대학원 사회심리학 교수인 조너선 하이트는 십 대 시절부터 무신론자였다. 그는 과학과 종교의 갈등을 인식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을 적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리스도인에 대한 그의 적대감을 낮추었을까? 그는 버지니아대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전에 본 적 없는 부드러움, 따뜻함, 온유함, 겸손함을 발산하는” 그리스도인 학생들을 만났다. 그는 도덕 공동체에 대한 수업을 위해 복음주의 교회들을 방문했다. 하이트는 “정말 아름다웠고,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마음이 열리면 생각도 열리는 법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비슨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문화 변증론의 주제이다. “마음이 열리면 생각도 열린다.” 선행은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여는 데 사용하시는 주요 수단 중 하나이다.
2. 문화 변증을 우선시하라
정치와 덧없는 사건들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는 사회가 처한 근본 상황, 심지어 문명 자체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게 켈리의 지적이었다. 그는 로마 제국의 쇠퇴에 맞서 싸우며 이교도들에게 비난을 받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나님의 도성에서 제시했던 것과 같은 성경과 문화의 통합을 만들어내는 것이 오늘날 절실하다고 보았다. 켈러는 크리스토퍼 왓킨의 성경적 비판 이론을 좋은 예로 보았고, 톰 홀랜드의 도미니언을 칭찬했다.
이런 접근 방식은 이미 복음 전파의 열매를 맺고 있다. 최근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사실 때문에 학계의 불만에 직면한 세 명의 중견 역사가, 몰리 워든, 사라 어빙-스톤브레이커, 그리고 나디아 윌리엄스를 생각해 보자.
켈러의 변증적 접근 방식은 절충적이었다. 그를 단지 하나의 학파에 국한시킬 수 없다. 2008년 저서 하나님을 말하다에서는 증거 기반 변증론을 사용했다. 하지만 2016년에 낸 팀 켈러의 답이 되는 기독교에서는 변증이 논의의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야 하며, 공유된 가정들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루이스의 우주 삼부작과 같은 판타지와 SF 소설에서 특별한 가능성을 보았는데, 이 소설들이 몰리 워든의 회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는 이번에 나온 새 책을 켈러에게 헌정한다. 그는 다양한 문화 변증이라는 탁월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3. 기독교 서사가 우리 문화의 서사를 어떻게 전복적으로 설명하는지를 보여주라
그리스도인에게 변증론은 종종 "당신은 틀렸고 나는 옳아. 왜냐하면 나한테는 성경이 있으니까" 하는 식의 접근법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변증을 전개한 수많은 논문을 채점했는데, 이런 접근 방식은 효과가 없다. 그래서 나는 켈러 센터 펠로우인 댄 스트레인지가 말하는 것처럼, 전복적 성취(subversive fulfillment)를 가르친다. 혹은 조슈아 채트로가 말하는 내면을 끄집어내는 변증론(inside-out apologetics)의 변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채트로는 The History of Apologetics(변증의 역사)의 켈러에 관한 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 후기 근대 문화적 열망과 가치를 명확히 설명하라.
2. 기독교와 겹치는 요소들을 긍정하라.
3. 세속적 입장이 일관성이 없다는 사실, 인간의 가장 깊은 열망을 훼손하며, 그것을 붙잡고는 살 수 없음을 지적하라.
4. 기독교가 어떻게 더 일관되고, 살기 좋고, 합리적인 삶의 방식을 제공하는지 설명하라.
4. 헤르만 바빙크를 읽으라
“현대 교회 지도자들이 읽어야 할 신학자들을 놓고 볼 때, 나는 헤르만 바빙크보다 더 중요한 인물은 없다고 생각한다.”
제임스 에글린턴이 2020년에 출간한 바빙크 평전을 추천하면서 켈러가 했던 말이다. 켈러는 50여 년 전 고든콘웰 신학교에서 로저 니콜과 함께 수업을 듣던 중 바빙크를 처음 읽었다. 하지만 바빙크의 방대한 저작들의 본격적인 번역본이 나오기 시작한 건 최근에 들어서이다. 오늘날 우리는 1921년에 세상을 떠난 이 네덜란드 신학자에 대한 인식이 다시금 높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바빙크의 신칼빈주의 전통은 현대적이면서도 정통적이며, 이러한 전통의 조합은 아우구스티누스, 칼뱅, 에드워즈의 전통에서처럼 켈러에게도 매력적이었다. 변증가로서 켈러는 일반 은혜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신칼뱅주의적 강조로 시작했다. 비그리스도인의 욕망이 선할 수 있겠지만, 타락한 세상에서는 죄로 인해 여전히 무질서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원죄의 결과로 우리의 일과 인간관계, 그리고 욕망은 긴장과 허무함으로 가득하다. 켈러는 곧바로 기독교에 호소하지 않고, 다른 관점들 자체의 논리 안에서 드러나는 모순들부터 지적했다. 그런 후에야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가능한 해결책으로 나아갔다. 전복적 성취는 단순한 전술이 아니라 신학적인 것이다.
5. 복음 뿐 아니라 성장을 위해 설교하라
켈러의 생전에 구도자 교회는 가장 인기 있는 사역 트렌드였다. 주일 아침 예배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집중되었고, 설교는 실생활을 반영한 실용적인 주제로 회심을 목표로 했다. 교회는 마치 푸드코트가 있는 쇼핑몰처럼 삶의 일부분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리디머 교회는 이러한 트렌드를 쫓지 않았다. 캐시 켈러의 말처럼, 리디머 장로교회에서는 춤추는 곰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켈러는 어떻게 설교해야 불신자가 잘 이해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켈러는 변증론을 통한 복음 설교가 교인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질문들에 대한 답이라고 믿었다.
한 가지 예가 켈러가 “문화적 서사”라고 부른 것이다. 후기 근대 서양인들은 정의, 행복, 과학 등에 대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엮어낸다. 이러한 이야기에 이름을 붙이고 하나하나 다룸으로 우리는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오직 예수님만이 그들의 가장 깊은 갈망을 채워주실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양육함으로 그들이 세상의 대안이 아닌 하나님의 이야기에 따라 성화되고 또 삶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도록 한다.
버지니아 호프웰에서 목사로 재직하던 젊은 시절, 켈러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질의응답 시간에 이러한 이야기들을 다루었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는 수십 가지 질문이 적힌 종이를 미리 준비했고, 주일 밤 아내가 허락하는 한 늦게까지 교회에 머물렀다. 리디머 교회 초창기에도 예배 후에 똑같은 시간을 가졌다. 마이클 켈러는 링컨 스퀘어 교회에서 아버지의 관행을 이어받았다. 2026년 초, 켈러 센터가 새로운 영상과 그룹 커리큘럼인 “우리를 이해하기”를 공개하면 “문화적 이야기”에 대한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6. 구원이 눈에 보이는 순간에도 반대가 나올 것을 대비하라
모두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뭔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모두가 당신을 미워한다면, 그 때도 뭔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 다. 성경은 우리가 기대해야 할 반응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 16:33).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은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벧전 2:12)라고 말했다.
변증은 복음을 믿기 쉽게 만드는 게 아니다. 복음이 주는 도전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불신자가 연약한 우리를 모방하지 않고 대신에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도록 하는 것이다.
켈러는 종종 제3의 길을 제시한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하지만 그는 타협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을 믿지 않았다. 그는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있다고 믿었을 뿐이다. 그의 목회 변증론은 2008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탕부 하나님에 뿌리를 두는데, 이 책은 사실상 자서전에 가까울 정도이다. 자유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고, 독선적인 태도로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복음을 전한다면, 그렇게 도망치는 사람은 슬픔을 느낄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 문화의 지배적인 이분법에 순응하지 않으셨다.
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켈러는 변증가로서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전도를 목표로 삼음으로 그가 변증과 목회에서 오류를 범한 것일까? 낙태와 같은 도덕적 악을 좀 더 적극적으로 비난했어야 할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켈러의 죽음 이후 쏟아진 주류 언론의 칭찬 일색의 추도사는 그가 세상과 타협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그의 선행과 경건한 성품의 증거였을까?
심지어 아우구스티누스나 에드워즈 같은 거물을 포함한 역사적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켈러에게서도 이런저런 오류를 짚어내어 분석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시대에 효과적인 변증을 통한 복음 전파를 위해서라도 그의 작업에 감사하고 그가 이룬 성과를 현장에서 적용하는 것이다. 어떤 시대를 만나더라도, 변화하는 문화에 대응하는 성경적 전략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일반은총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복음의 능력이 회심을 통해 먼저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죄를 뿌리 뽑을 것이라는 믿음을 끝까지 붙잡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