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관

본문시작

칼럼

제목 대한 헬라 제국, 복음 전파 도왔다- [ 쉽게읽는중간사 ] (8)
분류 성경과 신학
작성자 전체관리자 작성일 2025-08-07
첨부파일

대한 헬라 제국, 복음 전파 도왔다

[ 쉽게읽는중간사 ] (8)

[그림] 

'가우가멜라전투'를 묘사한 샤를 르브룅(1619~1690)의 그림.

[그림 설명]

이 이미지는 대규모 전투를 묘사한 고전 회화로,

고대 또는 중세 신화적 전쟁 장면이며,

화면 전반에 걸쳐 수십 명의 병사와 말, 전차가 뒤엉켜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투구를 쓰고 칼을 든 인물이 말 위에서 지휘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고,

하단에는 부상자와 쓰러진 병사들이 널려 있습니다.

오른쪽 배경에는 거대한 성벽과 전차 부대가 보이며, 왼쪽 배경에는 평야 위로 병사들이 진군하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독수리나 신화적 새가 날고 있어 신의 개입 또는 상징적 존재를 암시합니다.

전체 장면은 극적인 동세와 복잡한 구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용맹, 혼란, 죽음, 신의 뜻 등이 함께 뒤섞인 역사적·신화적 전투의 정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 끝]

시리아를 점령한 알렉산더가 애굽으로 향했다. 중간에 팔레스타인이 있다.
다른 지역은 항복하거나 저항하는 형태를 취했지만 이스라엘은 저항도 안 하고 항복도 안 했다.
그런데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세금면제 혜택까지 받았다.

요세푸스를 통해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바사와의 전쟁을 궁리하는 알렉산더가 꿈을 꿨다.
자주색과 주홍색 옷을 입고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진 금패가 달린 모자를 쓴 사람이 나타나서 자기가 바사를 이기게 해준다고 하는 꿈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도착할 즈음에 꿈에서 본 그 사람이 알렉산더를 맞이했다. 대제사장 야두아였다.
야두아가 그리스 왕이 바사를 정복한다는 다니엘서 내용을 보여주자, 알렉산더가 그것을 자기에 대한 예언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단 7:6)"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가에 두 뿔 가진 숫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었으며 그중 한 뿔은 다른 뿔보다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
내가 본즉 그것이 숫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숫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숫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었더라.(단 8:3~7)"

"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그의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단 8:21)"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것은 고사하고 야두아의 조언에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다. 알렉산더가 백성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지 묻자, 두 가지를 청했다.
율법을 지키며 살 수 있게 해주는 것과 안식년에는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이다. 알렉산더가 흔쾌히 허락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대인을 따라하기로 했다.
멀리까지 나와 알렉산더를 환대하고는 자기들도 매 7년에는 씨를 뿌리지 않는다며 조공을 면제해달라고 했다.
알렉산더가 그들의 정체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특히 유대인과 어떤 관계인지 집중 추궁했다.
결국 유대인이 아닌 것이 확인됐고, 매 7년 세금 면제는 당연히 무산됐다.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을 거쳐 애굽에 이르자, 지방 방백들이 앞다퉈 항복했다.
바사를 증오하던 그들은 알렉산더를 환영하기도 했다.
아몬 신전에서 바로로 취임한 알렉산더는 애굽에 자기 이름을 딴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는 등 그리스 문명을 이식했다.

알렉산더가 드디어 바사의 심장부인 메소포타미아로 진군했다.
양군이 가우가멜라 평원에서 맞섰는데,
마케도니아는 보병과 기병을 합해서 4만 7000명 정도였던 반면 바사는 1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대의 기록은 신빙성이 없다.
현대 역사가에 따르면 바사 정규군은 10만 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정규군 외에 다리오가 바사 제국 전역에서 긁어모은 징집병들이 있었다.
하지만 농민들한테 병장기를 쥐어준 것에 불과하니 실제 전투력은 의문이다.
이런 징집병이 20만에 달했을 것이라고 한다.

바사에는 마케도니아에 없는 전차가 있었다.
다리오는 전차의 활약을 기대하며 가우가멜라의 땅을 평평하게 다지기도 했다.
그런데 마케도니아군이 전차는 직진에 특화됐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무력화시키고 말았다.
전차가 대열 사이를 지나가도록 넉넉히 틈을 벌리니 전차는 속절없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전차 공격이 무력하게 끝나는 것을 보는 다리오의 마음이 어땠을까? 어쩌면 패배를 직감했을 것 같기도 하다.
알렉산더의 기병이 자기가 있는 본진으로 쇄도하는 것을 보고는 혼비백산한다.
좌우익의 바사 기병이 본진을 구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다리오가 달아나자, 그것으로 승패가 판가름 났다.
왕이 달아나는 것을 본 바사군은 정신없이 도망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더가 전면 추격을 명했는데 마침 좌익에서 보낸 전령이 달려왔다.
사태가 위급하다며 구원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추격하면 다리오를 잡을 수 있지만, 자기 군대를 잃어야 한다.
그러면 세계 정복도 물거품이다. 결국 말머리를 돌려야 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바사군 좌익이 마케도니아 우익과 호각지세였고
바사군 우익은 마케도니아 좌익을 붕괴 직전까지 밀어붙이고 있었다고 한다.
다리오가 지레 도망하지 않고 조금만 버텼으면 승산이 있었다는 뜻이다.
결국 지도자의 용맹에서 승패가 판가름난 셈이다.

이렇게 가우가멜라 전투도 마케도니아의 승리로 끝났다.
전력만 따지면 바사군이 마케도니아군의 세 배가 넘었지만 알렉산더의 천재성과 용맹을 당할 수 없었다.
이수스 전투와 마찬가지로 다리오의 도주로 승패가 갈렸기 때문에 다리오는 크게 신망을 잃었고,
결국 부하의 손에 암살당하게 된다.

알렉산더가 수사에 입성했을 때 금과 은 1200톤과 금화 270톤을 접수했다고 한다.
이때는 계속되는 전투로 국고가 꽤나 축난 상태였을 텐데 이 정도였으니 그 전에는 얼마나 많은 금과 은이 있었을까?
지난 2008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페르시아 유물 전시회
제목이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전'이었다. 바사를 가리켜서 가히 황금의 제국이라고 할만한 모양이다.

2차 포에니전쟁 때 알프스를 넘어 공격해 온 한니발 때문에 로마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그때 스키피오가 아프리카로 건너가서 카르타고를 공격했고, 카르타고는 급히 한니발을 소환했다.
그리고 스키피오가 한니발을 이겼다. 그때 아프리카 한 마을에서 스키피오에게 아름다운 처녀를 바치겠다고 하자, 스키피오가 말했다.
"젊은 남자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겠지만 전쟁을 해야 하는 장수에게는 이보다 더 곤란한 선물도 없다."

알렉산더한테서도 비슷한 일화가 전해진다.
수사성에서 알렉산더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바사에서 가장 뛰어난 요리사를 바치겠다고 하자, 알렉산더가 거절했다.
"최선을 다해서 땀 흘려 일하고 난 다음에 먹는 음식이 최고의 요리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평생 흙을 일구며 산 촌로가 한 말이 아니다.
대제국을 일군 제왕이 한 말이다. 그는 향락이나 정욕에 별 관심이 없는 전형적인 군인이었다.

하지만 책에는 관심이 많았다. 특히 호머의 '일리아드'를 좋아해서 늘 탐독했고 잘 때는 곁에 두고 잤다.
수사성의 보물고에 갖가지 보석으로 장식된 보석함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 보석함에 '일리아드'를 넣기도 했다.
알렉산더한테는 '일리아드'가 최고의 보물이었다.

이렇게 해서 바사 제국이 기울고 헬라 제국이 탄생한다. 알렉산더는 자신은 물론이고 부하들도 바사 여자와 결혼하게 했다.
앗수르의 혼혈 정책과는 다르다. 그때는 앗수르 혈통은 보존하면서 피지배 민족들만 혼혈로 만들었는데, 알렉산더는 사해동포주의를 꿈꿨다.
가는 곳마다 헬라 문화를 이식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업적은 헬라어를 공용화한 것이다.

당시 헬라 제국을 오늘날의 세계 지도에 그리면 리비아, 수단, 에티오피아, 이집트, 그리스,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불가리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아르메니아, 시리아, 리비아,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인도 일부가 다 포함된다.

이 넓은 지역 어디에서나 헬라어만 하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됐다.
또 그의 정복 사업으로 유대인이 광범위하게 분산됐다. 이것이 나중에 복음 전파의 씨앗으로 작용한다.
세속 역사가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시작된 기독교가 바울에 의해서 세계 종교가 됐다고 한다.
바울이 아니었으면 기독교가 팔레스타인을 넘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 평가를 빌려올 수 있다.
알렉산더가 헬라 제국을 세우지 않았으면 기독교가 세계 종교가 되는 데 심각한 장애가 있었을 것이다.
또 알렉산더는 이집트에 자기 이름을 딴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고 거기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이 도서관이 '70인역' 번역의 모태가 된다.

강학종 목사 / 하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