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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하나님의 의로 이룬 구원, 그것이 복음이다- [ 쉽게읽는중간사 ] (4)
분류 성경과 신학
작성자 전체관리자 작성일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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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로 이룬 구원, 그것이 복음이다

[ 쉽게읽는중간사 ] (4)

강학종 목사

[그림] 

성전 기물을 내어주는 고레스 왕을 묘사한 구스타브 도레(1832~1883)의 그림.
[그림 설명]

이 이미지는 삽화 작품입니다.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가 성경 내용을 바탕으로 그린 판화 중 하나로,

‘성전의 기물을 돌려주는 고레스’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화면 중심에는 왕관을 쓰지 않은 고레스 왕이 손을 내밀며 서 있고,

그 주위로 많은 인물들이 기물을 받는 자세로 서 있거나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왼쪽과 오른쪽에는 두 손을 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며,

일부는 기뻐하거나 감격한 듯한 자세입니다.

중앙 앞쪽에는 성전에서 사용되었던 성물들이 땅에 놓여 있고,

배경에는 커다란 기둥들과 고대 건축 양식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선명한 명암 대비를 통해 장면의 엄숙함과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림 끝]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탄생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바사가 여러 도시 국가로 나뉜 채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던 시절, 메대(메디아)가 바사를 다스렸다.

하루는 메대 왕 아스티아게스가 꿈을 꾸었다.
딸 만다네가 소변을 보았는데 소아시아 전역이 소변에 잠기는 꿈이었다.
술사들을 불러서 뜻을 물었더니 만다네가 낳은 아이가 소아시아를 지배할 꿈이라고 했다.
불길하게 여긴 아스티아게스가 만다네를 메대 사람이 아닌 바사 사람 중에서도 하층민인 캄비세스에게 시집보냈다.
그런데 더욱 뒤숭숭한 꿈을 꾼다. 만다네 배에서 포도나무 줄기가 나와서 온 세상을 덮는 꿈이었다.
술사들은 한목소리로 외손자가 세계를 정복할 큰 인물이라고 해몽을 했다.

아스티아게스가 고민 끝에 손자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우선 만다네를 친정으로 불러서 아이를 낳게 했다.
그리고 심복 하르파고스를 불러서 만다네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딸이면 살리되 아들이면 죽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만다네가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하르파고스는 차마 직접 죽이지 못하고 하인한테 맡겼다.
마침 그 하인의 아내가 그날 사산을 했다. 하인은 사산한 아이를 묻고 만다네의 아들을 대신 키웠다.

7년이 지났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데 하인의 아들이면서 귀족 집안의 아이들을 부하로 부릴 만큼 통솔력이 있었다.
규칙을 어기면 벌을 주기도 했는데 불만을 말하는 아이가 없었다.
오죽하면 "왕궁에는 아스티아게스왕, 골목에는 고레스왕"이라는 말까지 했고, 입과 입을 통해서 왕한테도 그 말이 들어갔다.

호기심을 느낀 아스티아게스가 아이를 불렀는데, 한눈에 자기 핏줄인 것을 알아보았다.
아스티아게스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외손자 고레스가 마냥 사랑스럽게 보였을까? 아무래도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어느 날 궁중에서 만찬이 있었다.
모두 자리에 앉았는데 하르파고스의 식탁에만 검은 보자기가 덮여 있었다.
보자기를 벗기니 놀랍게도 하르파고스 아들의 머리였다.
아스티아게스가 왕명을 거역한 벌을 내린 것인데, 이 일로 인해서 하르파고스가 깊은 앙심을 품게 된다.

소문을 들은 만다네가 왕궁에서 자라는 고레스를 데리고 자기가 살던 곳으로 갔다.
떡잎부터 달랐던 고레스는 바사의 장군으로 자랐고 하르파고스도 계속 복수를 꿈꿨다.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반드시 해낼 것이다"라는 것이 하르파고스의 각오였다.
왕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고레스에게 왕좌를 뺏기는 일이다.
속으로 그렇게 칼을 갈며 때를 기다리던 하르파고스가 고레스에게 메대로 진격하면 내응하겠다는 밀서를 보냈다.

이렇게 해서 고레스가 5만 병력을 이끌고 메대를 치러 나간다. 아스티아게스 왕 입장에서는 반란이다.
30만 군사를 소집해서 하르파고스한테 정벌군 사령관을 맡겼다. 5만과 30만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아스티아게스 왕은 만다네의 꿈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을 것이고, 이것으로 그 꿈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르파고스가 그런 아스티아게스 왕의 전송을 받으며 출정했다.
바사군이 진을 친 곳에 거의 이르렀다. 내일이면 결전이다.
그날 밤, 하르파고스가 장수들을 불러 모아서 비장한 어조로 말한다.
"나는 바사군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항복하러 왔소. 날이 밝으면 무조건 항복할 것이오."

놀란 표정을 짓는 장수들에게 계속 말한다. "여러분은 언젠가의 만찬을 기억할 것이오.
그때 그 검은 보자기 밑에 무엇이 있었는지 다 보지 않았소? 그날 이후 난 오늘을 기다렸소.
그렇다고 해서 내 사적인 앙갚음 때문에 나라를 저버리려는 것이 아니요.
해몽이 사실이면 고레스는 하늘이 내린 왕이고 그것을 어기는 것은 천명을 거역하는 것이오.
지금 아스티아게스왕은 천명을 거역하고 있는 것이오. 어떻게 하시겠소?"

설마 이런 말을 아무런 준비 없이 했을까? 복수를 계획했을 때부터 사방에 자기 사람을 만들었을 것이고
정벌군 사령관을 맡았을 적에는 본격적으로 자기 사람을 요직에 앉혔을 것이다.
아스티아게스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선뜻 반대 의사를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30만 군대가 바사군에 합류했고, 메대의 운명이 그것으로 결정되었다.
메대를 정복한 고레스는 국호를 바사로 바꾼다.
다니엘 5장 30~31절에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라고 되어 있다.
다리오가 바사의 첫 번째 왕처럼 나오는데 다리오는 고레스의 외삼촌이다.
고레스가 아스티아게스왕을 유배 보낸 다음 자기는 계속 정복 사업에 몰두하기 위해서 다리오를 형식적인 왕으로 앉혔다.

이 고레스에 의해 포로 귀환이 이루어진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

하나님이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다음 시내산으로 인도해서 율법을 주셨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려면 율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 일에 실패했다. 계속되는 범죄로 가나안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런데 고레스 칙령으로 다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율법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 수준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가나안 땅에서 살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고레스 칙령이 반포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는 것이 이런 얘기다.
본래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켜서 가나안 땅에 살게 돼 있었다.
그런데 그 일에 실패해서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자 하나님이 다른 방도로 가나안 땅에 살 수 있게 하신 것처럼,
우리가 우리 의로 구원 얻을 수 없자 하나님이 하나님의 의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본래 한 나라의 노예로 예속되어 있다가 독립을 되찾으려면 그만한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독립은 자기들의 능력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주어졌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로 지낼 적에 언젠가 홍해를 건너 자유의 몸의 되리라는 기대를 누가 했을까? 바벨론 포로 때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만 해도 노예였는데 고레스 칙령으 로 하루아침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고레스의 식민 통치 정책은 지금까지의 여느 나라와 확연하게 달랐다.
앗수르나 바벨론은 피정복민을 강제로 타 지역으로 이주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유 종교도 억압했다.
그런데 고레스는 피정복민을 그들의 본토에서 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도 최대한 보호했다. 박애주의 정책이 아니었다.
이방 민족의 다신교 신앙에 기대서 세상 모든 신들로 하여금 바사 제국의 안녕을 기원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이 고레스의 식민 통치 정책의 산물로 파생된 것일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인 주전 8세기에 이미 고레스를 통한 구원 계획을 선포하셨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사 44:28)"

하나님께서는 고레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 계획을 갖고 계셨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고레스의 통치 철학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고레스는 세계 최강 대국의 왕이었다.
이스라엘의 눈으로 보면 자기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도구였다. 고레스가 주인공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주인공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선한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세속 역사를 동원하셨다.

강학종 목사 / 하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