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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회당에서 교회로, 바울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 [ 쉽게읽는중간사 ] (2)
분류 성경과 신학
작성자 전체관리자 작성일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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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에서 교회로, 바울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

[ 쉽게읽는중간사 ] (2)

강학종 목사
[그림]
'폐허 위에서 설교하는 사도 바울', 조반니 파울로 판니니 작품(1691-1765)
 
[그림 설명]

이 그림은 고전풍 양식의 흑백 회화로,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유적지를 배경으로 한 인물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오른쪽에는 기둥이 있는 고대 신전 건축물이 보이며,

왼쪽에는 반원형 아치 구조와 부서진 석조물들이 흩어져 있어 폐허가 된 고대 유적임을 암시합니다.

중앙에는 긴 로브를 입은 철학자나 학자처럼 보이는 남성이 무리 앞에서 말하거나 가르치고 있으며,

주변에는 다양한 자세로 앉거나 서 있는 남녀 인물들이 그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무릎을 꿇거나 대화를 나누고,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도 보입니다.

이 회화는 고대 문명의 지적·문화적 풍경을 이상화하여 표현한 역사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림 끝]

 
때는 바야흐로 주전 586년,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패망한다.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살았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성전은 불에 탔고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다. 디아스포라의 시작이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적에 순종했을 때 받을 복과
불순종했을 때 받을 벌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질병이 내릴 것이고,
그래도 불순종하면 땅이 산물을 그칠 것이고,
그래도 불순종하면 자식의 고기를 먹게 된다고 하셨다.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런 일이 정말로 벌어진다면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재앙일 것 같다.
그런데 그 다음 재앙이 있다.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다.
성경은 자식의 고기를 먹는 것보다 그것을 더 큰 재앙으로 얘기한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살아갈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남남이 되는 것이다. 남 왕국 유다에 실제로 그런 일이 닥쳤다.

그러면 그것이 영원한 저주일까?

"너희가 원수의 땅에 살 동안에 너희의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때에 땅이 안식을 누리리니 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
그 땅이 황무할 동안에는 쉬게 되리라"(레 26:34-35)

하나님의 징계는 화풀이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고쳐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불순종하면 급기야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지만
그렇게 해서 나타나는 효과가 있다. 땅이 안식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안식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년도 있다. 6년 동안 땅을 경작했으면 7년째에는 쉬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을까?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나라가 망했는데 안식년을 지켰을 리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안 지킬 재간이 없게 된다. 바벨론 포로 70년은 안식년을 70회 지킨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하나님의 법을 안 지키니 지킬 수밖에 없게 만드신 것이다.

다른 효과도 있다. 이방 땅에 끌려가니 성전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불신앙을 참회하는 마음으로라도 정성껏 제사를 드리고 싶은데 이 딱한 현실을 어떻게 할까?
게다가 성전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래서 회당이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신앙의 근간이었다면 이제는 회당에서 율법을 연구하는 것이 신앙의 근간이 된다.

그런 회당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다음에도 곳곳에 세워졌다.
유대인 열 명이 있으면 회당을 세울 수 있었고, 회당이 삶의 구심점이 되었다.
안식일에는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렸고 평일에는 회당이 마을회관 구실을 했다.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행 13:1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행 13:26)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에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한 말인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누구일까?
행 13:16에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라고 했으니까 이스라엘 사람들과 구별되는 사람들이다.
행 13:26에서는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닌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들은 이방인이다.

회당에는 유대인만 모이는 것이 아니었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같이 모였다.
당시 이방인 중에는 유대교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율법도 지켰다. 할례만 받으면 유대인으로 인정되는데 할례가 상당한 진입 장벽이었다.

예수님 당시의 헤롯 성전에는 유대인의 뜰과 여인의 뜰, 이방인의 뜰이 있었다.
유대인의 뜰은 당연히 유대인 남자를 위한 공간이고, 여인의 뜰은 유대인 여자를 위한 공간이다.
그러면 이방인의 뜰은 왜 있을까?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통곡의 벽은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당시 성전은 관광지도 아니었는데 왜 이방인이 기웃거렸을까?
아니, 왜 이방인을 위해서 공간을 할애했을까? 간단하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례는 지금의 포경수술이다. 유대인은 난 지 팔 일이면 할례를 받았다.
자기가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할례가 행해진 것이다.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경우에는 다르다. 지금처럼 마취제나 소독약도 없던 시절이다.
어지간한 용기가 아니면 엄두를 못 낸다. 유대교가 좋아서 회당 모임에는 참석하지만
그때마다 "얼른 할례를 받아서 정식으로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데…"라는 부담감으로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그들은 반쪽짜리 유대인이었다.

바울은 회당을 중심으로 사역했다. 가는 곳마다 회당을 찾았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구약에 익숙하게 마련이다.
복음을 전하기에 한결 수월했을 것이다.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라는 말을 바로 전할 수 있었다.
바울이 마을 공터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가정해 보자.
"예수님이 메시아입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메시아가 뭡니까?"라고 반문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언제 복음을 설명한단 말인가?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이방인들은 반색한 반면 유대인들은 배척했다.
보통 배척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죽이려고 했다.
실제로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을 얼마나 돌로 쳤는지 죽은 것으로 잘못 알기도 했다.
그 정도로 거부 반응이 심했다.
복음이 싫으면 외면하면 그만이지,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요즘 상황으로 바꾸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누군가 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줄 때 싫으면 안 받으면 그만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뒤에서 흉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폭행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심지어 살의를 가지고 폭행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바울한테 그렇게 했다.
"너희가 죽인 예수가 바로 메시아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런 바울의 설교가 성경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설마 이 말만 했을까?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말도 했을 것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효력이 없고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라는 말도 했을 것이다.

그런 말을 어떻게 그냥 듣고 넘긴단 말인가? 돌로 쳐 죽여서라도 입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은 다르다.
지금까지 할례가 큰 부담이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한다.
다음 안식일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바울이 그들을 대상으로 교회를 세웠다.
그들은 복음이 전해지기만 하면 믿기로 작정된 사람들이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라는 말씀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다.
이때의 천국은 우리가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천국, 즉 하나님 나라 때문이다.
그런 예수님이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기초로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즉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연결된 곳이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교회가 시작된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그 준비를 하셨다.
흔히 신구약 중간 시대라고 하는 기간에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실 준비를 하셨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강학종 목사/하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