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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제목 | 카이퍼는 여전히 우리에게 유용한 이름인가? | ||
| 분류 | 그리스도인의 삶 | ||
| 작성자 | 전체관리자 | 작성일 | 2024-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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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퍼는 여전히 우리에게 유용한 이름인가?
서평: 김은득, 『한국 교회를 위한 카이퍼의 세상 읽기』(IVP, 2024) by 이재근 2024-07-19
나는 1993년에 아브라함 카이퍼(1837-1920)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선교사가 되기 위해 아세아연합신학대학(ACTS, 현 아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는데, 특이하게도 학교는 학기 개강 수련회에서 모든 신입생에게 영어판 Lectures on Calvinism을 나누어 주었다. 이 책 한국 교회를 위한 카이퍼의 세상 읽기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하듯, Lectures on Calvinism은 카이퍼가 1898년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주최한 스톤 강연(The Stone Lectures)에 초청받아서 했던 여섯 차례 강연을 엮어서 출간한 책이다. 학부 시절, 나는 영어 원서를 읽을 실력이 되지 못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몇 년 후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책의 일부를 읽었지만, 16세기 이래의 칼뱅주의 역사,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현대사, 미국사와 미국 교회사에 대한 전문적이고 폭넓은 지식이 부족했던 내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교수 중에 장로교 배경과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출신이 많았던 덕에, 아신대학교 동문과 재학생에게 아브라함 카이퍼의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정확한 내용은 몰라도, “신칼뱅주의를 제창한 세계 3대 칼뱅주의자 중 하나” “영역주권을 주창해서 삶과 세상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제창한 신학자이자 교육자, 정치가”라는 소개 문구 정도는 누구나 읊을 수 있을 정도도 아신대에서 카이퍼의 지명도는 높았다.
더 확고한 개혁파 신학과 장로교회 목회를 지향하는 합동신학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카이퍼에 대한 인상이 더 선명해지지는 않았다. 기존의 화려한 수식어로 장식한 이름은 여전히 회자되었지만, 그가 직접 쓴 글을 원어로든 한국어로든 읽을 기회는 거의 없었으므로,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여전히 몰랐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다만, 교회와 영성의 영역뿐만 아니라 세속의 모든 영역에 탁월한 실력을 갖춘 그리스도인이 진출해서 수를 늘리고 공간을 지배하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만방에 널리 퍼지고 떨치리라는 널리 퍼진 공감대의 이론적 배경에 카이퍼가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아직은(!) 승승장구하는 것으로 보였던 1990년대 한국 기독교는 이런 ‘고지론적 세계관’을 정당화하기 위해 카이퍼의 구호를 활용했다. 탁월한 목회자이자, 신학자, 대학 설립자 및 총장, 국회의원에 총리까지 역임한 카이퍼는 이런 무수한 고지들을 점령한 위대한 사령관이자 거인이므로, 우리의 이상적인 모델이자 영웅이었다.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1990년대가 훌쩍 지나가고 새로운 밀레니엄이 밝은 지 벌써 사반세기가 지났다. 그 어간에 한국 교회가 처한 상황과 현실은 극적으로 변모했다. 교회의 성장은 멈추었고, 젊은 세대는 신앙과 교회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잃었으며, 목회자와 선교사가 되기 위해 신학과 선교를 공부하러 진학하는 학생 수는 급감했다. 특히, 이 기간에 한국 교회의 사회적 이미지가 심각할 정도로 실추되어, 이제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드러내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18세기 이후 서양 기독교세계(Christendom)가 지속적으로 경험한, 근대화의 필연적 열매로서의 다원주의와 세속주의, 제도종교 이탈 현상이 서양의 풍조를 뒤쫓는 한국에도 강력한 파도로 밀려와 이제는 대세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 처한 21세기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19세기 네덜란드 교계와 정치계, 교육계 인물인 아브라함 카이퍼가 여전히 유용한 이름인가?
저자 김은득은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우선, 그는 카이퍼가 처한 19세기 말 네덜란드의 현실과 우리의 지금 현실에 유사성이 많다는 점을 반복해서 지적한다. 네덜란드에서는 18세기 말까지 기독교(정확하게는 개혁파 개신교)가 국교로서 사회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했던 기독교세계 체제가 저물었다. 프랑스대혁명(1789-1799)과 연이은 사건들로 인해, 종교, 신분, 절대적 전통 도덕 등으로 규정된 기존 권위가 붕괴된 대신, 개인 자유, 평등, 관용, 민주적 절차, 상대적 가치판단이 중요한 다원화 및 세속화 세계가 도래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구체제(Ancien Regime)의 일원으로 영화를 누렸던 기독교는 더 이상 세상에서는 목소리를 내지도, 자리를 차지하지도 못하고, 이를 따르는 무지하고 고루한 소수 추종자들의 공간에만 고립되어 머무는 처치로 전락했다.
카이퍼는 세속화된 정부가 종교성을 드러내지 않는 가치중립적인 공립학교에만 재정을 지원하는 정책을 비판하고, 기독교(개신교와 가톨릭) 학교를 비롯한 사립학교에도 공정하게 재정이 지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모든 사립학교는 고유의 신념과 신앙, 가치관, 세계관을 지향하는데, 이런 사립학교들도 사회에 유익한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가진 퍼즐들이 조화를 이룬 건전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부가 설립한 한국 공립학교들의 반기독교적이거나 혹은 입시 위주 교육에 불편함을 느끼는 한국의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신앙과 양심에 따라 기독교계 대안학교를 선택하려 할 때, 정부 지원이 없어서 과도한 등록금과 기부금을 받아야 겨우 운영되는 현실을 예시로 들며, 한국의 교육현실과 카이퍼 시대 네덜란드 교육의 유사성을 보여준다(135, 165쪽).
저자가 2024년의 한국에 카이퍼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두 번째 이유는 그간 한국 교회에서 카이퍼가 제대로 이해되지도, 그러므로 당연히 제대로 적용된 적도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1990년대 캠퍼스 선교단체들과 대형 교회 청년부를 중심으로 세계관 운동이 한창 유행할 때, 이 운동은 주로 ‘창조-타락-구속’이라는 개념 틀로 회자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이해의 차원을 넘어 교회와 사회에 구체적으로 적용될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세계관 운동을 논하는 거의 모든 모임에서 카이퍼의 이름이 등장했지만, 실제로 카이퍼가 자신의 개념을 어떻게 네덜란드 사회에 적용하려고 시도했는지, 난제와 논란은 무엇인지, 결과는 어땠는지 알려줄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더구나 한국 교회는 카이퍼로부터 네덜란드 신칼뱅주의 유산을 직접 전해 받지 못했고, 미국을 통해 이원론적 근본주의와 탈사회적 고립주의 형태로 이를 수용했다. 그 결과, 교회, 기독교 학교, 기독교 신문, 기독교 정당, 기독교 출판사, 기독교 방송국, 기독교 병원을 따로 세우는 것으로 카이퍼의 정신을 계승했다고 스스로 만족했다.
시작과 발전에서 모두 미국 교회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었던 한국 개신교의 현실상 어쩔 수 없는 면도 분명히 있었다. 실제로 카이퍼의 사상을 적용한다고 스스로 주장한 미국 기독교 정치 활동가 다수는 낙태와 동성애, 이민 개방, 의료보장 확대 등에 극렬히 반대하고, 총기 소지와 기업 활동 보호에 목을 매는 공화당 극우파로 오래도록 자리매김해 왔다. 미국을 여러 면에서 거울로 삼는 습관이 있는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 영역에 선포되어야 한다는 카이퍼의 주장은 여전히 수와 영향력에서의 ‘정복’ 활동 정도로 이해되는 실정이다. 이 점에서 카이퍼가 주장한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 내용을 적용하고 실천한 과정에서의 난제와 결과는 무엇이었는지를 차분하게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자기 몫을 한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카이퍼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면서, 어떻게 한국 상황에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을지는 친절한 어투로 알려준 데 있다. 저자는 아브라함 카이퍼로 빙의해서, 정말로 그가 편안한 친구, 혹은 따뜻한 선생님으로 환생해서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자기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다는 편지 형식을 설정한다.
그러나 너무 편하고 친절한 카이퍼인 것이 단점일 수도 있겠다. 그가 편지의 독자, 청자에게 너무 포근하게 다가가는 나머지, 첨예하게 고민하고 따지고 들어야 하는 문제를 슬쩍 회피하거나, 답을 명확하게 내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카이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해도, 여전히 떨떠름하게 남아 있는 질문이 적지 않다.
“그런데요. 카이퍼 선생님, 한국 사회와 교회는 선생님 당시의 네덜란드 교회와 사회보다 더 복잡한 것 같아요. 성혁명, 계급혁명, 정보혁명이 휩쓸고 지나갔고 여전히 진행 중인 21세기잖아요. 선생님 이론을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한국은 기독교세계 경험이 없었던 아시아 국가인데요.”
“그런데요. 선생님이 주장한 그 내용이 당시 네덜란드에 적용되어 나름 성공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당시 네덜란드에서 하나님의 주권, 영역주권, 기독교 세계관이 정확히 어떻게 적용되어 성취되었나요? 그 성공의 열매와 영향이 지금도 네덜란드에 퍼져 있나요?”
“카이퍼 이론을 나름 적용하려고 노력했던 미국 사례를 보면, 결국 영역주권이 앞에 ‘기독교’라는 수식어만 갖다 붙인 분리된 기독교 제도와 기관만 수없이 양산해 낸 것 아닌가요? 그러면 이게 근본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이원론, 이분법적인 분리주의 프로젝트랑 다른 게 뭐죠? 아니면, 기독교인들이 세력화해서 정치나 문화의 주도권을 잡아서 ‘문화전쟁에서 이기자’고 외치는 거랑 뭐가 다르죠? 그러니까, 태극기부대를 이끄는 전광훈도 자주 카이퍼 언급을 하잖아요? 이렇게 사회적으로 혐오세력으로 비난받다가 결국 젊은 세대를 몽땅 잃어버리게 되는 전철을 미국교회나 한국교회가 연이어 밟고 있는 것 아닌가요?”
200쪽이 채 안 되는 짧은 분량으로 카이퍼 이론의 내용, 가치, 논란, 적용을 모두 다룰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은 카이퍼 서신 시리즈의 제1편, 즉 카이퍼 전서에 해당한다. 이후 카이퍼 후서가 집필되겠지만, 바라기는, 후서 이후에도 연이어 3서, 4서 등으로 연장해서, 이 세상과 저 세상 모두에 발을 딛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많은 독자와 청자의 더 깊은 고민과 질문에 구체적인 통찰과 혜안을 던져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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