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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정말 예수 어린 시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일까? 새로 발견된 '도마의 유아 복음서' 사본 | ||
| 분류 | 이슈 | ||
| 작성자 | 전체관리자 | 작성일 | 2024-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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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예수 어린 시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일까?
새로 발견된 ‘도마의 유아 복음서’ 사본 by Michael J. Kruger 2024-07-12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는 역사상 가장 많이 연구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이야기, 모든 문장, 그리고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학자뿐 아니라 평신도까지, 그것도 여러 세대에 걸쳐서 면밀히 조사되었다.
본문을 향한 끝없는 미시적 분석은 반드시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짚어야 함에도 놓치는 게 있다. 본문에 없는 내용이다. 있는 것에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없는 것에 대한 성찰이 사라졌다. 성경 저자들이 말하지 않기로 작정한 내용이 어쩌면 그들이 말하는 내용만큼 중요할 수도 있다.
네 복음서 속 예수에 대한 기록에는 놀라운 누락이 많다. 예를 들어, 부활 후 제자들과 함께 보낸 40일 동안 예수는 도대체 무엇을 하셨을까? 무슨 이야기를 하셨을까? 분명히 뭔가 중요한 가르침을 주시지 않았을까? 그러나 네 복음서에는 전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외경 복음서(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예수에 대한 글)가 있다. 구주와의 대화(Dialogue of the Savior)에 따르면, 예수는 부활 후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서 그들의 질문에 답하고 다양한 신학적 주제에 대해서 웅변을 펼쳤다. 다른 위경 복음서(예: 빌립 복음서와 마리아 복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예수의 부활 장면이다. 그날 현장에 있었다면 무슨 광경을 목격했을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예수가 무덤에서 나오는 모습은 실제로 어땠을까? 네 복음서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주일 아침 일찍 여인들이 도착했을 때 예수는 이미 부활하셨으니까).
하지만 위경 복음서에 바로 그 내용이 나온다. 베드로 복음서에서는 부활한 직후 예수가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는 양쪽에 천사를 데리고 무덤에서 나오는데, 그의 머리는 구름에 닿아있다.
복음서에 없는 내용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건 예수의 어린 시절에 관한 것이다. 어린 예수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어린” 하나님의 아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주변에 어린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누가복음 2장 속 독특한 이야기 하나 제외하면, 네 복음서는 여기에 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외경 복음서가 있다. 도마의 유아 복음서(Infancy Gospel of Thomas)라고 불리며, 여러 세대에 걸쳐서 학계에서는 잘 알려진 책이다. 게다가, 2024년 6월 13일, CBS 뉴스는 이 복음서의 새로운 사본이 발견되었다고 보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는 타이틀을 달았다.
이건 엄청난 주장이다. 만약에 사실이라면, 그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전에, 우리는 잠시 멈춰야 한다. 때때로 “새로운” 발견이라는 게 조금만 자세히 조사하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만큼 새롭지 않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도마의 유아 복음서'는 무엇인가?
중요한 설명부터 시작하자. 유아 복음서와 도마 복음서는 전혀 다르다. 후자는 예수의 말씀 114개로 구성된, 기원이 2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매우 잘 알려진 외경 복음서이다. 따라서 그의 어린 시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흥미롭게도 최근에 도마 복음서 사본도 하나 발견되었는데, 거기에 관해서 내가 쓴 글이 있다.)
반면에 유아 복음서는 예수가 어린 시절 고향에서 자라면서 겪은 화려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예상하듯,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건 어릴 때부터 명확하게 드러났다. 어린 예수는 도끼에 발을 다친 사람을 고쳐주고, 물병이 깨지자 물을 외투에 담아서 옮기고, 목수인 아버지를 돕기 위해 나무 조각을 펼친다. 그리고 전혀 다치지 않고도 지붕에서 뛰어내린다. (하늘을 날지는 않았을까?) 밀 한 알을 심어서 무려 백 부셸이라는 수확량을 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린다.
각종 기적에도 불구하고, 신동 예수는 고향에 순이익이 되지 않았다. 유아 복음서의 많은 부분에서 예수는 짜증스럽고 불안정한 아이로 그려진다. 때때로 격노한 예수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떤다.
한 예로, 어떤 아이가 물웅덩이에 나뭇가지를 던져서 예수를 화나게 했다. 예수가 소리쳤다. “불의하고 경건하지 못한 바보야! 물웅덩이가 너에게 무슨 해를 끼쳤느냐? 보아라, 너도 이 나무처럼 시들어서 결코 잎과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3.2). 그러자 그 아이는 바로 시들어서 그 자리에서 죽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어떤 아이가 마을을 걷던 예수와 우연히 부딪쳤다. 화가 난 예수는 그 아이도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버렸다.
바로 이 시점에서 마을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동시에 두려워했다. 결국 그들은 요셉에게 와서 불만을 토로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예수가 마을 사람들을 모두 소경으로 만들어 버린다. 요셉이 아들의 귀를 잡아당겨 혼을 내려고 하지만, 예수는 아버지에게까지 불길한 위협을 가한다. “당신은 지금 전혀 지혜롭게 행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 나를 근심하게 하지 마십시오”(5.3).
유아 복음서는 성전에 있는 열두 살 소년 예수의 수정 버전으로 끝난다. 그 이야기는 분명히 누가복음 2:41-52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기이한 복음서의 기원을 학자들은 대부분 2세기 말로 잡는다. 사도 대부분이 죽은 지 거의 1세기가 지난 시점이다. 따라서 도마나 다른 사도가 이 복음서를 썼을 리 없다. 사실, 유아 복음서의 가장 초기 버전에는 도마의 이름이 아예 없다. 도마라는 이름은 아마도 중세 어느 때인가 추가되었을 것이며, 이 책의 신뢰성을 강화하기 위한 때늦은 시도였을 것이다.
새롭게 발견된 사본은 무엇인가?
가장 초기 버전에 도마의 이름이 빠졌다는 사실은 이 복음서와 관련해서 주요 과제 중 하나를 강조한다. 바로 문제로 점철된 텍스트 역사이다. 원래는 그리스어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리스어 사본은 거의 없다. 그나마 현존하는 사본도 매우 늦은 시기에 쓰인 것으로 대부분이 14세기나 15세기 작품이다. 이 사본들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 라틴어, 시리아어, 에티오피아어 등 여러 언어로 된 초기 버전이 있지만, 이 역시 텍스트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원본” 유아 복음서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이 사실은 최근에 발표된 새로운 사본의 발견으로도 이어진다. 유아 복음서의 일부인 “P.Hamb.Graec.1011”이라는 라벨이 붙은 사본이 독일 함부르크 대학교 도서관에서 두 명의 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한동안 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게 유아 복음서의 내용인지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었다.
이집트 모래사장에서가 아니라 도서관에서 사본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놀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신약성서 사본이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성 캐서린 수도원 도서관에서 발견된 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도서관에서 발견된 코덱스 사본이다. 도서관에 보관되었던 사본은 보통 제대로 분류되거나 식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나중에 (보통은 박사 학위 지망생에 의해서) 발견되곤 했다.
이 새로운 사본이 처음부터 식별이 어려웠던 건 워낙 작은 조각이었기 때문이다. 거기 남아있는 단어는 유아 복음서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안식일에 소년 예수가 개울가에서 놀다가 진흙으로 새를 만든다. 아버지가 안식일에 작업을 하는 예수를 향해서 안식일을 범했다고 꾸짖었고, 그러자 예수는 손뼉을 쳐서 진흙 새를 진짜 새로 바꿔서 날아가게 한다.
이 “새로운” 사본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날짜이다. 지금까지 이 복음서의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사본은 11세기 것이었지만, 이 새로운 사본은 4세기나 5세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모든 언어를 통틀어서) 유아 복음서의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
이 사본을 발견한 학자 라요스 베르케스와 가브리엘 마세도에 따르면, 사본 속 그리스어 본문이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학자들 대부분이 현재까지 유아 복음서에 관한 한 가장 신뢰하는 (일명 “recension S”로 알려진) 그리스어 본문과 내용에서 일치한다.
일반 용어로 말하자면, 이 새로운 사본은 유아 복음서의 특정 버전, 학자들이 아마도 가장 오래된 버전이라고 믿는 바로 그 버전과 일치한다.
이 발견이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예수의 어린 시절 이해에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발견이 있을 때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바뀌지는 않을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연 도마의 유아 복음서를 다섯 번째 복음서로 보아야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몇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다.
첫째, 유아 복음서가 역사적 신뢰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번 발견으로 인해서 바뀐 점은 전혀 없다. 이 복음서는 사도나 목격자가 아니라 2세기 후반 익명의 저자에 쓰였으며, 그리스-로마 세계의 다른 유아 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미화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대 세속 전기 작가들 사이에서는 영웅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구성하는 게 유행이었다. 영웅들이 어린 시절부터 이미 나중에 커서 드러날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당시의 현실을 고려할 때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놀라운 절제와 사실 그대로의 서술 방식은 더 빛을 발한다. 복음서 저자들도 예수의 환상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명백한 유혹에 굴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르지만, 대신 우리가 듣는 건 단 하나의 이야기 뿐이다(눅 2:41-52).
둘째, 이 발견으로 인해서 유아 복음서의 본문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사실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새로운 사본이 획기적이라는 언론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현상 유지에 불과하다. 학자들은 일찍이 이 복음서가 원래 그리스어로 쓰였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새로운 사본은 그 가능성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학자들은 이미 (복잡한 본문 역사에도 불구하고) recension S가 이 복음서에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그리스어 본문일 것이라고 믿었다. 이 새로운 사본은 그 가능성을 새삼 확인했을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새로운 사본에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내용은 많지 않다.
셋째,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이다. 이 발견이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CBS 뉴스의 말)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니, 이 사본은 단지 유아 복음서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일 뿐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렇게 오래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기껏해야 4세기나 5세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무엇일까? 누가복음이다. 그리고 누가복음과 유아 복음 사이에는 여러 주목할 차이점이 있다.
• 저자. 누가는 1세기 사람이고 예수를 직접 목격한 사도들의 증언을 접했다(1:2). 유아 복음서는 목격자의 증언이 불가능했던 2세기 사람이 썼다.
• 날짜. 누가복음은 아마도 예수의 생애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주전 60년에서 80년 사이에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아 복음서는 그로부터 무려 1세기가 더 지나고 쓰였다.
• 문서 역사. 누가복음은 확고한 문서 역사를 가진다. 아마도 가장 초기 사본은 거의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예: P4, 0171). 유아 복음서는 매우 불안정한 문서 역사를 가지며, 가장 초기의 사본이라고 해야 4세기나 5세기의 작품이다.
• 역사적 가치. 많은 학자가 (사도행전까지 고려해서) 누가라는 사람 자체를 뛰어난 역사가로 여긴다. 유아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기괴한 이미지는 누가복음 및 다른 정경 복음서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역사적 가치에 대한 상당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대조는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이번에 발견된 사본으로 인해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누가복음은 항상 가장 초기 역사이자 가장 좋은 출처로 우리 곁에 있었다.
섣부른 추측 피하기
누구나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한다. 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정말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면, 그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경이로움을 추측으로 바꾸고, 그 추측을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자극적인 이야기로 바꾸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대신에 우리는 복음서가 말하지 않는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내용에 만족해야 한다. 어린 예수의 성전 사건에 대한 누가의 독특한 기록은 도마의 유아 복음서나 그 이후의 다른 유아 이야기 속 이야기처럼 극적이지도 않고 재미도 그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역사에 뿌리를 둔, 직설적이며,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이야기가 아닌가?
누가복음에는 진흙으로 만든 날아다니는 새도 없고, 지붕에서 떠다니는 것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소경으로 만들거나 죽여버리는 어린 예수의 격노도 없다. 대신에 당신은 성전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열두 살 소년을 만난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교훈이 있다. 진짜 어린 예수를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를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찾아야 한다. 거기가 어디인가? 어린 예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눅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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