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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제목 | 당신은 iPhone에서 ‘i’를 떼어낼 수 있는가? | ||
| 분류 | 그리스도인의 삶 | ||
| 작성자 | 전체관리자 | 작성일 | 2024-0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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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iPhone에서 ‘i’를 떼어낼 수 있는가?
by Luke Simon 2024-09-09
스티브 잡스는 예언자였나 보다. 적어도 그는 자신이 개발한 기기가 내 미래를 어떻게 형성할지는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는 “i”라는 글자를 “Phone” 바로 앞에 두었고, 휴대폰이 내 인생에 들어온 이후 내가 어디에 있든 휴대폰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십 대 시절 사춘기의 기복을 거치면서 나와 휴대폰 사이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졌다. 내가 휴대폰이었고, 휴대폰이 내가 되었다.
하지만 iPhone은 단지 내 정체성의 핵심을 차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예 새로운 나를 만들어냈다. 현실에서 나는 룩 사이먼이었다. 하지만 iPhone에서 나는 luk3simon이었다.
룩 사이먼은 타인의 인정을 갈구했다. 하지만 luk3simon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룩 사이먼은 데이트 거절에 낙담했다. 하지만 luk3simon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미소를 지었다.
룩 사이먼은 좋은 삶을 갈망했다. 하지만 luk3simon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점점 더 나 자신과 갈등했다. 그럴수록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더 열심히 luk3simon이 되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사는 게 더 쉬웠다. 셀카 속에서 얼마든지 멋진 나를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진짜 거울 속 나를 보며 속상할 이유가 없었다. 얼마든지 내가 스스로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데, 뭐 하러 굳이 현실의 하나님을 마주해야 할까? 얼마든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굳이 왜 고통을 대면해야 할까?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나는 마침내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나는 예수님을 더 원했지만, 내 마음 속 우상 공장은 다른 것을 더 원했다. 바로 내 iPhone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휴대폰에 빠진 이유가 단지 화면, 중독성 있는 오락, 심지어 탈출구 때문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은 소망이었다. 구원에 대한 소망, 회복에 대한 소망,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바로 그 인간이 되고 싶은 소망이었다. 나는 복음이 주는 소망을 갈망했다. 하지만 luk3simon이 룩 사이몬에게 제공하는 건, 무엇이 되었든 소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을 빨아들이는 공허한 세상이었고, 현실 세계에서는 나를 더 절망하게 만들었다.
감사하게도 예수님이 나를 luk3simon으로부터 구원하셨다.
디지털 디톡스
이 무렵, 나는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었는데, 그 책에서 악마 같은 삼촌 스크루테이프가 조카에게 “환자의 모든 습관은 정신적, 신체적이든 관계없이 모두 다 여전히 악마의 구미에 맞는다”라고 상기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말한 환자는 새로운 그리스도인이었고, 나는 바로 거기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나는 휴대폰을 완벽하게 다루는 삶을 꿈꿨지만, 수년간 습관적 사용으로 인해서 내 뇌에는 깊은 홈이 생겼다. 오로지 새로운 습관만이 그 홈을 채울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회복 과정에 들어선 모든 중독자처럼 나는 내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재활치료를 받았다.
iPhone 재활 과정에는 세 가지 조정이 포함되었다.
1. 인터넷 연결이 꼭 필요하지 않는 한 항상 비행기 모드로 전환할 것.
2. 수업에 가거나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휴대폰을 아예 차에 놓고 갈 것.
3. 모든 소셜 미디어를 삭제할 것.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칠 년 동안 한시도 내 곁을 떠난 적 없는 “iPhone”이 사라지고 갑자기 “i”만 남았다. 휴대폰이 없는 나는 누구였을까? 오랫동안 피해왔던 깨어짐이 마침내 내가 마주해야 할 깨어짐이 되었다. 하나님 역할을 맡던 디지털 세계가 사라졌고, 나는 현실에서 만나는 진짜 하나님과 씨름해야 했다. 하지만 디지털 금식이 지속되면서, 나는 마침내 휴대폰 화면에 대한 초기 갈망 증세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그 대신, 나는 하나님의 선함을 맛보기 시작했다.
나는 여유 시간을 활용해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다. 바로 독서이다. 소설, 신학 서적, 철학 서적, 전기 등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었다. 하지만 대부분 시간에 성경을 읽었다. 말씀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눈에 비치는 진짜 룩 사이몬을 발견했다. 나는 그의 자녀(요 1:12), 그의 작품(엡 2:10), 그리고 그의 왕 되신 제사장의 일원(벧전 2:9)이다. 나는 실로 두렵고 놀랍게 창조된 피조물이다(시편 139:14).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물이다(고후 5:17).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는 마치 하나님이 디지털 세계의 가라앉는 모래에서 허물어지는 내 인생의 집을 번쩍 들어서 그리스도라는 견고한 바위 위에 굳건히 올려놓는 것 같았다. 이것은 내가 굳이 억지로 만들 필요가 없는 정체성이었다. 내가 억지로 위조할 필요가 없는 정체성이었다. 무엇보다 결코 벗어나고 싶지 않은 정체성이었다.
온전한 귀가
결국, 나는 다시 휴대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재활을 끝낸 시점에서, 휴대폰은 이제 더 이상 탈출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와 교류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행복한 결말이라는 건 아니다. 나는 휴대폰의 중독성에 대해서 냉정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고, 휴대폰에게는 주인이라는 역할보다는 하인이 훨씬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수시로 상기하고 있다. 게다가 휴대폰이라는 이 하인은 쉬지 않고 주인의 자리를 탐내는 무서운 녀석이다.
재발을 피하기 위해, 나는 휴대폰을 오로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지금은 앱의 도움을 받아서 매일 아침과 저녁에 성경 읽기와 기도 시간을 가진다. Bible Project 교실은 내게 수준 높은 성경 통찰력을 무료로 제공한다. 나는 여전히 소셜 미디어를 삼가하고 있지만, 중보기도 그룹이 보내는 기도 요청과 밈 교환에 이르기까지 대면 및 원격 관계에 도움이 되는 그룹 채팅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디지털 사용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복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수님의 아름다움은 모든 뷰티 필터를 거치고 만들어내는 luk3simon을 추하고 매력적이지 않게 만들었다. 예수님의 아름다움은 iPhone에서 “i”를 제거하고 내게 새로운 정체성을 주었다. 예수님의 아름다움은 거울 속의 남자를 똑바로 보도록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이제 내 죄를 회개한다. 예수님의 아름다움은 iPhone이 흐릿하게 만들었던 자아에서 벗어나서 진짜 자아, 즉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난 진정한 나로 살 수 있는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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