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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직장에서 삼가야 할 말들: 성경의 가르침
분류 신앙과 일
작성자 전체관리자 작성일 202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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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삼가야 할 말들: 성경의 가르침
by 김선일·이금주 2024-08-21

 

엉겅퀴와 가시덤불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겪는 문제와 질문을 두고 김선일 교수와 이금주 교수, 두 신학자가 대화하며 그 답을 찾아 나선다.  

 

최근 ‘파일럿’이라는 영화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항공사에서 파일럿으로 잘나가던 한 남성이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여성 직원들의 외모 이야기를 했다가 성희롱으로 쫓겨났습니다. 다시는 어느 항공사에도 취업할 수 없게 되자, 여성 파일럿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항공사에 여장을 한 채 위장취업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영화는 코믹하게 전개되는데 요즘 민감한 직장에서의 젠더 문제가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사회 전반도 그렇지만, 직장에서의 젠더 문제로 논란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금주: 이 영화를 못 봐서 내용을 모르는데, 김 박사님은 보셨나요?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무슨 잘못을 해서 쫓겨난 건가요?

 

김선일: 예, 저도 얼마 전에 영화를 봤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회식 장소에서 술에 취하긴 했지만, ‘우리 회사 여직원들 얼마나 예쁩니까!’라는 식의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는 그 정도 발언이, 부적절하긴 하지만, 직장에서 쫓겨날 정도의 성희롱이냐며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더군요. 영화에서도 한 남성이 예쁘다고 말하는 게 왜 성희롱이냐고 물으니까, 옆의 여성이 업무와 무관하게 함부로 외모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불쾌하고 무례하다고 반박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수년간 이러한 젠더 문제가 굉장히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 그 주인공이 그리스도인인가요? 

 

: 아뇨. 일반 영화이기 때문에 종교와는 상관없습니다. 

 

: 미국 사회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미국은 남성과 여성의 성별 간 대립 문제뿐 아니라,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 자체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여성과 남성을 창조하셨다고 하는데, 이제는 남성, 여성 구분이 없는 다른 성별이 나오는 것입니다. 남녀 성별에 따른 대명사 ‘he’나 ‘she’가 아니라, 중성을 표현하기 위해, 아예 ‘they/them’이나 인칭대명사를 성별 구분 없이 인간(human)에서 앞의 두 글자를 따서 ‘hu’로 통일하자는 주장), 기존 성별로 규정되지 않는 성별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 ‘Xe/xem’ 등을 제안하기도 합나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분별해야 하는 큰 도전을 안고 있습니다.

 

: 한국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마찬가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혼란스러운 도전적인 과제입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 현상에 대한 더욱 근본적인 관점의 정립이 필요한 때입니다.

 

: 어쨌든 젠더 문제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먼저 한국의 가정을 봅시다. 과거 세대는 남성 우월주의 문화에 익숙했을 겁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 가정에서도 다를 바 없이 가부장주의가 만연했습니다. 이와 같은 가부장주의는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 한국 사회에는 유교 문화가 가부장주의의 유산을 남긴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기성세대는 가부장주의 관습이 익숙하고 젊은 세대는 가부장주의로부터 상당히 벗어난 것 같습니다.

 

: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금 80대 중반이지만 제가 태어나고 자란 가정에서 남자가 우선이고 여자는 보조라는 식의 가부장주의를 또래들에 비해 별로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결혼을 한 뒤에도 남편 역시 전혀 가부장적인 태도로 저를 대하지 않았습니다.

 

: 그 시대에 정말로 선구적인 가정에서 복을 누리신 것 같습니다.

 

: 중요한 점은 돌아가신 제 남편 장로님이 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격적이고 개별적인 한 개인이라는 존재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미국에서는 백인이 아닌 사람들을 ‘유색 인종’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굉장히 모욕적인 규정 아닙니까? 모든 사람은 피부 색깔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백인의 피부는 색깔이 없나요? 색의 모든 요소를 빼면 흰색이고, 모든 요소를 다 집어넣으면 검은색일 뿐입니다.

 

: 그러한 표현에 문제가 많아서 피부 색깔로 인종을 부르는 관행이 바뀌고 있죠. 그러한 문제의식이 남성과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 우리가 인간을 대하는 자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창세기 1:26에 근거해야 합니다. ‘잘생겼다’ ‘예쁘다’ 따위의 외모 평가로 인간을 보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인격을 지닌 존재로 봐야 합니다. 따라서 영화에서 문제가 된 것처럼, 여성을 우선 인간으로 본다면 그러한 외모 평가가 쉽게 나올 수 없습니다.

 

: 우리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람을 외모에 따라 바라보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존귀한 개별적 가치를 주목하지 못하는 것이군요.

 

: 그렇습니다. 이 문제를 세 가지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를 보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둘째, 각 사람은 독특하게 지음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의 지문이 다들 다르듯이, 모든 사람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어느 하나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셋째, 말조심해야 합니다. 여성에게든 남성에게든 외모 평가는 금해야 합니다. 성경의 야고보서 3장을 보면 우리의 혀를 잘 다스리라고 강력하게 충고합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하려는 말이 정말로 필요한지 한 번 더 생각해야 합니다.

 

: 야고보서 3:4-6을 보면 혀가 마치 큰 배를 조종하는 키와 같다고 합니다. 

 

: 누군가에게 예쁘다고 하는 말도 충분히 무례한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에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겠지요(엡 2:10).

  

: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족과의 관계에서부터 그런 언어의 훈련이 필요하겠군요.

 

: 근본 문제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진리를 항상 기억하는 것입니다. 직업이 사장이든 청소부든, 그 사람의 피부가 어떤 색이든, 그 사람의 성별이 무엇이든, 각자가 자신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적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희롱 문제를 놓고 일어나는 법적, 제도적 문제는 부차적입니다. 그 문제는 해결책도 없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관입니다.

 

: 말조심을 얘기하셨는데, 젠더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있는 곳에서는 문제가 될까 봐 말조심하는 분위기가 높아졌습니다.

 

: 무서워서 말을 삼가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말을 가려 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고 지혜입니다. 농담을 함부로 하는 것도 유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말을 선한 일에 쓰라고 권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데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말조심하는 사회는 그리 건강하지 못합니다. 물론 여성들이 잘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남성들은 성경의 인간관을 다시 깊이 있게 봐야 합니다. 페미니즘이라는 이슈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남자와 여자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성경의 진리를 항상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는 훈련(약 1:19)이 필요합니다.

 

: 제가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젊을 때 ‘가슴 달린 남자’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영화에서는 여성이 취업을 하려고 남장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남자가 취업을 위해서 여장을 한다는 정반대의 설정이 나오네요. 세상은 늘 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라(롬12:2)는 성경 말씀에 따라 젠더 이슈로 어지러운 세상에서 성경적 인간관을 갖고 지혜로운 언행을 힘써야겠습니다.

 

: 시대정신에 너무 몰두하거나 위축되지 마십시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문제를 마주하는 중심 원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대로 근본적으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요 7:24). 사도 바울도 이렇게 권고합니다. “더러운 말과 어리석은 말과 상스러운 농담은 여러분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감사에 찬 말을 하십시오”(엡 5:4).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엡 4:29). 그리고 에베소서 5:18의 말씀처럼 술 취하지 말고 성령에 충만해야 합니다. 무익한 분쟁에 너무 빠져들면 마귀에게 나를 조종하도록 내어주는 꼴입니다. 성령에 충만하고, 일관된 성경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일터에서의 젠더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이지만, 오늘 대화를 통해서 기본이 되는 두 가지 원칙을 확인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가장 먼저 성별이나 인종에 앞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특별하고 존귀한 개별적 존재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대화에서 그러한 관점으로 사람들을 격려하고 세워주는 언어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성별에 근거해서 함부로 평가하거나 논쟁을 일삼는 유행에 휘말리지 말고, 우리의 말을 오직 은혜와 덕을 세우는 데 사용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