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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제목 | 나를 위한 처방, 너그러움 | ||
| 분류 | 서평 | ||
| 작성자 | 전체관리자 | 작성일 | 2024-0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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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단절된 이야기를 하나님의 은혜로 이어가기‘마음 챙김’류의 서적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안에서,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한 유교 문화의 사회에서, 특히 경쟁으로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이미 많은 사람은 번아웃을 경험했다. 이런 문화는 기독교인 신자들에게도 거센 물결처럼 흘러들어와, 마땅히 ‘이미’ 이루어진 복음을 누리며 살아야 하고, 살 수 있는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태도에도 많은 상처와 흠집을 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나이가 많든 적든, 돈이 많든 적든, 우리는 대체로 탈진해있다.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당신이 충만하게 살아 있는 게 어떤 것인지 맛보기를 바란다”고 간곡히 요청한다. 이런 이상적인 선언이라니. ‘죽지 못해’ 살거나, ‘생존하듯 하루를 견디며’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상 아니던가. 그런데 저자는 더 나아가 “충만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가 창조된 목적대로 살고 숨 쉬고 움직이며 느끼고 연결되고 몸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덧붙인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요구에 버거운 마음이 들지만 그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무리하게 노력한다. 유능한 직원이 되기 위해 내가 잠시 수치스러워지는 일은 아무 일 아닌 듯 참고 넘어갈 수도 있다. 우리는 분노나 무기력, 억울함을 충분히 느낄 겨를이 없다. “나는 그렇게 느끼면 안 된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텨내며 내면의 나를 무시해왔다.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단호히, 그러나 부드럽게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극도로 너그럽게 봐주시니, 우리도 우리 자신을 좀 더 부드럽게 대해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삶의 방식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라고 말이다.
트라우마 인지 치료를 중점적으로 하는 저자는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이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삶을 경험하는 신경생물학적 틀”이라고 본다. 우리의 경험은 우리의 몸이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겪은 어떤 일은 우리의 몸이 함께 겪어냈기에,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특정한 몸의 반응이나 감정은 우리가 과거의 이야기를 어떻게 처리 했는지 보여 준다. 우리는 특정한 상처의 경험을 덮어두고 싶어서 일부러 무덤덤한 척 할 때가 있다. 반대로 어떤 일만 떠올리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멘탈을 부여잡아야 할 때도 있다. 우리는 이런 과거의 경험을 진정으로 끌어안아 “응집력 있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부드럽게 해보기’를 실천해 나갈 수 있다.
이 책은 다른 마음챙김류의 자기개발 서적처럼 빠르게 적용해 볼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각자가 “자기 자비(self-compassion)를 지니고 삶을 대하도록 돕는 도구와 자원을 제시”하며, 창조주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에 집중한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뇌과학과 심리학의 관점으로 우리가 현재 특정한 삶의 태도를 갖게 된 원인을 과거의 경험을 통해 다룬다. 우리 뇌가 트라우마적 상황에 대처하는 원리, 그리고 심리학의 애착유형을 활용한 자기 이해 등을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우리가 과거에 경험한 위기상황에서 우리 몸이 반응했던 방식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현재 우리의 삶에서의 위기를 어떻게 경험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어떠한 자극에도 극단적으로 각성되거나 덜 각성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인내의 창’ 개념을 가져와 우리 몸이 여러 감정에 반응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우리 몸은 우리에 대하여 중요한 정보를 말해주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몸이 곧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의 생리를 이해하면 자신에 대해 너그러워질 힘을 얻”을 수 있다. 또, 불안정한 애착 유형을 학습해 온 사람들도 성인이 된 이후에 하나님과 안정 애착을 형성함으로써 우리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인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저자는 안전감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타인과의 적정한 경계 등에 대해서도 다룬다.
후반부는 책의 원 제목인 ‘Try softer’(부드럽게 해보기)를 어떻게 훈련할 수 있는지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자기 자신을 좀 더 너그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태도를 몸과 감정, 인지(자기비판) 등의 차원에서 깊이 다루며 ‘인내의 창’에 머무르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뇌를 특정 방식으로 훈련해 회복 탄력성을 키워 ‘인내의 창’을 넓히는 방법까지 다룬다. 얼핏 보면 일반적인 심리학적 치료의 방법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지침의 기저에는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깔려 있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저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는 방법을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각 챕터마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여유로운 상황에서 실천해 볼 수 있도록 부드럽게 해보는 훈련 방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마치 개인 상담사가 다정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누구라도 쉽게 따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위한 처방, 너그러움>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진리가 보다 현실적 차원에서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도록 우리를 ‘우리에 대한’ 진리로 세심하게 인도한다. 몸이 우리에게 거는 말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은 거짓이었다. 저자가 제안하는 여러 방식으로 부드럽게 해 보기를 연습하다보면 우리의 감정과 신경계, 뇌가 통합되어 “진정한 자기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과거의 이야기를 품고 있을테지만, 끝없이 우리를 품어주시는 너그러운 창조주 안에서 충분한 안정감을 느끼며 ‘지금’을 계속하여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우리가 취약하게 겪어내는 특정한 경험에서 더는 이전처럼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 나은 방법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방법을 알고 실천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단절된 우리의 이야기는 비단 우리 개인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한병철 교수는 <서사의 위기>에서 ‘사회적 응집성과 의미를 만들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가치를 전달하는 이야기의 힘’을 역설한 바 있다. 늘 새롭고 자극적인 뉴스거리가 넘쳐나는 사회, “자기 존재를 정보로 전락시키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스토리셀링’하며 의미 없이 찰나의 정보만 공유할뿐, ‘자신만의 삶의 맥락’과 의미가 있는 이야기는 이어가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다. 각각의 그리스도인이 과거의 크고 작은 트라우마 속에 단절시킨 자신만의 이야기를 수용해가며 점점 더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되어 갈 때, 그런 우리가 모여 하나님 나라의 거대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하는’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모든 과정은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우리 이야기의 큐레이터이며 관리자”라는 사실이다. 다윗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그 목소리를 시편의 기도 안에서 하나님께 가져갔다. 그리고 그럴 때 다윗은 더욱 더 진정한 다윗이 되어 갔다. 우리도 손에 꽉 쥔 힘을 빼고 내면의 목소리에 상냥하게 귀 기울여 그분이 이끄시는 ‘느리지만 깊이있는’ 치유의 여정을 용감하게 따라가 보는 게 어떨까. 이 책을 통해 일상 속에 들어와 우리와 함께 사시며 우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는 그분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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