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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영적 가면을 벗어라
분류 서평
작성자 전체관리자 작성일 20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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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가면을 벗어라

부러움 받는 삶 vs. 감동을 주는 삶

Larry Crabb

 

by 장혜원(그 사랑교회 성도) /  복있는사람 / 2024-09-03

 

기독교인들이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중에는 풍요롭고 부러워할 만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꽤나 많아 보인다.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그런 사람들의 삶을 멋지다고 여기는 크리스천들도 많은 것 같다. 반면, 예수님을 닮은 성품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런 상황은,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진다.

 

왜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것보다 편안하고 부유하며 자신감 넘쳐 보이는 삶을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걸까?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너무 몰두해 있다. 자기가 거의 전부인 세계에서의 하나님과 이웃 사랑은 존재하지 않거나, 자기 사랑을 교묘하게 가린 형태로 드러난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은 버겁게만 느껴진다. 그저 ‘잘 관리된 삶’을 살며 고통을 최소화하고, 나이스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매력적인 크리스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교회 일에 열심을 내고, 개인의 영성을 최선을 다해 길러내면서도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거룩을 추구하는 마음은 멀어질 수 있다.

 

래리 크랩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제 진정으로 내면으로부터 변화하라”라고 촉구한다. 사실 이 외침은 2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개정증보판이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여전히 거짓된 희망을 품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이 “관계 안에서의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초청장”이라고 말하며, 자아실현이 아닌 ‘영성 형성의 삶’을 살아갈 것을 친절히 권유한다. 하나님을 이용해 내 인생의 소원을 이뤄내는 신앙에서 빠져나와 천천히 전인적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을 제안한다. 이 책은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독교적 자기개발서가 아니다. 영혼의 심연으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끌고 내려가 추악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자기 사랑’이라는 죄악을 빛으로 비추고, 인생에 절망하게 하여 그 자리를 그리스도의 마르지 않는 샘으로만 채우고자 하는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혁명 서적에 가깝다.

 

저자는 예레미야 2:13의 말씀을 중심축으로 ‘1)인간은 누구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깊은 목마름이 있으며,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2)그러나 인간은 타당하며 정당하기까지 한 그 갈망을 해소하는 잘못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논지를 펼친다. 마지막으로, 내면으로부터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거듭난 크리스천이 추구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목마름에 관하여 저자는 ‘갈망의 범주’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인간에게는 물리적, 신체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상적 갈망’, 관계의 기쁨을 추구하는 ‘결정적 갈망’, 어떤 인간도 채워줄 수 없는 차원의 관계를 바라는 ‘핵심적 갈망’이 있다. 이 ‘핵심적 갈망’은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며, 이 목마름을 느낄 수 있어야 우리가 하나님 외의 다른 것들로 이 갈망을 채우지 않을 수 있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이 목마름을 느끼려면 역설적으로 하나님 외의 다른 것들이 우리를 채워줄 수 없음을 직시할 수 있을 만큼 그것들에 충분히 실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나를 실망시킨 관계의 상처를 깊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거기에서 생겨난 고통을 다른 좋아 보이는 것들로 마비시킨다. 인생이 그럭저럭 살 만하다고 느끼게 하는 많은 것들이 이에 해당될 것 같다. 그러나 영혼의 고통을 제대로 직시하면(목마름을 직시하면) 강박적 죄에서 벗어나고, 죄를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데에서 더 나아갈 수 있으며,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 갈망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써 우리가 취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저자는 ‘자기 보호의 죄’ 개념을 제시한다. 모든 관계 방식의 근저에는 ‘자기 보호’ 아니면 ‘사랑’이라는 두 가지 동기가 있다. 자기 보호의 죄는 “사랑받고 싶은 합당한 목마름이 상처받아서는 안 된다는 요구를 만들어 내면서, 그 요구가 다른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을 누를 때” 나타난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는 옳은 것이다. 그러나 그 욕구가 상처받아서는 안 된다는 요구를 불러일으킬 때,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어기게 된다. 이런 ‘요구적 태도’는 (인간 안에 있는 죄성 때문에) 우리 안의 교만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처받는 우리 자신에 집중하기보다 거침없이 타인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 자기 나름의 자기 보호적 관계 방식이 있다. 때로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각자의 관계 방식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며 상처로 인한 고통을 극도로 거부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물을 거부하고 스스로 우리의 웅덩이를 파는 존재이므로(예레미야 2:13), 자기 보호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반드시 효과가 있어야 한다.” 노력한다는 것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뜻이며,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신념 아래 자기를 보호하는 일은 일종의 ‘권리’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 통제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을 스스로 부여하면서 우리의 노력이 성공해야 한다고 불합리한 요구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죄’다. 따라서 표면으로 드러난 죄뿐만 아니라 자기 보호적 자세까지 회개해야 비로소 우리는 내면으로부터의 변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회개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변화가 평생 일어나는 성화의 과정이며 우리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령과 그분의 말씀, 그리고 그분의 사람들이라는 세 가지 자원이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뻔한 제안 같아 보이지만 동기 자체가 새롭다. 표면적 죄만 다루기를 원하거나, 그럴듯한 성도로 만족하겠다는 동기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 목마른 자며, 이 목마름을 하나님이 아닌 방식으로 해갈하려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며 묵상하는 성경 말씀은 이전과 다를 것이다. 깊이 있는 변화는 “우리 내면의 현실을 기꺼이 직시하려는 마음과 … 어떤 것에도 가장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저자는 우리가 변화하기 위해 다루어야 할 문제는 우리가 가진 깊은 갈망으로부터 비롯된 마음속의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잘못된 전략이다. 마음의 고통은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길로 이끌거나, 자신을 더욱 보호하려는 길로 이끈다. 후자는 “만족을 바라는 욕망이 고통을 해소해 달라는 욕구(마음속의 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의 고통을 깊이 직시하면서 자기 보호의 패턴을 인식하고, 사랑하지 않는 자신의 죄성을 회개하며, 그 열매를 맺어야 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어떻게 밟아가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준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상처받을 가능성을 끌어안으면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보존하신다는 믿음에 의거하여 우리 삶의 동기와 방향을 자기 보존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로” 바꿈으로써, 자신이 아닌 타인의 영혼으로 깊이 파고드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자기 사랑을 버리고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죽음처럼 힘겹게 느껴진다. 그러나 자기 부인의 멍에는 오히려 참된 자유를 준다. 엘런 노블은 저서 <나는 나의 것이 아니다>에서 ‘내가 나의 것일 때는 내 운명을 내 어깨에 스스로 지우게 되고 삶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며,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고,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연합 속에서 그분의 사랑을 그저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음을 충분히 인식하는 만큼, 우리는 그분의 사랑으로 배불리 먹고 그 사랑을 자기 보호가 아닌, ‘자기 내어줌’으로 표현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원 제목은 ‘Inside out’이다. 한국어 번역본 제목이 그 의미를 잘 드러내주는 것 같다. 이제 회칠한 무덤 같은 영적 가면을 벗고,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시작해 보길 바란다. 그럴 때 우리는 단순히 부러움 받는 삶을 넘어 사랑으로 감동을 주는 모험을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