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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제목 | 3040에게 열쇠를 주어라 | ||
| 분류 | 선교 | ||
| 작성자 | 전체관리자 | 작성일 | 2024-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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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에게 열쇠를 주어라
3040에게 다가가기 by 이춘성2024-10-23
3040의 심리: 외로운 세대
Z세대는 경제적 측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심리적이며 영적인 측면에서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조너선 하이츠(Jonathan Haidt)의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Z세대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는 자아존중감의 저하와 사회적 고립을 야기한다고 합니다. 하이츠는 2000년대 중반까지는 기술 혁신이 다양한 지역과 문화를 연결하며 상호 발전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2009년 이후 소셜 미디어에 치명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이츠는 그 원인으로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을 지목합니다. 이 버튼이 등장한 이후, 사람들은 자신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나누며 점점 더 극단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7] 그 결과, 소셜미디어는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분리되고 고립되는 공간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소셜미디어의 극단성을 피하려고 아날로그적인 삶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이츠는 이 현상을 바벨탑 사건에 비유합니다. 바벨탑 사건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면서 흩어진 성경 속 이야기입니다. 그는 Z세대가 기술을 통해 언제나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가장 고립되고 분절된 관계 속에서 외로움을 겪고 있는 세대라고 분석하며, 이를 ‘제2의 바벨탑 사건’이라고 부릅니다.[8] 하이츠는 2025년에 출간 예정인 그의 책 Life After Babel: Adapting to a World We Can No Longer Share에서 이러한 주제를 다룰 예정이며, 현재 그의 블로그에서 그 개요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Z세대는 디지털 원주민으로서 언제나 연결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성장했지만, 역설적으로 역사상 가장 고립되고 외로운 세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3040의 종교
2000년대에 미국의 종교학자 얼랜스는 기존 종교에 관심이 없지만, 여전히 영적인 것에 끌리는 사람들을 가리켜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는 명칭을 제안했습니다. 흔히 SBNR이라고 줄여 부르는데, 얼랜스는 미국 내 종교인들, 특히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제도적 교회 밖에서 영적인 갈망을 채우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현상은 종교적(Religious)이라는 단어보다는 영적(Spiritual)이라는 단어로 더 잘 포착된다고 했죠. 현대인들이 영성(Spirituality)을 교회라는 공동체적 의미보다는 제도와 공동체 밖의 개인적 영역에 더 중점을 두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종교가 교회 건물, 교리, 전통 등 공동체와 제도를 연상시킨다면, 영성은 개인의 자유로운 영적 체험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월드’ ‘마음 수련’ ‘선 수행’ ‘요가’ ‘템플스테이’ ‘타로 카페’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최근 교회에서 많이 논의되는 ‘가나안 성도’ 현상 역시 SBNR 영성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윤리적 이유로 교회를 떠나는 탈교회 현상이 아니라, 현대인의 종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화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첫째 이유는, 종교의 공적인 역할이 세속화의 영향으로 사적인 영역으로 축소되면서, 사람들이 종교를 더 이상 사회적, 공동체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개인적 영역에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전통적인 종교가 제공하던 신비적 체험에 대한 개인의 필요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SBNR식의 영성이 종교를 대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실시한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신앙의식 조사’에 따르면, 무종교인의 비율은 2017년보다 10퍼센트 증가해 2023년에는 36.6퍼센트에 이르렀습니다. 또, 최근 갤럽 조사에서는 무종교인의 비율이 약 60퍼센트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무종교인 중 2/3가 과거에 종교인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조사 결과는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기성 종교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음을 시사하는데, 그 충격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탈종교화 현상의 주요 세대가 3040세대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종교에 무관심하거나 비영적인 사람들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은 여전히 영적인 갈망을 품고 있으며, 그 갈망을 채울 새로운 수단을 찾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제도적이지 않고,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으며, 진부하지 않은 더 본질적인 기독교를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갈망과 요구는 최근 나온 한 단편 소설 속에도 등장 합니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 소설은 제13회 김유정 문학상의 후보작으로 선정된 이주란 작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입니다. 이 소설은 어머니를 제외한 언니와 가족을 잃고 언니의 어린 딸과 어머니, 이렇게 세 여자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소설은 최근 결혼하고 반포에 아파트를 얻어 신혼집을 차린 P의 결혼식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설 중간에 P의 신혼집을 찾은 주인공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모든 문제를 ‘그분’이 다 해결해 주셨다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친구의 말을 듣습니다. 그러면서 P는 CCM을 배경 음악을 틀어주고, 널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흘립니다. 이일이 있고 난 뒤에, 어느 날 난데없이 문자를 보내 오늘도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P의 맥락 없는 관심은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그녀의 불확실한 미래와 감히 결혼도 꿈꿀 수 없는 어려운 상황, 늙은 엄마와 고아가 된 조카를 걱정하는 자신의 상황에 어떤 위로와 공감도 되지 못합니다. 공감이 없는 일방적인 배려는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이와 달리 옆 가게에서 스파게티 집을 운영하는 청년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스파게티 집 청년 사장은 주인공에게 은근하게 스파게티 양을 많이 주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팬 사인회에 같이 가 주었습니다. 이런 소소한 배려는 그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배려하여 휴가비를 주시며 휴가를 다녀오라고 하는 서점 주인 부부의 배려에 세상 살맛을 느낍니다.
이 단편소설이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교회는 단순히 조직의 논리나 관습에 얽매인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초대교회처럼 서로를 진심으로 돌보고 책임져 주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 이들과 함께 하면 세상 살맛나는 향기를 전해야 합니다. 교회는 3040 세대가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들-결혼, 경제적 자립, 직장 생활, 부부 갈등, 자녀 문제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실질적으로 그들과 동행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열쇠를 건네주다
시러큐스 대학에서 영어와 여성학을 가르치던 로자리아 버터필드라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때 레즈비언으로서 동성애 운동을 이끌었지만, 회심 후 동성애를 버리고 목사의 아내가 되었고, 몇 년 전복음과 집 열쇠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는 그녀가 과거 동성애 운동을 하던 시절 경험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 동성애자들은 서로의 집을 열어주고, 집 열쇠를 나누며 어려울 때 서로 의지했습니다. 이들은 직장이나 가정에서 배척당해도, 언제든지 서로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자리아는 이러한 환대와 개방이 결국 미국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환대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에는 초대교회의 첫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유무상통’의 원칙에 따라 교인들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었고,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 4:34-35). 사실, 집 열쇠를 처음으로 나눈 공동체는 바로 교회였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그 지역과 민족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교회는 조직화되고 제도화되면서 닫힌 공동체로 변해 갔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열쇠 없이 들어갈 수 없는 물리적 공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문이 닫힌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의 3040 세대는 마음의 문을 열어 자신을 맞아줄 곳을 찾고 있습니다. 이들이 찾는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환대해주고, 함께 삶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그들에게 열쇠를 건네주며 언제든지 들어와도 좋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들은 스스로 문을 열고 교회 안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7. Jonathan Haidt, The Anxious Generation: How the great rewiring of childhood is causing an epidemic of mental illness (Random House, 2024). 8. 하이츠는 2025년에 발표될 새로운 책인 “Life After Babel: Adapting to a world we can no longer share”의 개요를 그의 블로그에 미리 공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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