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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목 동네 작은 교회 목사의 로잔대회 참관기
분류 이슈
작성자 전체관리자 작성일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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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작은 교회 목사의 로잔대회 참관기
by 정영준 2024-10-17

로잔대회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또 나오고 있다. 로잔에 참여할 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는 동네 작은 교회 목사로서(진짜 작다) 로잔대회에 참석해서 보고 느낀 개인적인 내용을 잠시 나눠보고자 한다. 

 

사실 나는 로잔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뉴욕 CTC에서 함께 수업을 듣던 친구가 마이클 오와 함께 로잔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냥 책에서 봤던 익숙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가 로잔대회에 참석하게 될 거라고는 (심지어 이와 관련된 글을 쓰게 될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던 중 200개가 넘는 나라에서 5,000명이 넘는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는 로잔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다양한 국적과 문화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여 함께 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정말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요한계시록 7장에 기록된 예배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모든 민족과 열방이 함께 모여 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은 얼마나 더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울지 참 사모하게 됐다.

 

가장 즐거웠던 경험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교제하는 것이었다. 몽골에서 온 형제, 호주에서 온 목사님, 미국에서 온 선교단체 간사님, 나이지리아에서 온 자매….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인데 함께 대화하며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거 같았다. 인종도 국적도 삶의 정황도 다 달랐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그리고 동일한 사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자매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마치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 함께 가족 모임을 갖는 거 같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된 가족. 언젠가 주님이 다시 오시면 더 큰 가족들을 만나 함께 기뻐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되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내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부분적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특별히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영성은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속주의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었음을 깨닫게 했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박해받는 교회에 관한 소식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지만, 막상 직접 그들과 대면하며 그들의 목소리로 듣게 되자 더 크게 와 닿았다. 정말 그리스도 몸의 일부가 고통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특별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인상 깊었다. 또 박해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가운데 사람들이 회심하고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들이 누리고 있는 은혜가 오히려 부럽기도 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소중한 가족으로부터 쫓겨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심지어 옥에도 갇혔지만, 그 모든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은혜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밭에 감춰 있던 보화를 발견했기에 모든 소유를 팔아 기쁨으로 그 밭을 사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은혜 말이다. 

 

오후에 관심사별로 모이는 시간에는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2023년 2월의 애즈베리 대학교의 부흥에 관한 소식을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애즈베리 대학에서 5명의 관계자들이 와서 소식을 전해줬는데, 그중 한 명이 한국인 교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교수님이 내가 대학생 때 요르단에서 한 달 반 동안 머물던 선교사님 가정이었다는 것이다. 모임이 끝나고 교수님과 함께 스타벅스에 앉아 애즈베리 대학에서 있던 이야기들을 들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 그분이 행하시는 일들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로 인해 어떠한 열매들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으며, 캠퍼스와 이 땅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던 시간들이 생각났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흥의 역사를 더 사모하게 되었다. 20대 대학생 때는 내가 목회자가 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돈을 많이 버는 사장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 하나님은 그때도 내가 목회자가 되고, 로잔에 가고, 또 이 선교사님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이미 아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선교사님을 만나고 애즈베리의 부흥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한국 교회의 밤은 참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박해받는 지역에서 온 형제들의 발표는 시간이 부족해서 중간에 끊어야 했는데, 한국 교회를 소개하는 시간으로 저녁 시간 모두를 사용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걱정이 되어 외국에서 온 형제들에게 소감을 물었는데 그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특별히 한국 교회의 여러 가지 놀라운 점들뿐 아니라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던 부끄러운 부분들을 고백하고, 또 지금 가지고 있는 한계들을 겸손하게 고백한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는 분명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다. 하지만 그 은혜를 우리가 누린 것은 우리 가운데 뭔가 자격과 공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마치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택하신 것이 그들이 가장 작고 보잘것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더욱이 로잔대회에서 본 화려한 스크린과 음향효과가 더 이상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람들의 종교적인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한국 교회를 상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유기성 목사께서 로잔을 준비하며 겸손을 강조하시고, 또 로잔 대회를 통해 한국 교회의 영적 각성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셨던 것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늘 중심을 지켜주시는 어른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일터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시간도 참 좋았다. 무엇보다 초대교회도 99퍼센트가 평범한 그리스도인이었고, 그들이 삶의 자리에서 말과 삶으로 전하는 복음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확장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땅의 교회를 구성하는 99퍼센트의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분이신지, 그분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에 눈을 뜨고 하나님이 보내신 모든 삶의 자리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뛰었다. 또 젊은 다음 세대 청년들의 솔직한 이야기들과, 또 나이가 지긋하신 노년의 멘토의 진실한 이야기 또한 인상 깊었다. 복음은 지역과 민족을 넘어설 뿐 아니라, 세대를 넘어 우정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다는 걸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서울선언과 관련해 참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갑자기 공개되면서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고, 아무런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작성되고 공개되었다며 방식에 대해서 마음이 불편한 이들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변화되는 시대에 맞게 새로운 이슈들을 담아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비판했고, 또 어떤 분들은 어떤 주제를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비판했다. 또 어떤 분들은 시대에 맞지 않게 너무 폐쇄적이고 방어적이라고 비판했고, 또 어떤 분들은 지나치게 진보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은 서울선언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변화되는 시대에 복음을 적용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몇몇 분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 시대가 당면한 주제들에 대해서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한 부분은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 빠르게 변화되는 시대 속에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고백했던 믿음의 내용을 변질시키지 않고 여전히 동일하게 고백하는 것 또한 귀하다고 생각한다. 2024년이라는, 세속화의 물결이 그 어느 시대보다 거센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하나의 분명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가던 그 길을 계속 가면 된다!) 또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맞게 중요하게 싸워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로잔에서 강조했던 내용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작년 7월에 송도에서 있던 로잔을 위한 기도 모임에서 유기성 목사님이 마지막 축도를 하며 나누셨던 짧은 메시지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결국 로잔은 우리 주님의 다시 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여러 가지 미흡한 것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유익은 비교할 수 없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교단과 사소한 신학적인 입장을 뛰어넘어(사소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우리가 너무나도 사랑하고 사모하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위해 마음을 모으고 하나의 신앙고백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런 역사적인 사건이 100년 전 복음의 불모지와 같던 이 땅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 

 

로잔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던 동네 작은 교회 목사를 부르셔서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맹렬하게 일하시는 크신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예비하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