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사스캐처원(Saskatchewan)에서 자란 머레이 맥렐런(Murray McLellan)은 말씀에 충실한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사실, 그가 살던 동네에는 그런 교회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그의 가족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고, 그렇다보니 그는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가 사스캐처원 주 새스커툰(Saskatoon)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떨어진 리스크(Leask)라는 마을에서 체육 교사가 되었을 때, 한 학생의 아버지가 그에게 물었다. “맥렐런 선생, 만약 이 버스가 추락해서 다 죽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될 거 같아?” 3주 후, 머레이는 한 교회 개척자를 만났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머레이의 눈을 뜨게 하셨다. 그의 눈을 환히 열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게 하셨다. 머레이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작은 교회에 합류했다.

그리스도를 믿고 3개월 후, 머레이를 전도한 교회 개척자가 매주 토요일 아침 자신과의 일대일 성경공부를 권했다. 그들은 매주 토요일 개척자의 집에서 모여 조직신학 한 시간, 권별 성경공부 한 시간, 그리고 그리스어를 한 시간씩 공부했다.

머레이는 한 때 앨버타로 이사했지만 다시 리스크로 돌아왔고 그의 아내 셰릴도 예수를 믿게 되었다.

 

선생에서 개척자로

머레이는 학교에서 계속 가르쳤지만 동시에 리스크에 있는 교회에서 파트 타임 목회도 시작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교사이자 파트 타임 목사로 계속 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레이는 전도에 대한 부담을 느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내가 교회가 있는 동네에서 자라지 못했기에 복음을 몰랐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는 새스커툰에 있는 사스케처원 대학교에서 신학의 밤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시작했다.

그를 통해서 많은 학생들이 신앙을 고백했다. 머레이는 그들을 각자 지역에 있는 좋은 교회로 보냈지만 학생들은 서로 교제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머레이는 매주 일요일 밤에 새스커툰으로 차를 몰고 가서 그들을 대상으로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께 새로운 교회를 시작할 교회 개척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새스커툰의 초신자 그룹이 리스크에 있는 교회보다 더 커졌다. 머레이의 고백이다. “주님께서 무언가를 하셨고, 나는 소중한 영혼을 죽어라고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그분께서 무엇을 하실지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는 중에 우리는 이 새로운 제자들로 어느새 새로운 교회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시점에서부터 우리는 의도적으로 행동했고, 여기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향에 순종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말 그대로 우연한 개척이었습니다.”

2007년에 머레이는 집을 팔고 새스커툰으로 이사하여 교회를 계획했다. 그들은 스물네 명의 견고한 핵심 멤버의 확립을 목표로 삼았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있었지만, 성장 속도는 느렸고 또 종종 멀어지는 사람들도 생겼다. “매우 느린 과정이었지만, 우리는 제자를 만들고 말씀에 충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중심으로 말씀을 선포함으로 예수님을 더 많이 언급했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이미 오십 대였던 머레이는 교회를 개척하기에는 나이가 많다고 느꼈다. “가끔 교회 개척자들 모임에 가면 내가 가장 연장자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전에는 내가 개척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겸손하게 하시고, 내가 개척이라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경험과 고통을 주시기 위해서 나로 하여금 많은 일을 겪게 하셨습니다.”

2008년, 야심찬 교회 개척자 클레이 비트너가 조언을 구하기 위해 머레이에게 연락했다. 머레이는 클레이에게 모 교회를 떠나지 말라고 말했지만, 클레이는 계속해서 머레이에게 개척에 필요한 훈련을 받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졸랐다. 결국 교회의 축복과 함께 클레이와 아내 킴은 머레이에게 배우기 위해 새스커툰으로 이사했다.

새스커툰 그룹이 16명 정도가 되었을 때, 원주민인 샘 화이트호크가 머레이에 대해서 듣고 그의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클레이의 고백이다. “그는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무료 신학 교육을 해주었습니다. 읽어야할 모든 책과 필요한 논문자료를 모두 다 주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가장 낮은 곳까지

2010년에 새로 시작한 교회는 더 많은 불신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도심 영화관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다. 몇몇 핵심 교인이 이 결정에 반대했고 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머레이와 지도자들은 기도했다. 그리고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2011년 1월 9일에 새스커툰 도심의 갤럭시 극장(현재는 스코샤뱅크 극장)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소수로 시작했다. 교회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핵심 멤버와 가족 그리고 그들의 친구가 교회를 떠났다. 극장 임대료는 한 달에 1,500달러였는데 세 가족이 나눠서 감당했다. 머레이는 또한 이 어린 교회를 목회하는 동안 리스크에서 계속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했다.

“우리는 가장 낮은 곳에 있었고, 세상 기준에서 볼 때에는 극복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했고 주님께서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새 교회를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머레이의 카리스마도 또 우리의 능력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사역의 기초로 삼았을 때, 더 장기적인 열매를 맺었고 미래의 폭풍을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샘 화이트호크의 회상이다.

머레이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고 그래서 이 교회가 전혀 성장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함께 말씀을 공부하고 서로를 격려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런다면, 그게 나쁜 걸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잃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머레이는 하나님께서 이 기간을 사용하여 자신의 교만 뿐 아니라 마음의 우상까지 드러내셨다고 믿는다.

“머레이는 성경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대로 살아가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함께 하나님의 진정한 복음 공동체가 되는 것에만 신경 썼습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성장할 것이고, 그럼으로 주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도록 하실 겁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머레이는 확실히 힘든 시기를 겪고 인내해야 할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클레이의 회상이다.

 

확장

교회가 천천히 성장하면서 머레이는 다른 리더를 키우고 교회 개척에 대한 열망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리더 훈련 확장에 집중했다.

“머레이는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는 사역 방법론 멘토링을 아주 일찍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레이스 펠로우십에 다녔고 지금은 온타리오 주 앤캐스터에 있는 헤리티지 펠로우십 침례교회의 목사인 숀 라이스의 말이다. “그는 우리에게 결정을 내릴 자격이 없을 때에도 책임과 의사 결정권을 우리에게 넘겼습니다.”

그레이스 펠로우십이 시작된 지 4년 후인 2015년에 교회는 클레이와 킴 비트너, 그리고 다른 부부를 20킬로미터 북쪽에 있는 도시인 워먼에 파송해 교회를 개척하도록 했다. “처음에 30명이었는데, 나중에 60명까지 성장했습니다.” 클레이가 말한다.

2019년 9월에 그레이스 펠로우십은 샘과 앨리슨 화이트호크를 에버그린 지역에 보내 교회를 개척하도록 했다. 그곳은 새스커툰에서도 독특하고 교회가 없으면 말 그대로 문화적 다양성을 지닌 지역이었다.

2024년 7월, 워먼에서 9년을 보낸 클레이와 킴 비트너는 에드먼튼으로 이사하여 그레이스 펠로우십의 첫 손녀 교회인 그레이스 에드먼튼을 시작했다. 그레이스 펠로우십은 현재 세 지역에 있는 교회와 더불어 모교회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배틀스포드에서 성경 공부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자원을 공유하고 서로를 위해 필요한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각 교회가 가족이지만 동시에 각자의 장로와 지도자를 통해서 자율적으로 운영됩니다.”

 

충실하게 사역하기

샘은 머레이의 일관성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한다. “그는 매일 매일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당신을 예수님께 인도할 것입니다. 그는 자기 방에 들어오는 다른 모든 사람을 대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당신을 대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가 오늘과 내일, 그리고 모레에도 그렇게 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와 가까이 걸으며 그 은혜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지도자를 곁에 두고 있다는 건 정말로 근사한 일입니다.”

클레이는 머레이가 미국에서 사역했다면 훨씬 더 유명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머레이가 쓴 것으로는 제자 양성 과정, 성경주석, 여러 책, 그리고 사역 자료가 있으며, 또한 성경 이야기에 대한 9부작 비디오 시리즈와 그림 학습 안내서 대본까지 쓰고 진행했다.

“머레이는 놀라운 작가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설교자지요. 그런데도 그는 사스캐처원의 이 작은 도시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자신을 쏟아 붓는 사람입니다. 그가 피곤할까요?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걸 신경 쓸까요? 아닙니다. 그는 계속해서 달릴 겁니다. 결승선까지 쉬지 않고 질주할 사람입니다. 자신이 담임 목사이든 그저 옆에서 담임을 돕는 부목사이든, 그는 선교를 위해 자신을 쏟아 부을 것이고 예수님이 자신을 도구로 쓰시도록 온전히 맡길 사람입니다.” 클레이의 말이다.

“나는 보통 5년 계획을 자세히 세우지 않습니다. 그저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주님, 내가 충실하도록 도와주세요. 당신이 부르신 사명을 계속하도록 도와주세요. 나는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결과가 어떻든 말입니다. 우리는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성공이나 실패, 숫자와 관련한 것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내게 성공은 나의 마음 상태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교회로서 얼마나 충실했는지 오로지 거기에 달려있습니다.” 머레이의 고백이다.

가장 큰 도전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라고 머레이는 말한다. “그게 가장 큰 싸움입니다. 나의 회개와 믿음 말입니다. 계속해서 마음을 바로잡고, 나 자신을 수정하고, 우상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관한 진짜로 눈을 옮기고, 거짓말에서 진실로 관심을 바꾸고,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계시와 나의 생각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이 누구인지 계속 지켜보고, 복음을 내 마음에 쉬지 않고 밀어 넣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특정 지위를 갈망한 적도 교회 규모를 놓고 어느 수준에 도달하려고 발버둥 친 적도 없습니다. 사실, 그렇게 될까봐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우리는 작은 시골 교회에 머물러서 행복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원래 모습 그대로 알기 원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게 나를 통해서만 이뤄질 필요는 없지요. 내가 굳이 그들을 이끌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만둬야 할까요? 아니요. 은퇴할까요? 아니요. 계속 나아갈까요? 그럼요! 내가 놓은 적이 없는 목표는 결승선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저기 결승선을 보이는데 달려가야지요. 옆으로 비켜나지 않고, 속도를 늦추지도 않고, 그리고 걸어가서도 안 됩니다. 능력이 있는 한, 계속 달려가야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그들이 계속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이 도시에는 3만 명이 사는 새로운 지역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복음 중심으로 사역하는 교회가 없어요.”

“우리가 사는 지역은 교회를 간절히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충실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제자를 만들고, 바라건대, 우리를 위해 자신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그 분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계속해서 교회를 개척하고 또 개척하길 바랍니다.”

“내가 오늘도 여기에 있는 건, 지금도 여전히 생명과 호흡이 있다는 건 오로지 하나, 그분의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그건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우선순위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동참하는 게 내가 살아있는 이유가 되길 바랍니다.”

출처: The Accidental Church Pla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