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로스트(LOST) 이야기를 해 보자.
로스트를 언급하는 첫 문장에 이 글을 읽기 시작한 사람들 중 반이 당장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21세기 첫 사분기에 출시된 모든 TV 프로그램 중에서도 로스트는 사람들을 당장에라도 양쪽으로 나눌 위험이 있는 드라마이다. 한 쪽에서는 매우 잘 만들어진 스펙터클이지만 줄거리가 탈선하면서 실망스러운 엔딩으로 추락했고, 그 결과 로스트 전체 시즌을 시청한 모든 시간을 말 그대로 엄청난 낭비로 만들었다고 비난한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기억에 남는 캐릭터 개발과 얽히고설킨 철학적 고뇌와 함께 줄거리 반전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결코 결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놀라울 정도로 수준을 유지하며 성공으로 이어진 진정으로 독특한 시리즈의 탄생이었다는 거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로스트는 올해로 스무 살이 되었다(네, 20살, “나도 이제 늙었네요”라는 밈이 나올 만하다!). 나는 이 시리즈를 세 번 보았다. 첫 번째는 공중파 TV에서 매주 방영될 때, 두 번째는 아들이 십대가 되었을 때, 세 번째는 우리 가족이 모두 코로나에 걸렸을 때이다. 아들은 로스트를 보지 않은 여동생에게 코로나 격리 기간을 보낼 최고의 방법으로 로스트 시즌 1의 시청을 추천했다. (재밌는 일화: 딸과 함께 로스트를 본 직후인 그해 늦가을이었다. 나는 맨해튼에서 신학교 과정을 가르치고 있었다. CVS로 가는 짧은 산책길에서 나는 존 로크 역을 맡은 테리 오퀸을 거리에서 마주쳤고 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드라마를 세 번 본 사람으로서 나는 로스트에 필적할 만한 시리즈가 없다고 확신한다. 이만큼 야심찬 드라마는 없다. 이만큼 대담한 시도는 없다. 이토록 다양한 면에서 시청자를 매료시키는 데 성공하는 드라마는 있을 수 없다.
텔레비전 방송과 스트리밍 사이의 로스트
로스트는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린다. 방송 텔레비전 드라마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치가 어떤 것인지를 대표한다. 마이클 지아키노의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이 시리즈는 영화적이고 장대한 품질을 자랑하며 스트리밍이 막 띄엄띄엄 시작되던 시기에 방영되었다. 또한 저녁에 다 같이 모여서 시청하고 다음날 아침에는 전날 본 내용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던, 사람들이 “프로그램 시간을 기억하고 챙겨보던” 마지막 텔레비전 드라마였다.
로스트는 시청자를 참여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데 앞장섰다. 예를 들어 애플은 에피소드 구매자에게만 제공하는 독점 장면으로 시청자를 유혹했다. 그럼에도 로스트는 다른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오늘날과 비교할 때 엄청난 숫자인 년 간 20개의 에피소드로 첫 시즌을 시작했다. 두 시간짜리 파일럿 에피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훌륭했다. 그리고 첫 번째 시즌은 플래시백을 사용하여 스토리라인을 천천히 펼치면서 캐릭터를 하나하나 개발하는 동시에 수수께끼와 함께 답까지 제공하는데, 그건 사실상 더 많은 질문으로 이어지도록 구성되었다. 첫 시즌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훌륭하다. 미스터리 하나가 해결되면 그건 다른 미스터리의 시작을 의미했다.
전통적인 프로그래밍 제약에 얽매여 있었던 시기에 제작된 로스트는 작가와 프로듀서가 실시간으로 작업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시즌 전체를 한 번에 다 “공개(drop)”하는 스트리밍이 없었기에, 제작자는 수십 개의 인터넷 포럼과 채팅방에서 확산되는 팬 이론과 의견을 고려할 수 있었다. 열광적인 로스트 팬들은 자신의 관점이 드라마 전개에 적용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가장 좋은 예: 팬들이 몇몇 새로운 캐릭터에 대해서 분명한 경멸감을 표했고, 거기에 맞춰서 작가는 계획을 변경했다. 비판받은 캐릭터들은 시즌 후반에 사라졌다. 작가는 팬들의 바람을 근사하게 충족시켰다).
로스트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두 시대를 넘나드는 불안정한 시기에 제작되었다. 영화에나 나올 만한 제작진과 캐스팅을 고정된 주간 TV 일정과 결합하여 새로운 에피소드에 대한 과도한 수요를 창출했고, 제작진은 온라인에서 의견을 밝히는 팬들에게 비정상적으로 반응했다.
스마트 TV 시대의 로스트
시청자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를 명확하게 했다는 점에서도 로스트는 다른 드라마와 달랐다. 작가들은 시청자를 얕잡아 보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드라마가 추구하는 철학적 성향을 알아차리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일부 등장인물의 이름이 유명한 사상가 존 로크, 제러미 벤담, 흄, 루소, 패러데이에서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아채길 바랐다. (심지어 그들은 C. S. 루이스를 암시하는 이름, Charlotte Staples Lewis도 만들었다.)
이 드라마는 종교적 이미지, 고대 신화, 과학 및 정치 이론의 혼합으로 가득하다. 아테네, 예루살렘, 실리콘 밸리의 요소를 모아 감동적이고 비극적인 스토리라인을 구성한 후에 이성과 신앙과 기술이 수렴되는 현장을 보여준다. 로스트는 한마디로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다. 비극으로 하나가 된 그들이었지만, 개별 사항에 따른 의견의 차이로 분열된 그들은 사악한 충동에 저항하는 동시에 삶의 목적을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로스트는 음모론에 대한 문화적 전환을 예고했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로스트는 어디에서 길을 잃었나?
로스트의 후반 시즌은 초창기 수준에 맞는 캐릭터 개발을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도 추구한 수준은 여전히 높았다. (중간 시즌 중 하나의 마지막 에피소드의 경우에―어느 시즌인지는 말하지 않겠다―엔딩 장면이 너무나 예상치 못한 반전이어서 그 핵심 포인트가 나머지 시리즈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임을 깨닫고 당신은 분명히 숨이 멎을 듯 충격을 받을 것이다.)
로스트 작가들이 몇 부분에서 제대로 떡밥을 회수하지 못하고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졌다면, 그것은 부분적으로 당시의 텔레비전 구조 때문이다. 매년 봄에 시작해서 16주 동안 지속된 이 시리즈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지속시키는 데에 점점 더 어려움을 겪었다. 그건 다양한 캐릭터와 이상한 신화로 인해 일반 시청자가 스토리를 따라잡는 데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후반 시즌에 들어서도 훌륭한 장면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로스트 전체를 통틀어서 “The Constant”는 가장 위대한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초기의 성공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건 로스트가 시대를 앞선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시리즈의 후반부에서 작가와 프로듀서는 드라마의 미래가 스트리밍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즉, 다음 에피소드를 보기 위해서 일주일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올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끝이 안 날 것처럼 느끼게 하는 느린 줄거리의 전개 또는 일주일 단위로 시청할 때면 따라잡기 힘들게 만드는 혼란스러운 전개와 전환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 이런 모든 문제가 “몰아보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바로 수정되었다. 그리고 이제 로스트는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다. (만세!) 그리고 방송 일정에 따라 로스트를 볼 때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괴로움의 일부가 사라졌다.
게다가 처음에는 짜증스러웠을 엔딩이 사실상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만큼 나쁜 건 아니다. 특히 로스트의 가장 뛰어난 점이 다름 아니라 훌륭한 캐릭터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좋아했던 이유가 단지 SF 요소, 중요한 철학자에 대한 언급, 삶에 대한 더 깊은 질문과의 씨름, 그리고 섬이 간직한 신화의 더 깊은 신비한 측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캐릭터 때문이었다.
물론 작가들이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만큼 설득력 있게 드라마를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이유 중 하나는 처음부터 이 드라마가 추구한 목적이 워낙 웅장하고 야심적이었기 때문이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수도 없이 하강과 착륙을 반복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애초에 달을 목표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한다. 엔딩에 실망했음에도 로스트를 다시 본 친구들은 처음 방영되었을 때 많은 비판을 받았던 후반 시즌이 그렇게까지 욕먹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로스트는 과연 살아남을까?
로스트가 과연 지속적인 문화적 영향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오늘 같은 스트리밍 시대에 맞춤형 청중이라는 틈새시장을 넘어서 누구나 “꼭 봐야 할” 작품이란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은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조차도 1~2년만 지나면 더 이상 화젯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이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스트리밍 시대가 우리에게 훌륭한 오락거리를 제공한 건 사실이지만, 모든 것은 마냥 덧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작품이 딱 한 시즌 존재하고, 그 다음에는 깨끗하게 사라진다.
또한 “함께 시청하기 모임”이나 “이벤트 TV”라는 문화 현상도 사라졌다. 이제 텔레비전은 공동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매체가 되었다. 한 때에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매개로 모여서 드라마나 쇼의 경이로움을 함께 경험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텔레비전은 각자가 고립된 상태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쇼를 스트리밍해서 보는 매체일 뿐이다.
로스트가 새로운 시대에도 새로운 시청자를 계속 확보할지, 로스트의 마니아가 과연 이 드라마를 차세대까지 보도록 밀어붙일지는 모르겠다. 로스트는 그냥 방송 시대와 스트리밍 시대 사이의 전환을 나타내는 문화적 접점 정도로 사라질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로스트는 죄와 구원에 대해 씨름하는 캐릭터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인간의 삶에 과연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는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그들의 이야기는 과학과 신앙 사이에 갇힌 세상에서 의미와 사랑을 찾으려는 사회의 시도를 반영한다. 이 드라마는 우리 주변 세계의 신비를 파헤쳤고, 비록 불완전하지만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대단원을 가리켰다. 모든 잘못이 바로잡히고, 모든 불의가 그치고, 마침내 목적과 고통을 이해한 바로 그때를 말이다.
로스트가 새로운 시청자를 찾기 바란다. 텔레비전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드라마, 로스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