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낭독자의 자격
예배에서 성경 낭독은 본질적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예배에서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설교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무나 설교를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듯이, 성경 낭독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 낭독자도 설교자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혁교회 예배의 중요한 지침인 ‘대요리문답’ 156번은 “누구나 다 공적으로 회중에게 말씀을 낭독하도록 허락되어 있지 않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목사들의 독특한 책임이어야 하듯이, 말씀을 낭독하는 것 역시도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낭독된 말씀과 선포된 말씀 사이의 동등성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낭독된 말씀과 선포된 말씀 권위의 동등성이 사람의 직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는 인간의 직분이나 행위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 즉, 하나님 말씀의 권위는 인간의 직분이나 행위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가 성경을 낭독할 때나 일반 성도가 낭독할 때나 성경은 그 자체로 동등한 권위를 유지한다. 성경 낭독의 자격이 직분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제임스 드종은 예배에서 성경 낭독자의 자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누가 낭독할 것인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누가 성경을 개혁주의적 예배에서 공적으로 낭독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관점 때문에 오직 목회자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태도가 생겼다. 이것은 실수다. 회당과 많은 기독교 교회에서처럼 안수 받지 않은 사람들도 예배에서 성경을 낭독할 수 있다. 남성, 여성, 젊은이 혹은 심지어 노인이나 유창한 언어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성도들을 위해 성경을 낭독하는 것을 금지하는 어떤 의례적이거나 신학적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배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이 다양한 회원들이 예배에서 낭독자로 설 수 있음을 지지해 준다.” (제임스 드종, 개혁주의 예배, 117-18).
예배에서 공적 성경 낭독의 자격은 단지 직분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말씀의 권위에 대한 존경, 이해, 준비된 마음, 에토스, 성경과 청중과 교감하는 능력 등이다. 먼저 성경 낭독자는 읽고자 하는 본문을 이해해야 한다. 본문의 장르, 사상, 분위기, 역사적 배경, 핵심 사상 등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이해는 본문과 잘 교감하도록 이끌어 준다. 낭독자가 본문과 지적으로 영적으로 충분히 교감하지 않으면 성경에 담긴 의미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낭독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낭독자는 본문과 청중을 섬기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청중을 본문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낭독자는 청중이 말씀의 제단으로 나아가도록 섬기기 위해서는 본문과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 낭독자는 본문과의 교감을 통하여 본문의 진리들을 내면화해야 한다.
성경 낭독자에게 본문의 “사상, 분위기, 어법, 역사적 환경, 낭독자에게 끼치는 영향 등에 대한 분석 자체는 성경 본문을 정당하게 해석하는 일에 모두 대단히 중요하다”(브라이언 채플,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 372). 성경 낭독자의 임무는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일을 수반하기 때문에 청중을 위한 ‘구두 해석자’라고 할 수 있다. 성경 낭독자는 단순히 성경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구두로 성경을 해석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헤롤드 브랙의 언급처럼 “구두로 하는 해석이 자기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되어야 한다”(Harold Brack, Effective Oral Interpretation for Religious Leaders, 22). 성경 낭독자는 본문과 교감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청중과 교감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외적 차원일 뿐만 아니라 내적 차원을 수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화자의 에토스(ethos), 곧 인품이 설득력 있는 웅변을 형성하는데 가장 강력한 동인이라고 가르쳤다(Aristotle, Rhetoric, 1.2). 성경 낭독자의 말씀을 통한 섬김은 그의 삶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 낭독자의 인품과 삶이 자신이 진술하는 성경 말씀과 모순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 낭독자는 성경 본문과 청중을 동시에 섬기는 유능한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성경 낭독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사명 인식과 함께 하나님과 교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성경 낭독자는 구두 해석자이며, 섬기는 자이며, 말씀의 수행자이며, 하나님의 사역자다.
성경 낭독자 훈련
교회 예배나 모임에서 잘 훈련된 성경 낭독자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현대 교회가 성경에 대한 지적인 능력은 갖추고 있지만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며 음성을 듣는 차원에서는 미약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설교자와 성경 공부 인도자와 제자 훈련을 위한 리더의 양육뿐 아니라 성경 낭독자도 양육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교회 안에 성경 낭독자 양육을 위한 소그룹을 운영하면 좋다. 이 소그룹에서는 성경과 소통하는 법, 청중과 소통하는 법 등을 연구할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하게 실행해야 할 것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이다.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는 훈련뿐 아니라 성경의 능력, 즉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양육된 성경 낭독자는 교회 안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성경을 가장 중요한 권위로 믿고 예배를 실행하는 교회라면 성경 낭독자를 양성하는 것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친목을 위한 교제나 단지 설교를 수동적으로 듣도록 하는 데 있기보다는 성도들이 풍성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성경과 소통하도록 하는 데 있다. 교회의 능력은 하나님과 성경과 소통하는 능력에 비례한다. 교회는 하나님과 성경과 깊이 있게 소통할 때 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성경 낭독과 예배 회중
우리는 자칫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영적 교제보다는 성경을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정형화된 틀에 빠질 수 있다. 예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설교자와 성경 낭독자뿐 아니라 예배의 청중도 이러한 틀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예배에서 성경이 낭독될 때 하나님의 음성으로 생명력 있게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목적이 명확해야 할 뿐 아니라 청중의 듣는 능력도 중요하다. 그것은 청중은 단순히 낭독자의 소리를 듣는 관객이 아니라 공동 창작자이기 때문이다.
예배에서 성경이 낭독될 때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서는 안 된다. 성경이 낭독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들어야 한다. 이렇게 듣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뿐 아니라 마음(heart), 감정, 몸, 호기심, 상상력, 의지까지 동원해야 한다. 즉 마음을 열고 보다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통해 본문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바턴 헤일리는 성경을 읽는 목적과 듣는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인식적 차원에서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배우려고 하기보다는 관계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성경에 접근하는 방식은 사랑하는 자에 대한 열망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루스 헤일리 바턴, 영적 성장을 위한 발돋움, 79).
우리는 예배에서 성경이 낭독될 때 방송에서 시나 수필이 낭독될 때 듣는 것과 같이 들어서는 안 된다. 성경이 낭독될 때 정보 수집에 초점을 맞추어 들으려는 자세는 분석적으로 접근하기 쉽다. 이렇게 들으려고 할 때, 우리 자신이 형성해 온 선입견, 취향, 경험 등으로 구성된 인식 필터를 통해 들으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이 낭독될 때 이렇게 듣게 되면, 인격적이고 친밀하며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성경이 낭독될 때 열린 마음과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자세로 접근할 때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사용하시는 도구가 된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 말씀에 대해 지성보다는 마음으로 반응하게 된다. 성경이 낭독될 때 이러한 자세로 성경을 대하는 것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도 모르게 성경을 지식적으로 대하려는 자세를 극복할 수 있다. 성경학자 로버트 멀홀랜드는 우리 문화 속에는 자신의 인식적, 이성적, 분석적 역학을 무시하는 데 따른 위험성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문화나 정상적인 학습 방식에 있어서 지나치게 발달 되어 있기 때문에 균형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전혀 할 필요가 없다. 물론 우리는 마음(mind)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더욱 심화된 내용으로 제시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음(heart)과 뜻(soul: 영혼)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보다 중요하다(Robert Mulholland, Shaped by the Word, 23).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은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지주의적 문화 속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성경도 지적이고 분석적으로 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예배에서 성경이 낭독될 때 인식적이고 분석적인 방식에만 의존하는 것을 탈피해야 한다. 이런 자세는 훈련 없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과 교훈을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렉시오 디비나다. 렉시오 디비나는 성경을 읽을 때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한 인간적 지표에 의존하기보다는 전적으로 자신을 열어 하나님의 주권에 모든 것을 맡기는 자세로 성경을 읽는다. 렉시오 디비나는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를 해석하고 인도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성경을 문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영으로 대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주인공이신 성령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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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낭독도 예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