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파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양궁선수들이 단체전 10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가 양궁을 잘하는 이유가 애국가에도 나온다고 한다. “하나님이 보우(Bow) 하사(下賜).” 하나님이 활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라는 위트이다. 이번 양궁 경기를 보면서 특별히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선수들이 활을 쏘기 전 1분당 심박수(bpm)가 화면에 떠서 해당 선수가 지금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아니면 안정을 취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첨단 기술 덕분이다.
일반인이라면 긴장하고 떨릴 상황에서도 다수의 선수들은 안정적이고 평온한 심박수를 유지했다. 특히 양궁 개인 16강전에서 김우진 선수의 심박수는 78bpm이었고, 상대선수는 120bpm 전후를 오갔다고 한다. 20~39세 성인의 평균 심박수는 분당 60~80회 정도다. 김우진은 경기 후 자신이 긴장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80bpm 이하였다. 3년 전 도쿄올림픽에선 분당 심박수가 170회까지 치솟기도 했던 김제덕 선수는 60회에서 90회 사이로 평온함을 보여줬고 갑자기 벌이 날아들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강심장이 되기 위해 우리 선수들은 상담과 마인드 컨트롤 같은 심리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성경은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한다(빌 4:6-7). 그러나 예수 믿는 성도가 시험이나 대회를 앞두고 평안을 달라고 기도하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지나치게 긴장하고 심장이 고동을 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때도 있다. 피아노를 전공한 딸은 교수들 앞에서 실기 시험을 칠 때 긴장을 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목사인 아빠가 기도도 해주고, 본인도 기도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면 마음이 담담하거나 평온하지 못해 시험을 잘 치루지 못할 때도 있었다. 목사도 다른 교회 가서, 특히 성도가 많이 모인 집회나 담임목사 청빙을 위한 설교를 할 때 긴장하여 심박수가 올라간다.
2012년 흥미로운 연구가 있었다. 미국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815명의 대학생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자신에게 가장 큰 공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중 앞에서 말하는 공포’가 1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도 순위가 높았단다! 연주자를 대상으로 시행된 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약 25퍼센트의 연주자들 무대공포를 경험한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두렵다. 그러고 보면 목사가 참 간이 큰 사람이다. 매주일 많은 분들 앞에서 30분씩 설교를 하니 말이다. (‘담대’는 원래 간[膽]이 크다[大]는 뜻이다.)
긴장하지 않고 혹은 긴장을 최대한 줄이고 침착하고 평온하게 준비한 것을 다 발휘하는 강심장을 가지려면 우리도 양궁선수처럼 심리훈련을 받으면 될까? 할 수만 있다면 훈련을 받는 게 좋겠다. 그러나 일반인이 양궁선수처럼 전문가의 체계적인 심리훈련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 돈도, 시간도 많이 들 것 같다.
마음의 안정과 관련하여 ‘멍 때리기’를 생각해 보자. 멍 때리기 대회는 2014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시작됐는데, 처음에는 3시간 동안, 나중에는 90분 동안 가장 멍한 상태인지 확인한다. 주최 측이 15분마다 참가자의 심박수를 측정하고 현장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한다고 한다. 심박수 그래프가 안정 상태를 유지하거나 점차 하향 곡선을 그리면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2022년 멍 때리기 대회에서 1등한 사람은 시작할 때 140에 가까웠다가 점점 떨어지면서 94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2023년 대회에서 1등한 배우 정성인은 61까지 떨어졌다. 이것과 비교해 보면 김우진 선수가 양궁 대회 현장에서 심박수 70대를 유지한 것은 정말 대단하다. 과거에 멍 때리면 집중하지 않는다고 혼이 났는데, 이제 멍 때리기를 잘하는 사람을 무념무상의 고수라고 칭찬한다.
미국 CNN 방송은 한국인들이 지나친 경쟁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멍 때리기 대회를 여는 것이라고 꼬집어 보도했는데,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멍 때리기는 뇌를 쉬게 하는 일이다. 계속 뇌를 사용하면 오히려 생각은 뒤죽박죽된다고 한다. 그래서 일하고 나서 쉬는 게 아니라, 먼저 안식을 취하고 나서 일해야 한다. 주님 안에서 안식하는 주일이 일주일에 첫 번째 요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흔히 MZ세대라고 부르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템플 스테이’를 좋아한다고 하는 데, 이 역시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한 삶에서 명상과 쉼을 통해 마음이 치유되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마음의 안정과 평온을 위해 무엇을 제공할 수 있나? 말씀묵상과 기도다. 성도가 세상과 스스로 차단하고 골방에 들어가 고요히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경건의 훈련은 멍 때리기가 주는 심신안정의 효과를 넘어서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맛보는 신앙 훈련이다. ‘템플 스테이’에서 ‘템플’은 성경에서는 성전을 가리키는 용어다. 기도의 골방이든 만민이 기도하는 집 성전(템플)이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지키실 것이라고 바울은 말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다. ‘모든 지각’으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사람이 이성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뜻하는 말인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평강은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평강이다. 일시적인 기분이 아니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평강이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평강이다. 그 평강이 마치 군대가 성을 지키듯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준다는 뜻이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고 무슨 일을 만나도 기도하자.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옷을 찢긴 채로 많은 매를 맞고, 발에 착고가 채워진 채로 깊은 옥에 갇혔다. 상처는 밤이 되면 더욱 아픈 법이다. 쓰라린 상처의 고통, 비좁은 감옥 안의 열기로 인해 바울과 실라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을 터인데, 그들은 칠흑 같이 캄캄한 감옥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평강이 지키고 계셨음이 분명하다.
감리교 창시자 웨슬리가 자신의 일기장에 “나의 일생 중 가장 영광스런 날”이라고 기록한 날이 있다. 어떤 날일까? 목사가 된 날, 가장 많은 성도가 모인 집회의 날? 아니다. 영국에서 목회와 교수 생활을 한 웨슬리는 미국에서 3년간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실패였다. 낙심하여 영국으로 돌아오는데, 항해 중에 엄청난 풍랑이 불어왔다.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배 안에서 찬송 소리가 들려와 다가가 보니 그들은 모라비아 신도들이었다. 그들은 그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죽음의 공포가 없었다.
폭풍이 지난 후 웨슬리는 한 모라비아교인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폭풍이 두렵지 않습니까?” 모라비아 신도들이 대답한다.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여자와 아이 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웨슬리는 모라비아 평신도들의 그 의연함과 믿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풍랑을 두려워하며 허둥대는 자신이 목회자임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 체험은 웨슬리로 하여금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 사건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찬송가 가사처럼 “내 영혼 평안해”를 부를 수 있는 지극한 평온함은 어떤 순간에도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절대 신뢰요, 죽음도 어찌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신앙은 심장으로 표현하는 법이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는 오늘도 어김없이 주실 은혜를 사모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하지만(하나님은 예배당에 앉아 있는 머리 숫자를 세지 않으시고 성도의 심장 박동수를 세신다고 한다), 펄쩍 뛰어야 할 다급한 상황에서도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평온함이 있기를 바란다. 그 반대가 되어선 안 될 것이다. 다윗의 고백처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는 것 같은 고요하고 평온함(시 131:2)이 있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