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 동안 교회 출석을 그만두거나 또는 기독교 신앙에서 떠나는 사람들과 그 이유에 대한 많은 대화가 있었다.
거기서 주로 제기되는 세 가지 이유를 한 번 살펴보자.
세 가지 거대 이론
신앙 해체라는 게 결국에는 불법적인 성행위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기독교를 떠나는 사람들은 단지 간통을 저지르거나 이혼을 고려하거나 또는 동성애 관계 내지 혼전 성관계를 갖고 싶어서 또는 포르노를 보면서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욕망 내지 개인적 쾌락에 의해 정체성이 정의되는 세상에서 기독교 성 윤리를 고수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억압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보니 성생활과 결혼에 대한 수정주의(Revisionist) 관점은 그 압력을 완화한다. 하지만 수정주의를 받아들이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는 벽이 제거된 것처럼 기독교라는 집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 결과 모든 곳에서 정통 기독교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진짜 이유가 정욕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해체의 이유를 다름 아니라 교회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는 학대 스캔들과 최근 수십 년 동안 교회가 그 문제를 처리한 잘못된 방식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심각한 악을 최대한 축소하는 교회를 보면서 사람들은 교회의 도덕적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마저도 재검토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가장 강한 독성을 끼친 주체는 교회였던 셈이다. 역사 전반에 걸쳐서 여자를 대한 교회의 방식, 대규모 불의에 교회가 공모한 방식, 또는 위계 구조를 차지하는 목사와 지도자에게 내재된 권위주의를 한번 생각해 보라. 나쁜 지도자들이 저지른 끔찍한 불의 때문에 피해를 받은 본인이 또는 그 주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해서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신앙 해체가 백인 복음주의의 우익 정치 수용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교회가 공화당에 너무나도 깊게 얽매여 있고, 정치적 플랫폼과 신앙의 혼합으로 성도들을 혼란에 빠트렸으며,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노골적인 정치적 옹호를 일삼기도 한다. 우리는 기독교를 정치에서 분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위선과 타협으로 인해 더 많은 교인들을 잃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는 진짜 이유는 교회를 정치권력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우익 세력 때문이다!
세 가지 이론을 복잡하게 만들면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거대 이론의 변형까지 살펴보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한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바로 자신감이다. 그들에게는 교회가 쇠퇴하고 신앙이 해체되는 이유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래서 그것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거나 아니면 스스로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말한 설명 중 어느 것도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신앙에서 떠나는 이유에 대한 제대로 된 이론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어느 정도까지는 진실이 들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훨씬 더 복잡하다. 정말 복잡하다.
예를 들어, 더 이상 기독교의 성 윤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을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의 결정은 사실상 기독교 가르침에 대한 더 광범위한 환멸이나 절망의 계절을 지나고 내려진 경우일 때가 더 많다. 그러니까 그게 원인이 아니라는 거다. 성적인 죄는 신앙을 잃은 뒤에 따라온 결과이지 성문제가 애초에 신앙 해체의 원동력이 아니었다.
또는 “학대 스캔들로 인한 해체”라는 거대 이론을 한번 들어보자. 작년에 나는 교회 이탈 연구를 인용해서 교회에서 발생하는 스캔들에 대한 잘못된 처리가 교회 이탈의 가장 두드러진 요인이 아니며, 다른 이유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을 악용해서 자신의 해체를 정당화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했다. 내 글에 수많은 온라인 독자들이 분노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교회 지도자들이 저지른 피해를 축소하려는 게 아니었다. 단지 피해를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마치 그게 자기가 해체를 결정한 원인이라는 식으로 떠벌리는 행태를 지적하고자 했을 뿐이다.
정치 활동에 대한 설문 조사도 살펴보자. 대학 시절 교회를 떠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Lifeway Research의 연구에 따르면, 교회의 정치적 견해 때문에 떠났다는 대답은 예상보다 순위가 낮았다. 오히려 상위를 차지한 건 평범한 이유였다(대인관계 또는 이사 등). 이 점을 지적한다고 내가 지금 기독교를 우익 정치와 섞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건 전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변화로 인해 기독교의 핵심 교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 생기는 현실을 배제하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나는 신앙 해체라는 이 거대 이론이 훨씬 더 복잡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보이는 정치적 우파 성향을 비판한다. 하지만 쇠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은 종종 우익 교회보다 더 정치적 성향이 강한 좌파나 진보적 사상과 관련된 교회가 더 큰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이웃을 함부로 무시하지 말라
나는 위에서 나열한 각각의 이유를 증명하는 생활 속 사례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각각의 이론에서 어느 정도의 진실이 들어있다. 누구라도 자신이 선호하는 서사와 가장 잘 맞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신앙을 해체했거나 교회를 떠난 이웃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안 하버(Ian Harber)는 앞으로 나올 책에서 해체의 원인보다 촉매에 대해서 말하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또한 지적인 질문에 의존하기보다는 해체에 담긴 감정적이고 경험적인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다. 단일 원인 설명이나 거대 이론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웃을 주의 깊게 살피고 돌보는 능력을 방해한다. 거대 이론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들의 이야기를 개조하고 그들의 개별적인 경험을 미리 설계된 범주에 밀어 넣도록 만들 것이다. 더 나쁜 것은, 위에서 말한 그 어떤 이론에도 맞지 않는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에, 그들이 느끼는 고통에 아예 귀를 기울일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자라면서 열심히 성경을 읽고, 또 방탕한 자녀를 위해 수년간 간절히 기도했던 한 중년 여성이 있다. 모든 기도가 행복한 결말을 맞는 건 아니다. 그녀는 십 대 아들을 자살로 잃었다. 그 다음 해에 말기 암 진단을 받은 남편이 몇 달 만에 사망했다. 6개월이 지나고 그녀가 다니던 교회가 성적 학대의 전력이 있는 자원봉사자와 관련된 리더십 실패뿐 아니라 정치적 문제의 표현 수위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서 인해 쪼개졌다.
삼 년 사이에 이 여성의 세상은 말 그대로 그녀가 믿었던 모든 것을 의심할 정도로 크게 흔들렸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기도의 힘을 믿지 않는다. 교인들이 주는 것이라고는 진부한 말뿐인데, 굳이 교회에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목사의 도덕적 권위도 타격을 입었다. 그녀는 하나님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단지 그녀를 괴롭히는 존재라고 느낀다. 온라인에서 그녀는 자신이 당한 교회 학대 사건을 과장해서 표현함으로 슬픔을 달랜다. 그리고 그 와중에 비슷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정치적 견해까지도 바뀌었다. 몇 년 후, 그녀는 불신자를 만나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의 관점에 따라서 또는 위에서 제시한 세 가지 거대 이론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게 무엇인가에 따라서, 당신은 이 여성의 이야기를 그녀가 떠난 진짜 이유로 축소할 수 있다. 불신자 남자와 동거하는 사실에서, 그녀는 분명히 섹스에 대한 기독교적 제한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녀는 불의에 대한 교회의 공모로 인해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녀의 교회는 우익 정치와 야합했다!
이런 식으로 비약하여 내리는 결론은 이 여성에게 낙담스런 결과가 될 것이다. 그 중 어느 것도 그녀가 느낀 엄청난 상실,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살려는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감정이 초래한 실제적이고 강렬한 슬픔과 고통의 지속성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쁜 것은, 거대 이론으로 성급히 돌진하는 순간 그녀는 이전보다 더 나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지금 그녀가 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말은 회.개.야! 왜냐하면 우리는 그녀가 그저 죄를 짓고 싶어서 떠났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썩어빠진 교회를 떠난 게 차라리 잘된 일이야! 마침내 그녀는 교회의 정치적 견해가 모두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아, 교회에서 활개 치던 우익들, 끔찍하지 않아?! 이런 반응 중 어느 것도 그녀가 느끼는 고통과 갈등의 근원에 다다르지 못한다. 그녀의 지속적인 고통과 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져야 하는 복음의 위로와 도전에 미치지 못한다. 이 모든 진단은 도리어 그녀로 하여금 지속적인 도움의 사각지대에 머물게 할 뿐이다.
거대 이론을 경계하라
교회 이탈과 신앙 해체를 다루면서 실제 사람들의 진짜 경험을 일반화시키는 거대 이론에만 의지하는 경우에 우리는 결코 올바른 해결책을 처방할 수 없다. 진짜 죄와 실제 고통을 적절히 다루지 못할 것이다. 단일 원인 설명은 우리의 귀를 닫게 하고 마음을 굳게 만든다. 거대 이론은 단지 나의 도덕적 정의, 의로운 대의, 또는 의로운 입장을 더 강화시킬 뿐이다. 하지만 신앙의 위기 속에서 의심과 환멸, 죄와 고통의 계절을 지나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다.
요즘은 모두가 당신도 저 단순하기 그지없는 거대 이론을 받아들이기 원한다. 거기에 빠지지 말라.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