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는 공화정을 그리워하던 정적들에게 주전 44년에 암살을 당합니다. 능구렁이 안티파트로스도 같은 해에 팔레스타인에서 독살 당했지요. 로마나 팔레스타인이나 둘 다 지도자가 죽고 나자 혼란에 빠졌는데, 이 혼란을 수습한 사람이 로마에서는 옥타비아누스이고, 팔레스타인에서는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헤롯이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와 함께 제2차 삼두정치를 하다가 권력에 눈먼 안토니우스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랑 정략결혼을 하고 로마를 집어삼키려다가 옥타비아누스와 악티움에서 맞붙게 되지요. 이게 그 유명한 4대 해전 중 두 번째 해전인 악티움 해전입니다. 여기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실권을 잡게 되고, 원로원에서 존귀한 자라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얻어 황제가 되었습니다. 헤롯은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를 공략할 때 그를 도와준 일이 있어서, 옥타비아누스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되었을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왕으로 임명된 것입니다. 바로 이 아우구스투스가 호적 칙령을 내려 예수님의 부모가 베들레헴에 내려오게 되었지요. 그 덕분에 예수님이 베들레헴 구유에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헤롯 가문은 이름들이 비슷비슷해서 구별하기 위해 처음 헤롯을 ‘대 헤롯’이라고 부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헤롯 대왕으로 부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2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죽인 미치광이 악한 왕으로 회자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신약성경 이외에는 헤롯의 학살 기록이 없어서, 그저 그리스도인들의 모함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정통성을 가진 왕조도 아닌 이두메 사람 헤롯을 헤롯 대왕이라고까지 칭송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헤롯을 대왕으로 칭송하는 이유는 헤롯 치세에 다신 국가였던 로마의 압제를 받으면서도 최고의 종교 자치권을 인정받은 것 때문에 헤롯을 칭송하는 것입니다. 헤롯은 성전을 지어주면서까지 유대교를 장려했지요. 헤롯이 이런 정책을 펼 수 있었던 데에는 카이사르 이래로 로마가 팍스 로마나를 지향한 덕도 좀 있고요. 헤롯이 아우구스투스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탓도 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요. 로마의 다신론과 유대교의 일신론을 연구해 보면 그 둘 사이에 중대한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로마의 다신론은 신들이 인간들의 도덕적 측면에 거의 개입을 안 합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그리스 신들이 별로 도덕적이지 못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고, 간음하고 하는 형태로 신들도 인간들처럼 개판이었거든요. 그래서 다신론에서 신의 역할은 인간들의 질서를 잡아주기보다는 자기들의 특정 영역에서 전문화된 힘을 통해 인간들을 돕는 수호신 역할만 했습니다. 이런 다신론 체제에서는 인간들의 질서를 위해 법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법이 발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신론에서는 신이 인간의 도덕적 행위에 심판과 축복이라는 개념으로 깊이 개입되어 있었기에, 인간들의 질서를 위해 따로 법을 제정할 필요가 없이, 그저 율법만 있으면 됐습니다. 당연히 법을 제정해야 유지할 수 있는 다신론 국가들은 법 집행을 위한 사법기관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로마로서는 모든 속주에게 법을 지키라고 사법기관을 파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고, 이스라엘은 워낙 종교성이 강한 공동체이니 그들의 종교법을 그대로 인정하고, 로마는 헤롯만 관리하면 되기에 이스라엘의 종교 자치권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정치적인 배경에서 로마의 다른 속주에 속해 있는 헬라인들은 유대교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미 구약성경의 헬라어 역본인 칠십인역도 있고 해서, 유대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월절에 성전을 찾아온 헬라인들 곧 경건한 이방인들은 바벨론이 흩어 놓은 유대인들 곧 디아스포라 된 유대인들과 교류했고, 더하여 유대인 특유의 회당 문화, 그리고 알렉산더의 헬라 문화 전파와 헬라어로 만든 구약 성경, 로마의 유대교 자치권 인정 등이 빚어낸 결과였습니다.
여담으로 헬라인들이 이해하는 메시야 상에 대해서 추론을 해 보면요,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는 다윗 왕조의 부활로 대변되는 왕 같은 메시아 개념과 이사야에서 예언된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 상이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알렉산더와, 한니발, 스키피오, 시저, 아우구스투스 등을 겪으면서 다윗 왕조의 왕 같은 메시아 개념을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런 왕 같은 메시아가 등장한다면 로마랑 한판 붙어야 하는데, 이미 로마의 압도적인 힘을 경험한 이상, 이런 왕 같은 메시아의 등장은 공포가 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헤롯이 동방박사들로부터 메시아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였던(마 2:3)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을 계기로 종교인들이 모였을 때,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요 11:50)고 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처형시킬 때도 종교적인 이유보다 정치적인 이유로 그가 왕이 되려 했다는 죄목으로 죽였고, 십자가에 쓰인 죄목도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