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가 겪어내는 아픔으로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도, 고국도 몸살을 앓는 중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임을 안다면 우리의 말과 행하는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영혼에 파고들지 못했고 사람들이 바라보고 따르고 싶은 가치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애통하고 싶은 시간이다. 책 제목이 주는 메시지처럼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간인 것 같다. 

개혁이 필요한 듯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듯한 이 시간에 기독교가 시작된 그 시점의 시간을 살아내었던 성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종교 개혁이 돌아가려고 했던 지점도 그 지점이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셨던 구원에 들어있는 하늘의 가치들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구속받은 사람들의 영광이 온 세상에 보여져야 하는 것이다. 

수도 운동은 성경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의 생애와 사상을 교회사적으로 살펴보면서 접하게 되는 수도사들의 삶은 가히 놀라움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요한이 살아내었던 수도 운동이 담지 못했던 참된 그리스도인 됨을 정립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 우리가 걸어야 할 진정한 ‘좁은 문’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세상과 분리되어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에 심취되어 심지어 그것을 변증하기도 했던 사람으로서 그것이 자아내고 있는 영적 엘리트주의로서의 변질은 꽹과리가 되어 울려 주었던 것이다. 

수도사들은 도시와 분리가 되면 될수록, 사람들이 누리는 것들과 분리가 되면 될수록, 고달픈 삶을 살면 살아갈수록 더욱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스스로 인식하였다. 고기는 물론 채소조차 거부하고 심지어 바닥에서 자는 것을 사치로 여겨 기둥에서 잠을 자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절제 하였던 것이다. 이런 삶에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것에서 오는 결론이기도 했다. 그것은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서 나타나고 있다.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의 말씀은 그대로 그들의 삶에 나타내어야 했으며 그리하며 그들에게 자발적 가난은 완전한 선으로 간주되었다. 인간의 모든 욕망은 절제되어야 했고 여러 고행을 자초하여 추위, 헐벗기, 악취, 태양에 그을르기 등을 견디며 살았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의 말씀도 어떤 수도사는 하루에 700번 까지 기도하는 삶으로 나타내었던 정도였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거주함으로  

요한이 수도사 삶의 약함과 한계를 깨달은 것은 참으로 큰 은혜였다. 영적 생활에 관심을 두느라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칠 마음이 없는 것을 보았던 그의 눈은 귀하다. 주님과 깊은 교제를 갈망하느라 치열한 섬김을 거부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심이 감사하다. 유혹을 피하기 위해 여성들을 전혀 만나지 않는다면 그들의 고통조차 외면해야 한다는 것은 엄연한 진리이며 현실이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길은 이웃사랑에 있었다. 관조적 삶이 아니라 이웃의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었던 것이다. 요한의 이러한 발견들은 그가 성경을 설교하기 위해 성경 연구에 힘썼으며 문헌들을 읽었으며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기독교의 참된 표지를 찾기 위한 길에 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사랑, 그리고 예배 

도시와 사막을 통합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펼쳐졌어야 했던 것이다. 참된 신앙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 내려와야 했던 것이다. 난해하고 현학적인 신학적 요구가 아니라 하루 벌어서 하루 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목양적 돌봄을 주고 그들이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치며 나아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사역은 수도 운동의 정신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이웃 사랑의 대표적으로 덕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됨의 과정은 예배를 통해 이루어졌다. 초대 교회의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예배이다. 예배에는 삼위 하나님이 계시고 신학이 존재했고 기독교 적인 삶이 훈련되었다. 삼위 하나님을 경험하고 성찬에서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은 얼마나 우리가 바라고 또 바라는 예배의 모습이란 말인가. 개념과 관념들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것은 곧 사랑의 실천이라는 기독교적 행함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임에 그리고 우리의 흩어짐에 이제 그리스도를 담아내어야 

초대교회의 예배에는 가난한 자와 부요한자, 여성과 남성, 신분이 높은 자와 낮은 자 심지어 이교도들도 와서 함께 먹고 마시고 말씀을 배우는 구원의 위대한 여정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것은 이웃사랑으로 흘러가 사회를 변혁시키기까지 했다. 로마 사회는 아무도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았지만 기독교인들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았다. 초대 교회들이 행했던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와 사랑 그리고 겸손이 가득했던 일상의 모범을 이제 우리가 우리 삶에 녹여내어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안다는 것은 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의 참다운 의미가 교회 된 우리 모두에게 드러나기를 이 한 권의 소중한 책과 함께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