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 1학년 때 기독교 관련 교양 강의를 들으며 C.S. 루이스를 처음 접했다. 당시 강좌의 필독서는 <순전한 기독교>였는데, 한손에 다 들어올 만한 작은 크기의 가벼운 책인데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읽어본 기독교 변증서적 중 단연 최고였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됐던 내게 ‘기독교 변증’이라는 세계는 광활하고 신비로웠다. 이토록 심오한 개념을 설득력 있는 문체로 조곤조곤 풀어가는 그의 글에 압도됐다.

 

기독교 서적을 몇 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낯익은 번역자의 이름이 있다. <C.S. 루이스의 인생 책방> 저자인 홍종락 작가다. 지난번 <영적 가면을 벗어라> 리뷰에서 다룬 책의 역자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그의 이름을 봐왔지만, 그가 C. S. 루이스 ‘덕후’였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C.S. 루이스의 저작을 고작해야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영광의 무게> 정도 더 본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팀 켈러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C.S. 루이스를 영혼의 스승으로 삼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팀 켈러 목사님의 글에 C.S. 루이스가 하도 많이 인용돼서 그의 글을 꽤 많이 봤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C.S. 루이스의 수많은 글을 번역한 저자이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글이 “캐낼 것이 가득한 금광”이라고 극찬한다. 다른 시대를 살며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누군가가 그의 인생에 이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는 그에 관한 책을 쓰기로 작정한다.

 

이 책은 C.S. 루이스의 인생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였던 관계에 대한 통찰에 대해 다루고 그가 저술한 주요 저서 8권을 다룬 뒤, 그의 저작을 활용해 독서 모임을 할 수 있도록 지침을 제공하며 마무리된다.

 

1. 관계에 대하여

 

<반지의 제왕> 작가로 유명한 J.R.R. 톨킨이 C.S. 루이스의 절친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날의 톨킨과 루이스를 만든 것은 문학과 신앙을 함께 이야기하며 우정을 길어 나갔던 그들의 관계 그 자체였다. 그 모임에는 작가이자 사상가인 찰스 윌리엄스라는 친구도 있었는데, 그의 죽음은 루이스에게 큰 상실을 안겨줬다. 뿐만 아니라 늦은 나이에 결혼한 루이스는 아내 조이가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을 목도하기도 했다. 중요한 사람들을 상실한 슬픔은 <헤아려 본 슬픔> 등의 저작으로 승화되어 사랑과 우정, 고통, 행복에 대한 성찰의 열매를 낳았다. 이 장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일상에서 한 번쯤은 던져봤을 질문들, 예컨대 왜 나는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의 인정에 더 목매는가,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실된 기도란 무엇인가, 인간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루이스의 글과 저자 자신의 경험을 버무려 답한다.

 

C.S. 루이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읽으면 자칫 지루할 수도 있을 법한 내용이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스의 사상에 대한 저자의 깊은 관심과 이해가 독자의 관심을 계속 밀고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만, 루이스의 아내에 대한 다방면의 오해를 해소해 나가는 대목에서는 루이스에 지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칫 필요 이상의 정보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작가 본인의 아버지 예화를 통해 하나님의 인정은 사람을 통해서도 온다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루이스의 지혜를 빌려 마음의 우선순위를 잡고 가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다. 이런 서술 방법은 추상적인 주제를 단순히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식으로 붕 뜬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빠질 수 있는 딜레마를 작가 본인의 이야기로 시작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잡아내고 보편적으로 도출 가능한 원리를 조심스레 제안하는 방식이라 친절하게 느껴진다.   

 

2. 책에 대하여

 

이 책의 서문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루이스는 어린 시절 기독교 신앙을 가졌으나 무신론자의 시절을 거치고 다시 기독교로 회귀한 이력이 있다. 또 그는 영문학과 철학에 능통했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비기독교인에게 매력적으로 기독교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언어와 도구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저서들은 단순한 문학도, 기독교 서적도 아닌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중세 판타지에 깊이 몰두했던 그의 관심 역시 <나니아 연대기> 같은 작품을 낳았다.

 

루이스는 천국, 지옥, 고통, 사랑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상징이 담긴 이야기로 해석해 낸다. 이를테면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지옥은 불구덩이가 아닌, “생각만 하면 뭐든지 만들어지는 곳, …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의지를 극단적으로 관철시키려 하는 탓에 다른 이들과 함께할 수 없어서 시간이 갈수록 한없이 고립되는 곳”으로 그려진다. 그는 이런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버스를 만들어 서로의 차이를 밀도와 크기라는 시각적 이미지와 인기(지명도)라는 척도로 비교한다. 이 땅의 우리 삶에서는 질투, 증오 등의 감정들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고 하나님과 관련된 것은 흐릿한 기체같이 여겨진다. 그러나 루이스가 만든 세계에서 지옥에서 자신의 것만을 욕망하는 사람들은 마치 유령 같은 실체 없는 존재로 그려지고(”나비가 지옥을 삼켜 버린다 해도 나비는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천국의 주민은 견고하고 크게 그려진다. 또한, 이 땅에서 평범하다 못해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산 어떤 여인은 천국에서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루이스의 다른 저서 <기적>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모든 사실성의 원천”이므로 그분에게 가까이 갈수록 더욱 또렷한 존재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고 멋지게 덧붙인다.

 

책 한 권을 소개했을 뿐인데 막연하게 짐작해 온 천국과 지옥, 그리고 이 땅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마구 생겨난다. 루이스의 원작을 읽어보고 싶어 진다. 오늘 이 땅에서의 선택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지는 의미를 질문하게 하며, 기도할 수 있게 한다. 루이스의 거룩한 상상력과 홍종락 작가의 명철한 가이드가 한데 어우러져 깊이 있는 묵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외에도 <이야기에 관하여>를 통해서는 루이스의 문학적 취향이 짙은 에세이로 우정과 취향의 진실성에 대해 다루고, SF 소설 <그 가공할 힘>으로는 모든 집단에 존재하는 ‘내부패거리’의 힘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건전하고 선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리스도의 은총을 구하며 옳은 선택을 해나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다룬다. 이 외에도 기적, 고통 등의 주제를 다룬 책들이 소개된다.

 

중세 우주관을 다룬 <폐기된 이미지>로는 각 시대가 발견한 진리와 실수를 발견하고,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홍종락 작가는 이 저서를 루이스의 인문학적 성찰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하며, “그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보다는 더 폭넓게 열려 있으며, 자기반성적으로 되돌아볼 줄 알고,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작가의 이 말은 결국 우리가 이 시대에 C.S. 루이스의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읽힌다. 설교도 중요하고 좋지만, 우리 사회에는 특히 이런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단순히 고전이고 기독교 필독서여서가 아니라 치우치고 외골수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루이스가 끼워주는 안경을 끼고 우리의 상상력을 힘껏 발휘하면서 거룩하고 참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루이스의 글을 읽어야 한다는 설득으로 다가온다.   

 

3. 루이스 저작을 활용한 독서 모임 가이드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인 독서 모임 가이드는 정치적, 문화적 견해가 달라도 진지한 대화를 나눠볼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루이스의 책 9권을 간략히 소개하고, 함께 나눠볼 질문을 던진다. 책을 읽지 않았어도 흥미롭게 대화해 봄직한 주제가 많이 보인다. 물론 책을 함께 읽고 나누는 대화라면 더욱 알찰 것이다. 책에 관심이 생긴다면 가장 뒷부분에 주요 저서 줄거리 요약까지 되어 있으니, 간략히 내용을 알아보고 싶은 독자라면 활용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그중 몇 가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질문을 소개해본다. 루이스의 글로 시작하지만 결국 일상에서의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한다. 

 

<순전한 기독교> : “이 세상을 위해 가장 많이 일한 사람들은 다음 세상을 가장 많이 생각한 이들”이라는 루이스의 말에 동의하시나요? 정말 그런 것 같나요? 그런 이들과 다음 세상을 생각한다며 현실을 도피해 버린 이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시편 사색> : “천국이 하나님을 끊임없이 찬양하는 곳이라는 말을 들으면 한숨이 나오나요, 가슴이 벅차오르나요? 찬양에 대한 루이스의 설명과 존 던의 “우리는 악기 조율 중”이라는 비유가 이 부분에서 도움이 되나요?

 

<네 가지 사랑> : “뭐, 너도?”로 시작되는 우정은 덕의 학교일 수도 있지만 악덕의 학교도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악한 자는 더 악하게, 선한 이는 더 선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공감이 되는지요? 이런 부분에서 경험이 있거나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책의 서두에서 홍종락 작가는 이 책이 ‘우정의 협력’이 낳은 결과라고 밝히며, 책을 집필하기까지 도움을 받은 여러 인물을 소개한다. 우정의 사람이었던 루이스를 소개하는 이 책에 걸맞는다고도 말한다. 루이스를 향한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이 그가 쓴 책을 번역하게 했고, 그의 책에 관한 글을 쓰게 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우정을 키워 나가게 한 삶의 여정이 하나의 멋진 모험처럼 느껴졌다. <C.S. 루이스의 인생 책방>은 루이스를 소개하고 드러내고 싶었던 작가의 열망이 루이스가 자신의 삶에 미친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서 무언가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흥미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C.S. 루이스의 글을 아직 많이 읽어보지 않았다면 이 책으로 마치 나니아의 옷장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가 만들어 낸 세계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