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미지는 극단적인 명암 대비를 활용한 디지털 아트 또는 콘셉추얼 사진입니다.
어두운 공간 중앙에 좁고 긴 직사각형 형태의 밝은 빛줄기가 수직으로 열려 있으며, 그 앞에 작은 인물 실루엣 하나가 서 있습니다.
인물은 빛을 향해 걸어가는 듯 보이며, 강한 역광으로 인해 그림자가 길게 뒤로 드리워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공간은 깊고 넓어 보이지만 구체적인 배경은 없으며, 추상적인 구성을 통해 극적인 분위기와 상징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목회의 긴장(tension)은 신학적·목회적 균형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긴장입니다. 그 긴장은 11년 전 교회개척 이후에 끊임없이 다양한 옷을 입고 찾아왔습니다. 인생과 교회의 계절에 맞춰 입을 수밖에 없었던 목사의 긴장들을 런웨이에 하나씩 올리는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와 이제 막 교회를 시작한 목회자들이 마주할 긴장과 고민을 염두에 두고 글을 씁니다. _글쓴이 박용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동시에 타락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설교자의 메시지 안에서 다양한 긴장으로 나타납니다. 이 긴장은 설교자의 정체성과 태도, 설교의 내용과 전달 방식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존엄에만 집중하거나, 인간의 타락이라는 죄성에만 반응하는 식으로 한쪽에 치우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직 복음만이 인간을 미화하지도, 함부로 정죄하지도 않으며, 그 긴장 안에서 사랑과 진리를 함께 전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이 글에서는 설교 안에 드러나는 ‘형상과 타락의 긴장’ 중 특히 ‘설득과 선포’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형상과 타락'으로 보는 설득과 선포
설득(persuasion)은 회중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신뢰에서 출발합니다. 회중 안에 있는 생각과 감정, 갈망을 존중하며 진리를 차분히 풀어내고, 결단을 돕게 만듭니다. 설득하는 설교자의 언어는 존중과 공감, 위로와 격려가 있습니다. 회중은 설교자가 자신을 기대하고 수용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자신들과 함께 동행하고 있고, 한 형제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설교는 설득에 머물 수 없습니다. 선포(proclamation)는 회중이 타락한 죄인으로서, 진리를 알고도 외면하며,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존재라는 영적 실존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단지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말씀으로 선포함으로 경고하고, 분별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자로 서야 합니다. 선포는 회중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그 말씀에 반응하도록 부릅니다. 회중은 설교자가 자신을 경계해 주고, 훈련하는 것을 느낍니다. 설교자는 파수꾼과 대언자(prophet)입니다.
성경과 설교에 나타나는 설득과 선포
성경에서 설교와 선포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로 나타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선언적 계시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향한 말씀 곧 ‘설득’이기도 합니다. 곧 지성과 감정, 의지를 가진 인간의 내면을 향해 다가가는 책인 것입니다. 설득과 선포의 절정은 육체를 입으신 성자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린 것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들은 그 십자가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전인격으로 납득됩니다(롬 5:8). 그래서 설교는 회중의 이해와 반응을 이끌어내는 설득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설교는 설득하는 선포인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호소함으로 선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설득과 선포는 모순 관계가 아니라, 성경 자체가 포함하고 있는 말씀 전달의 두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좌충우돌의 여정
이러한 긴장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 설교자의 여정 속에서 경험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음은 그 여정의 일부입니다. 제가 성장한 교회에서는 설득과 선포를 마치 모순적인 관계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설교자와 회중 모두 선포를 강조하는 것을 더 신본적인 태도로 여기고, 설득에 힘쓰는 것은 인본적인 방식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복음을 회중의 삶 속으로 가져가기 위한 논리, 공감, 질문, 이야기는 대부분 설교자 개인의 역량과 선택에 맡겨졌습니다. 회중이 이해하건 이해하지 못하건, 하나님의 진리와 뜻이 담대히 선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저도 모든 설교자처럼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할 때, 성경 본문을 깊이 주해하는 데 많은 시간과 분량을 들였습니다. 설교를 통해 회중이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히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성경을 펼쳐 읽게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본문의 장르와 구조, 논리적 흐름까지 반영하며 설교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일찍부터 그리스도 중심 설교의 중요성을 배웠기에, 본문의 구체적 이야기와 성경 전체의 구속사적 흐름을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성경 본문이 가진 다채로운 색감과 강력한 생명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설교자로서 이것은 참으로 복이요 특권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두 가지 깊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저희 교회에 정착한 분들은 대부분 설교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가진 기존 신자들이었습니다. 저는 회심이 일어나는 선교적 교회를 꿈꾸며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장년 세례자가 나오지 않았고, 공동체를 통해 비그리스도인이 초대되지 않는 현실은 저에게 깊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설교 사역이 삶의 실천과 복음 전도로 이어지지 않고, 지식만 쌓이는 느낌이 강해졌습니다. 이처럼 고민이 깊어지던 때에, 저는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접하게 되었고, 그가 전하는 복음의 특징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차이점은 분명했습니다. 그가 전하는 복음은 단순히 유익한 메시지가 아니라,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복음이었습니다. 인간 중심의 실용주의가 아니라, 우주와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실행되는 하나님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는 더욱 다양한 사람을 품고, 그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저는 설득적인 선포의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다양한 인문학적 접근과 설득력 있는 설교자들을 더 듣고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설득에만 치우칠 때 나타날 수 있는 영적 위험성도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감정적 공감이나 이성적 수용에 집중하는 설득은, 죄를 직면하고 회개로 나아가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설득이 심리학적 위로나 동기부여와 비슷하게 들리기도 했고, 복음은 ‘있으면 좋은 것’ 정도로 약화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스도를 높이기보다는 회중의 필요에 맞춰 조정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설득과 선포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깊이를 전하면서도 회중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길을 찾는 균형이 필요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선포 없는 설득은 복음의 권위를 잃게 하고, 회개 없는 위로만 제공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설득이 없는 선포는 진리를 외치지만, 마음에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진리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으면, 복음은 사랑이 아니라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좌충우돌을 통해 형성되는 ‘긴장 본능’
회중의 마음에 다가가면서도 복음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균형 감각은, 설교자가 수없이 부딪치며 형성해 가는 일종의 ‘긴장 본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설득과 선포에 있어서 제가 배운 한 가지 역설을 언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설득력 있는 설교는 본문 주해(성경 내러티브)를 줄이고 문화 내러티브를 길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이야기(내러티브)를 회중의 언어와 문화 속 질문들과 연결해 풀어낼 때, 주해 자체가 설득적 선포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문에 대한 회중과 문화의 다양한 질문과 해석을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들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선포가 있는 설교는 본문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고 회중과 관련된 내용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중의 내러티브를 성경의 핵심 메시지와 단단히 연결한다면, 그것은 회중으로 하여금 성경을 더욱 주목하고 의지하게 만드는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핵심은 이것입니다. 설교가 ‘설득하는 선포’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그 긴장은 설교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전할 때마다, 그리고 회중의 이야기를 풀어 갈 때마다 이 긴장은 역설적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선포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설교는, 인간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이야기가 맞부딪치는 자리입니다. 모든 욕망과 권위가 충돌하는 언덕 위에서 그리스도가 높이 들리셨듯이, 설교도 그 역설의 긴장 안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처럼 설교는 형상과 타락 사이의 긴장을 붙잡고 설득과 선포를 통해 추구하는 여정입니다. 이어서 목회 상담에서 형상과 타락 사이의 긴장을 ‘공감과 맞섬’이라는 주제로 살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