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미지는 수채화 스타일의 일러스트입니다.
분홍빛 꽃잎 위에 검정 줄무늬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아이가 다리를 꼰 채 앉아 있고, 눈을 감은 채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아이 주변으로는 노란색 나비 두 마리가 날고 있으며, 그중 한 마리는 아이와 가까운 거리에서 꽃 위에 앉아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배경은 옅은 초록과 분홍색으로 번지듯 표현되어 있으며, 이미지 전반에 부드럽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줍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조금은 공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나눠 볼까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공적일 수는 없습니다. 이미 이 분야의 무수한 전문가들이 있고, 많은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 살고 있습니다. 아직 사춘기를 다 벗지 않은 귀여운 청소년입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다닐 수 없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이에게 있는 '불편함'입니다.
아이는 “선천적 청각장애인”입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엄마의 뱃속에서 아이의 귀가 활발히 형성되는 12주쯤 발달이 멈췄다고 합니다. 산전검사, 기형아 검사 등 여러 검사를 했지만 어떤 예고도 없었습니다. 아이를 품고 있을 때 검사 후 들었던 담당의사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기형아 검사결과가 매우 좋아서 만약 아이에게 기형이 있다면 그건 신의 뜻입니다.”
출산 후 아이는 청각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정밀 검사를 했고, 아이의 달팽이관이 한쪽은 거의 없고 나머지 한쪽도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모든 장애가 그렇듯 어떠한 예고도 없었기에 엄마역할도 처음인 저에게 “청각장애아동 엄마”라는 더 큰 역할은 큰 두려움과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이는 소리 듣는 데 무척 제한적입니다. 한쪽 귀는 소리 반응이 전혀 없는 “농”이고, 나머지 귀는 그나마 출력이 강한 보청기를 끼면 들을 수 있는 “고도난청”입니다.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보청기로 재활 가능한 청각장애인입니다.
아마 청각장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왜 인공 와우 수술을 하지 않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세브란스 최재영 교수의 의견을 빌리자면, 청신경에 이상이 있거나 선천적으로 달팽이관이 없으면 인공 와우 수술은 어렵습니다. 위험성을 놓고 고민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한쪽 귀에 소리반응이 있어 보청기로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지금으로썬 감사할 뿐입니다.
아이는 유치원, 초등학교를 잠시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음 상황, 즉 생활 소음이 가득한 학교에서는 소리를 변별하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선생님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를 알아듣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런 불편함이 있다 보니 아이에게 가장 편한 환경을 찾다 결국 자의적, 타의적 홈스쿨링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글의 서두에 개인적이지만 부분적으로 공적이기도한 이야기를 나누겠노라 했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장애에 관한, 장애와 함께 하는 이야기를 담담히 적어볼까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는 저는 비장애인입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경험하는 세상을 완전하게 공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앞으로 아이와 제가 살아가야 할, 가보지 않은 아직은 알 수없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 이야기는 보이는 만큼의 협소한 세상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또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세상 속에서의 장애와 관련된 다양한 소회들을 풀어 놓는 것일 뿐, 정책을 제안하는 것도, 이 지면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사회 운동을 펼치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 풀어나갈 소소한 제 이야기가 비장애인들에게 ‘작은 나비의 날개 짓’이 된다면 감사할 것 같네요.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계획된 아이의 미래가 결코 암울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소망도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