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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아버지가 다 정복하면 난 뭘 하란 말인가?"- [ 쉽게읽는중간사 ] (7) | ||||
| 분류 | 성경과 신학 | ||||
| 작성자 | 전체관리자 | 작성일 | 2025-08-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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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다 정복하면 난 뭘 하란 말인가?" [ 쉽게읽는중간사 ] (7) [그림]
[그림 설명]
이 이미지는 고대 전투 장면을 묘사한 역사적 회화 또는 벽화 스타일의 그림입니다. 그림의 중심에는 전차를 탄 두 인물이 있습니다. 오른쪽 인물은 긴 수염과 투구를 쓰고 무기를 들고 있으며, 강한 표정으로 부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왼쪽의 전차는 혼란에 빠져 있고, 말이 쓰러지며 병사가 낙마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배경에는 창을 든 병사들이 촘촘하게 밀집해 있으며, 치열한 전투의 긴박함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말과 병사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강조되어 있고, 고대 메소포타미아 또는 페르시아-그리스 전쟁 시기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장면은 지도자의 용맹함과 병사들의 전투를 강조하며, 고대 전쟁의 극적인 순간을 포착한 역사적 이미지입니다. [그림 끝]
그리스는 여러 도시국가로 이뤄져 있다.
바사의 위협 아래 있을 적에는 서로 힘을 모았지만 바사의 위협이 사라지자, 자기들끼리 힘겨루기를 하게 된다.
급기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벌어진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델로스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동맹이 맞붙은 것이다.
이때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해군력에 대응하기 위해 바사의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 아테네와 연합해 바사와 싸웠지만 상황이 바뀐 것이다. 아테네를 이기는 일이 더 급했다.
이렇게 해서 스파르타가 잠깐 그리스의 맹주가 됐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스파르타의 강압적 지배에 불만을 품은 테베, 고린도 등이 아테네를 앞세워 반기를 든 것이다.
결국 그리스의 지배권이 테베에 넘어간다.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이 자기들끼리 힘을 빼는 사이에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왕이 된다. 필리포스 2세는 왕이 되기 전에 테베에서 인질 생활을 했다.
그곳에서 테베의 보병 운용을 눈여겨 보았다.
나중에 마케도니아 왕이 된 다음에 시민군으로 구성된 그리스의 전통적인 부대 형태인 팔랑크스를 개선해 장창으로 무장한 보병 부대를 만든다.
이 보병 부대와 귀족, 지주 계층으로 이뤄진 중무장 기병이 마케도니아의 핵심 전력이 된다.
예전에 군 생활을 소재로 한 개그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신병이 들어오자, 고참이 장난을 친다.
소총을 갖고 왔느냐고 물으면서, 안 갖고 왔으면 얼른 부대 매점에서 사오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이 농담이 아닌 시대가 있었다. 고대의 군인들은 필요한 장비를 직접 준비해야 했다.
갑옷이나 칼, 창이 전부 자기 부담이었다.
중무장 기병이 귀족과 지주 계층으로 구성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을 기를 만한 경제적 능력이 있는 집에서 자라야 했고, 그 말을 능숙하게 탈 줄도 알아야 했다.
마케도니아는 산악 지역이어서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필리포스 2세가 그런 마케도니아를 통일하고 고린도를 정복한다.
이어 테베를 정복하고 아테네 연합군을 격파해서 그리스 전체를 굴복시킨다.
그리스에게 늘 야만인 취급을 받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필리포스 2세에게는 행운도 따랐다. 크레니데스에서 금광이 발견된 것이다.
엄청난 재력이 확보된 것에 크게 고무된 필리포스 2세가 그 도시 이름을 자기 이름을 따서 필립피로 바꿨다. 성경에 나오는 빌립보가 바로 그곳이다.
여진족이나 거란족이 중원을 지배할 때 한족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런 일이 발칸반도에서 일어났다. 사실 펠로폰네소스전쟁의 여파다.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힘을 다 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필리포스 2세의 연이은 승리를 한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들 알렉산더였다.
"아버지가 다 정복해버리면 나는 뭘 하란 말인가?"라는 것이 한탄 내용이었다.
그런데 필리포스 2세가 바사 정벌을 계획하던 중 암살을 당하는 것으로 갑자기 생을 마감하고 알렉산더가 2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그동안 필리포스 2세의 위세에 숨죽여 지내던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알렉산더를 업신여겨서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즉시 군대를 휘몰아 테살리아(데살로니가), 테베, 아테네, 스파르타를 차례로 정벌하고 그리스 전역을 순식간에 장악한다.
그리고 스스로 바사 정복을 위한 총사령관 자리에 오른다.
이때 알렉산더가 이끈 군대는 보병 3만 2000명과 기병 5100명이었다고 한다.
알렉산더가 맨 처음 정복한 곳이 트로이였다. 소식을 들은 다리오왕이 정벌군을 보내면서 알렉산더를 사로잡아서 수사로 끌고 오라고 했다.
정벌군만 보내면 쉽게 해결될 문제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기록에 의하면 정벌군이 10만 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라니쿠스강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알렉산더는 사르디스, 에베소, 밀레도 등 소아시아 여러 성들을 정복하면서 해방과 자유를 선포했다.
바사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이런 알렉산더의 정책에 따라 알렉산더를 해방자로 맞아들이는 성들도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다리오가 친정에 나선다. 동원된 군사가 60만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주전 333년에 이수스전투가 벌어진다. 숫자로는 분명히 바사가 유리했다. 그런데 알렉산더는 용병술의 천재였다.
이 전투에서 마케도니아는 기병 150명과 보병 300명이 전사했을 뿐이다. 별 어려움 없이 승리했다는 뜻이다.
바사군은 보병 10만 명과 기병 1만 명이 죽거나 포로가 됐는데, 포로 중에는 다리오의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자식까지 포함돼 있었다.
다리오는 가족이 포로가 되는 것도 막지 못한 채 황급하게 도망쳐야 했다.
이제 알렉산더가 진군나팔을 한 번만 더 불면 바사는 숨통이 끊어질 판이다. 그런데 다리오 추격을 뒤로 미루고 군대를 애굽으로 돌렸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비블로스와 아라두스, 마라토스, 시돈이 줄줄이 항복했는데 유독 두로가 항복을 거부했다.
알렉산더가 보낸 사절단을 죽이기까지 했다.
두로는 두 부분으로 돼 있다. 하나는 내지에 있는 성채이고 다른 하나는 연안에서 800m 떨어진 곳에 있는 요새화된 섬이었다. 그래서 난공불락이다. 두로는 페니키아를 이루는 도시 국가 중 하나다.
번성할 때는 두로, 시돈, 베리투스, 트리폴리, 아크레, 비블로스, 아라두스, 마라토스, 우가리트 등으로 구별해서 말했는데 로마 시대에는 페니키아로 통칭했다.
나중에 포에니전쟁으로 로마와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룬 카르타고가 페니키아의 식민지였다.
세계사 시간에 페니키아는 해상 무역이 발달했다고 배운 기억이 있다. 해군이 강할 수밖에 없다. 두로의 경우, 내지에 있는 성채를 무너뜨린다고 해도 요새화된 섬은 공략할 재간이 없다.
그런 이점 때문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5년 동안 공격했어도 별 타격이 없었다.
느부갓네살은 13년 동안 내지의 성채를 포위해서 겨우 정복했지만,
두로 사람들이 내지 성채를 버리고 섬으로 대피한 상태였기 때문에 얻은 것이 없었다.
알렉산더는 달랐다. 내지의 성채를 파괴한 다음 그 잔해로 육지에서 섬까지 둑길을 쌓았다. 물론 쉽지 않았다. 두로가 손 놓고 구경만 했을 리가 없다. 화살을 쏘고 돌을 날리며 공사를 방해했다.
섬에 가까워질수록 방해가 극심해졌다.
알렉산더가 둑길 끝에 공격용 탑을 세워서 대응하자,
역청과 유황을 채운 배에 불을 지른 다음에 띄워 보내서 공격용 탑을 불태우기도 했다.
이에 알렉산더는 함대를 동원해서 섬의 항구를 봉쇄했고 결국 7개월 만에 섬을 함락시켰다.
항복을 거부한 대가는 참혹했다. 기록에 의하면 알렉산더가 8000명을 살육하고 3만 명을 노예로 팔았다고도 하고,
2000명을 살육하고 3만 명을 노예로 팔았다고도 한다.
일찍이 아모스 선지가가 노예무역으로 인한 두로의 죄악상을 지적했는데 그들이 노예로 전락한 것이다.
"그가 그 말굽으로 네 모든 거리를 밟을 것이며 칼로 네 백성을 죽일 것이며 네 견고한 석상을 땅에 엎드러뜨릴 것이며 네 재물을 빼앗을 것이며 네가 무역한 것을 노략할 것이며 네 성을 헐 것이며 네가 기뻐하는 집을 무너뜨릴 것이며
또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에 던질 것이라.(겔 26:11~1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를 바다 가운데에서 죽임을 당한 자의 죽음같이 바다 가운데에서 죽게 할지라.(겔 28:2~8)"
에스겔 선지자가 이런 예언을 했을 때 누가 곧이들었을까? 당시 두로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나라였다.
해상무역으로 인한 부가 넘쳐나서 스스로 신에 비견할 만큼 교만했다.
그런데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 던질 것이라"고 한 것처럼 성채의 잔해가 둑길이 됐고
"너를 바다 가운데에서 죽임을 당한 자의 죽음같이 바다 가운데서 죽게 할지라"고 한 것처럼 바다 가운데에서 운명을 맞아야 했다. 강학종 목사 / 하늘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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